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농산물가격이 물가 상승 견인, ‘가정의 달’ 앞두고 외식물가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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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최근 물가,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달리는 모습"
한국, 미국·유럽과 달리 비근원품목의 가격상승률 커
농산물·가공식품가격 상승에 냉면·김밥 등 줄줄이 인상
소비자물가-폴리시

최근 한국을 비롯해 미국, 유로지역 물가상승률의 변동성과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로지역과 달리 농산물·에너지가격 등 비근원품목이 물가 상승을 견인하면서 전체 물가상승률이 근원물가지수보다 큰 폭으로 반등했다. 식품가격 인상은 외식물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가정의 달’을 앞두고 소비자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는 양상이다.

주요국 물가, 2022년 정점 이후 하락하다 최근 소폭 반등

2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 유로지역의 물가상승률이 2022년 정점을 찍은 후 1년 여간 기저효과, 에너지가격 하락 등으로 빠르게 내려갔지만 이후 소폭 반등하며 둔화 흐름이 주춤한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이같은 상황을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면서 서행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지난 2022년 6월 9.1%로 정점을 찍은 후 지난해 6월 3.0%까지 낮아졌지만, 이후 보다 높은 수준에서 등락을 이어가면서 올해 들어 3%대 중반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3.5%다. 유로지역의 3월 물가상승률은 2.4%로, 2022년 10월 10.6%에서 지난해 11월 2.4%까지 빠르게 낮아졌지만 이후 2%대 후반으로 소폭 오르다가 올해 들어 다시 안정세를 되찾은 모습이다.

한국의 물가상승률도 같은 패턴을 보이고 있다. 2022년 7월 6.3%에서 지난해 7월 2.4%까지 하락했으나, 이후 다시 높아져 연말까지 3%대에서 등락하다 올해 들어 3% 내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3월 물가상승률은 3.1%를 기록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상승세가 주춤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주요국 중앙은행은 새롭게 입수되는 데이터들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면서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으로 수렴해 가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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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 물가상승률(소비자물가지수와 근원물가지수)/출처=통계청, 미 노동통계국(BLS), 미 경제분석국(BEA), EU통계국(Eurostat)

물가상승률의 반등폭을 살펴보면 한국은 0.7%p로 미국 0.5%p, 유로지역 0.0%p에 비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가 상승이라는 세계 공통 요인 외에 국가별 물가 동인이 다르게 작용함을 방증한다. 실제로 한국의 경우 미국이나 유로지역과 달리 지난해 하반기 이후 농산물가격이 매우 높은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 또한 최근 천연가스 가격이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음에도 한국은 천연가스 투입 비중이 낮은 데다 도입단가의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작아 물가의 하방압력으로 작용하지 않고 있다. 즉 비근원 품목(농산물, 에너지)의 물가가 전체 물가지수의 반등을 주도한 것이다.

韓, 유가·농산물가격 상승률이 전체 물가상승률보다 높아

아울러 한국은 미국이나 유로지역에 비해 근원물가의 상승률이 낮은 수준에서 완만한 둔화 흐름을 이어가면서 전체 물가상승률이 근원물가보다 높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또한 빈 일자리율, 임금상승률 등을 감안할 때 노동시장의 물가 압력이 미국이나 유로지역에 비해 약하며, 최근 소비 부진도 근원물가의 하방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미국과 유로지역에서는 견조한 경기상황, 높은 임금 압력, 더딘 집세 둔화 등으로 인해 서비스물가 흐름이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최근 물가 흐름이 변동성이 높은 유가·농산물가격의 움직임에 크게 영향받고 있는 만큼, 물가 목표 수렴에 대한 확신을 위해서는 향후 물가 추이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향후 주요국의 디스인플레이션(인플레이션 완화) 양상은 국제 에너지가격 외에 국가별로 차별화된 물가 동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이는 향후 주요국의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미 연방준비위원회(Fed)와 유럽중앙은행(ECB)의 정책 방향은 물가·고용 지표 등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정학적 리스크, 주요국의 서비스 인플레이션 고착화 가능성 등이 상존해 있는 상황에서 최근 미국 등에서 물가상승률이 시장 예상을 상회함에 따라 주요국 중앙은행은 물가목표 수렴에 대한 확신을 위해 추가적인 데이터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도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유가 불확실성이 한층 커진 만큼 향후 물가가 추세적으로 목표수준에 수렴해 가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기조적 물가가 꾸준히 둔화는지 △품목별 물가상승의 확산 정도가 축소되는지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해지지 않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서 물가 상황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 전망오차가 급등기에 비해 하락기에 크게 축소된만큼 앞으로도 당초 전망대로 물가 둔화 추세가 지속될지를 계속 확인해 가면서 물가목표 수렴에 대한 확신의 정도를 판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달 햄버거·피자 등 주요 프랜차이즈 가격 인상 예고

