한국 과일·채소값,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많이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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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유로·대만 등 10개국의 월평균 CPI 상승률 분석
韓 전체 물가상승률 3.0%로 영국, 미국에 이어 3위
과일 물가 37% 올라 압도적 1위, 2위 대만의 2.5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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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선진국이나 우리와 경제 구조가 비슷한 대만과 비교해 한국의 과일·채소 가격이 올해 들어 가장 크게 뛰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휘발유나 전기·가스요금 등 에너지류 물가상승률도 2위에 올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중동사태나 기후변화 등이 이어질 경우 물가를 잡기 더욱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 농산물 수입 등 근시안적인 대책이 아니라 농산물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일·채소값 물가상승 1위, 에너지류도 10개국 중 2위

22일 글로벌 투자은행(IB) 노무라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G7(미국·일본·영국·캐나다·독일·프랑스·이탈리아)과 전체 유로 지역, 대만, 한국 등 10개국의 1분기 월평균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기간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3.0%로 영국 3.5%, 미국 3.3%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독일은 3.0%로 한국과 같았고 캐나다 2.9%, 프랑스 2.8%, 일본 2.6%, 대만 2.3%의 순으로 집계됐다.

특히 한국은 과일과 채소 가격 상승률에서 2위와 큰 격차를 보이며 1위에 올랐다. 1분기 한국 과일류의 물가상승률은 월평균 36.9%로 2위 대만 14.7%의 2.5배에 달했다. 이어 이탈리아 11.0%, 일본 9.6%, 독일 7.4% 등이 10% 안팎의 높은 오름세를 보였다. 채소류 상승률도 한국이 10.7%로 가장 높았다. 이어 이탈리아 9.3%, 영국 7.3%의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에너지류 인플레이션도 주요국과 비교해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전기·가스요금, 연료비 등 에너지 관련 항목을 가중 평균해 산출한 결과 1분기 한국의 월평균 에너지류 물가상승률은 1.1%로 2.7%를 기록한 프랑스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2월 유가 상승분이 본격적으로 반영되기시작한 3월 상승률만 보면 한국이 2.9%로 10개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국가와 미국, 일본은 모두 1분기 에너지 가격이 마이너스 성장했다.

에너지류 인플레이션에 대해 노무라증권은 “유로 지역은 지난 2021~2023년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인한 기저효과 등으로 에너지 물가 하락이 두드러졌다”며 “다만 프랑스의 경우 가정용 전기·가스 가격 중심으로 에너지류 물가 상승률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경우 국제 정세 불안 등으로 인한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쳤고 지난해 5월 전기요금 인상의 여파도 있다”고 덧붙였다.

Fresh apples on the market. A lot of fruits on the supermarket counter: apples, mangoes, pears. Vitamins.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상기후로 인한 생산량 감소에 신선식품 가격 출렁

전문가들은 식품류와 에너지류의 높은 물가상승률이 근원물가와 전체 소비자물가 흐름의 괴리로 인해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근원물가 상승률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근원 물가는 예상대로 둔화하고 있지만 소비자물가는 상당히 끈적끈적(Sticky)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12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결정회의 직후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이 총재는 “그동안은 헤드라인 물가와 근원물가가 거의 같이 움직였는데 최근에는 본격적으로 차별화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며 “현재 근원물가 상승률은 둔화하는데, 농산물 가격과 유가가 오르면서 헤드라인 물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어 물가 예측에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사과 등 농산물 물가와 관련한 질문에 “중앙은행이 곤혹스러운 점은 현재 농산물 가격이 오르는 데는 기후변화 등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라며 “이는 금리나 재정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기후변화 등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생산자 보호정책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수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국민의 합의점이 어디인지 등을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답했다.

하우스 등 시설재배의 비중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상기후는 작황 부진에 따른 생산량 감소뿐 아니라 생산시설 운영, 유통 구조 등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이로 인해 최근에는 에너지 가격과 농산물 가격이 연동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물가 구조나 흐름으로 미뤄볼 때, 향후 중동사태나 이상기후 등이 길어질수록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물가 관리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급망 안정화, 유통구조 개선 위한 근본대책 필요해

다만 이같은 분석에도 불구하고 농산물 가격과 물가에 대한 정부와 농업계의 시각차는 엇갈리고 있다. 정부는 농산물 가격이 물가 폭등을 견인하고 있다며 총선을 앞두고 연일 특단의 조치를 내놨다. 출범 이후 농산물 수입 확산 정책을 본격화한 윤석열 정부는 최근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업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을 잡기 위한 조치로 관세 인하 등을 통해 농산물 수입을 확대하는 한편 상당한 예산을 들여 농축산물 할인지원 사업 등을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상기후로 인한 생산량의 감소보다 더 큰 폭으로 농산물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가을배추·무·콩·사과·배 생산량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사과 생산량은 총 39만4,428톤(t)으로 2022년 56만6,041톤보다 30.3% 감소했다. 사과의 생산량은 30%가량 감소했지만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상승률은 그보다 훨씬 크다. 실제로 통계청의 소비자물가동향 조사에 따르면 사과와 대체재인 귤은 전년 대비 70% 이상 비싸졌다.

이에 대해 농업계는 복잡다단한 유통구조가 최근의 농산물 가격 폭등에 한 몫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들은 ” 농업계는 농산물 가격 상승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 이를 안정화할 수 있는 근본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이상기후와 자연재해로 인한 공급망의 불안정을 해소하고 유통비용률을 낮출 수 있는 장기적인 대책 없이 농산물을 그저 가격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물가정책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백혜숙 지속가능밥상포럼 대표도 “기후위기 시대에 농산물 가격 등락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며 “농산물 가격 폭등의 해법으로 손쉽게 수입 농산물을 늘릴수록 오히려 농가 경영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식량 주권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하면서 “기후위기에 걸맞은 새로운 제도 개혁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