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높은 주택 임대료, 연준 기준금리 인하의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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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과 싸우는 美 연준, 주택 임대료로 막판 고전
임대료 상승률 둔화했지만 물가지표 반영까진 시차 존재
경착륙 우려에 미국보다 먼저 금리 인하 단행하는 국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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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단행 시기에 시장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미국의 주택 임대료 동향이 정책 금리 결정에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미 정부의 공식 물가 지표에서의 주거비 상승세가 예상보다 더디게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연준의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한 마지막 마일(last mile)에 대한 우려도 더욱 커지고 있다.

WSJ “높은 주택 임대료가 올해 기준금리 인하 막을 수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완고하게 높은 주택 임대료 때문에 연준이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끝내지 못한다(Stubbornly High Rents Prevent Fed From Finishing Inflation Fight)”고 보도했다. 당초 연준은 부동산 시장에서 신규 임대료 상승률이 떨어지고 있는 만큼 추후 물가 지표 상승세를 변화시키는 데 주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했다. 이에 올 초까지만 해도 연내 금리 인하가 가능할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최근 주택 시장 상황을 보면 연준의 이 같은 관측이 실현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는 곧 금리 인하 시점이 예정보다 더 늦어질 수 있다는 관측과 연결된다. 실제 미 정부의 공식 물가지표에 나타나는 임대료 추이와 민간 기관들이 내놓는 임대차 시장 자료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예컨대 부동산 시장조사업체 코어로직이 집계한 미국 단독주택 임대료 상승률의 경우 2022년 1·2분기 약 14%에서 올해 2월 3.37%로 크게 떨어졌다.

이에 반해 미국 노동부가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의 임대료 부분은 올 1분기 5.7%로 둔화 속도가 현저하게 느린 모습이다. CPI는 기존에 체결된 임차 계약을 중심으로 주거비 지수에 반영되기 때문에 신규 임대 계약을 포함하는 시장 상황이 나타나려면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3월 기준 주거비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5.6%로, 1년 전의 8.2%보다는 크게 둔화하긴 했으나 여전히 신규 임대료 상승률에 비해선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시차는 연준이 결국은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것이란 자신감을 유지하는 주된 근거기도 하다.

문제는 기존 계약 갱신이 많다는 점이다. WSJ는 “높아진 주택담보대출 금리 탓에 주택 임차인들이 주택을 구매하지 않고 기존 임차계약을 갱신하고 있다”며 “이는 신규 임대계약이 물가 지표에 반영되는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신규 체결된 임대계약의 임대료가 물가지수에 많이 반영될수록 주거비 지수 상승률이 빠르게 둔화하는데, 기존 주택 임차인들이 고금리에 부담을 느껴 이탈하지 않다 보니 반영 시차가 예상보다 더욱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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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상업용 부동산은 디폴트 위기

미국 주택 임대료 상승세 둔화의 주된 배경으로는 재택근무 확산으로 인한 신규 공동주택 공급량 증가가 꼽힌다. 다만 이는 역설적이게도 오피스 빌딩 등 상업용 부동산(CRE·Commercial Real Estate)을 중심으로 공실 리스크를 확대시키는 주범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무디스애널리틱스에 따르면 2019년 말 12.1%였던 미국 오피스 공실률은 올 1분기 19.8%로 폭증했다. 이는 지난 40여 년간 분기별 공실률 최고치였던 19.3%를 갈아치운 수치다. 공실률이 높아지면서 시장가치는 쪼그라들었다. 2022년 기준 오피스 시장가치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인 2019년보다 6,641억 달러(약 908조원)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이로 인해 주요 도시에서는 세수 부족이 나타나는가 하면 일부 도시에선 세금 인상설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다. 애런 페스킨(Aaron Peskin) 샌프란시스코 시의회 의장은 “상업용 부동산 침체에 따른 세수 부족으로 인해 향후 몇 년 동안 10억 달러(약 1조3,700억원)의 시 재정 적자를 겪을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부동산 압류 건수도 급증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올해 3월 미 전역의 상업용 부동산 중 625건이 압류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전년 동월 288건 대비 자그마치 117% 증가한 수치다. 상업용 부동산 압류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은 캘리포니아(187건)주로, 올해 3월 총 압류 건수의 29.9%를 차지했다. 대표적 압류 사례로는 지난 3월 로스앤젤레스 소재 52층 마천루인 가스컴퍼니타워가 꼽힌다. 해당 건물은 지난 수년간 높은 공실률에 시달려 왔다. 영국계 은행 바클레이스에 따르면 가스컴퍼니타워 가치는 2020년 6억3,200만 달러(약 8,700억원)로 평가됐지만, 현재 2억 달러(약 2,800억원)로 주저앉았다.

오피스 건물주의 대출상환 속도도 눈에 띄게 둔화됐다. 무디스애널리틱스에 의하면 2021년만 해도 상업용 부동산저당증권(CMBS)으로 전환된 사무실 대출의 90% 이상은 만기일에 상환됐으나, 지난해에는 해당 수치가 2007년 데이터 집계 이후 최악인 35%로 급락했다. 통상 상업용 부동산 소유주들은 구입 자금의 절반 이상을 대출로 조달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고금리 기조는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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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통화가치 절하 우려에도 ‘먼저 피벗’ 나선 유럽·남미 신흥국들

이런 가운데 유럽 국가들이 미국보다 먼저 기준금리를 내리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연준이 인하 시점에 대한 가이던스를 주지 못하고 있는 사이, 유럽이 경착륙을 우려해 한발 앞서 피벗(정책전환)을 시작한 것이다. 가장 먼저 금리 인하에 착수한 유럽 국가는 스위스다.

지난 3월 스위스국립은행(SNB)은 올해와 내년도 인플레이션 전망을 하향 조정하면서 금리를 1.5%로 0.25%포인트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스웨덴 중앙은행 릭스방크도 지난 8일(현지시간) 8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4%에서 3.7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이밖에 체코, 헝가리도 금리를 내렸고 유럽중앙은행(ECB)도 6월 인하 시그널을 보낸 상태다.

유럽뿐 아니라 남미 신흥국들이 선진국들보다 먼저 기준금리를 내리는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일(현지시간) 브라질중앙은행은 기준금리인 셀릭(Selic)을 25bp 인하했다. 브라질은 올 들어 3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총 1.25%포인트 인하했는데, 이로써 지난해 말 연 11.75%였던 기준금리는 이달 현재 연 10.5%로 떨어졌다. 칠레는 기준금리를 연 8.25%에서 연 6.5%로 1.75%포인트 내렸고, 멕시코도 지난 3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리면서 금리 인하 행렬에 동참했다.

이처럼 유럽 국가들에 이어 남미 신흥국까지 연준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피벗에 나선 것은 21세기 들어 이번이 처음이다. 연준이 움직인 후에 금리를 내리던 전통을 깬 최초의 사례로, 자국 통화가치 절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경기 부양을 택하며 인하로 방향을 튼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국과 금리 격차가 커지면 미국으로 자금이 쏠리고 달러 가치가 상승해 자국 통화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움직임을 두고 일각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글로벌 통화정책의 ‘왝더독(Wag the Dog)’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