한편 가파른 물가 상승은 외식물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28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달 냉면, 김밥 등 대표 외식 품목 8개의 서울 지역 평균 가격이 지난해보다 최대 7%대까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 인상 폭이 가장 큰 품목은 냉면으로 지난달 서울 지역 냉면 1인분 평균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7.2% 오른 1만1,462원으로 조사됐다. 김밥 한 줄 가격은 3,323원으로 같은 기간 6.4% 인상됐다. 2년 전과 비교하면 23% 오른 것이다. 비빔밥은 1만769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5.7%, 김치찌개 백반과 짜장면은 각각 8,000원, 7,069원으로 4.0% 올랐다. 칼국수는 9,038원으로 3.5%, 삼계탕은 1만6,846원으로 각각 3.1% 상승했다. 삼겹살도 1인분(200g)에 1만9,514원으로 1.4% 비싸졌다.

이같은 외식 물가 상승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달 들어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잇따라 가격을 인상하면서다. 지난 9일 김밥 프랜차이즈 ‘바르다김선생’은 김밥 가격을 100∼500원 인상했다. 대표 메뉴인 ‘바른김밥’은 종전 4,300원에서 4,500원으로 200원 올랐다. 김밥 전문점 ‘김가네’도 최근 기본메뉴인 ‘김가네김밥’을 3,9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했다.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인 ‘더벤티’는 지난 22일부터 카페라떼 등 음료 7종의 가격을 200∼500원 올렸다.

치킨 프랜차이즈 ‘굽네’는 지난 15일 9개 메뉴의 가격을 일제히 1,900원씩 인상했다. 이에 따라 대표 메뉴인 ‘고추바사삭’의 가격은 1만9,900원으로 2만원에 육박한다. 파파이스는 지난 15일 치킨, 샌드위치, 디저트, 음료 등의 가격을 평균 4% 인상하고 배달 메뉴에는 매장 판매가보다 평균 약 5% 높은 가격을 차등 적용하기로 했다. KFC도 지난달 19일 이중가격제를 도입했으며, 배달 메뉴를 100∼800원 더 비싸게 판매하고 있다.

‘가정의 달’인 5월에도 프랜차이즈 업체의 가격 인상이 예정돼 있다. 버거 프랜차이즈인 맥도날드는 다음 달 2일부터 16개 메뉴 가격을 평균 2.8% 올리기로 했다. 버거 단품 중 햄버거, 치즈버거, 더블 치즈버거, 트리플 치즈버거는 100원씩 올리고 불고기 버거는 300원, 에그 불고기 버거는 400원 각각 인상한다. 빅맥과 맥스파이시 상하이 버거 단품 가격은 동결되지만 탄산음료와 사이드 메뉴 가격이 올라 세트 가격은 6,900원에서 7,200원으로 300원 오른다. 같은 날 피자헛도 갈릭버터쉬림프, 치즈킹 등 프리미엄 메뉴의 가격을 인상하기로 했다. 인상 폭은 추후 공지할 예정이다.

외식업체뿐 아니라 식품 기업도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웰푸드는 코코아 가격 상승을 이유로 다음 달 빼빼로, 가나 초콜릿 등 제품 가격 인상을 예고했지만 가정의 달인 점을 고려해 오는 6월부터 가격을 올리기로 했다. 동원F&B와 CJ제일제당은 김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