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엔저 장기화에 중소기업 수출 부진 악화, 일각선 ‘원화 가치 동반 하락’ 전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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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지표 하락 추세, 슈퍼 엔저로 제품 가격 경쟁력 밀렸다
원-달러 환율 상승도 엔저 때문? "프록시 효과가 원인일 가능성도"
엔저에도 비교적 안정적 실적 보인 대기업들, 해외 생산 거점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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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슈퍼 엔저(엔화 가치 하락)가 장기화하면서 한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 수출에 따른 매출이 줄면서 엔화 결제로 인한 환차손이 누적된 탓이다. 다만 현대자동차그룹,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은 엔저 상황에도 비교적 견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해외 생산 거점을 확충해 둔 덕분에 엔저 압박이 다소 억제된 것으로 풀이된다.

중소기업 BSI 80, 슈퍼 엔저 장기화 영향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대기업 경기실사지수(BSI)는 93을 기록하며 2022년 12월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지만, 중소기업은 80에 불과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BSI 격차(13)는 지난해 12월 이후 최대로 벌어졌다. BSI는 국내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 경기 상황 등을 묻는 지표로, 지수가 높을수록 경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기업이 많단 의미다.

중소기업 BSI 수치가 낮게 나타난 건 엔저로 인해 수출 부담이 커진 영향이다. 한국은 일본과의 제품 경쟁이 활발한 국가 중 하나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산업연구원의 최신 기업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2022년 기준 한일 제조업 수출 경합도는 64.7로 미국(64.3), 중국(58.1), 독일(57.8)을 제치고 주요 수출국 가운데 경쟁 강도가 가장 높았다. 수출 경합도는 제조업 수출 비중을 바탕으로 비교 대상국 간 산업 구조를 비교한 것으로, 두 나라의 수출구조가 비슷할수록 100에 가까운 값을 보인다.

이런 가운데 슈퍼 엔저가 장기화하면서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한국이 밀리는 양상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채연구팀장은 “수출 경합도가 추세적으로 하락했지만 조선·자동차 등 주력 업종에선 비교적 높은 수준”이라며 “현재 우리도 고환율이지만 ‘초엔저’가 지속되면서 수출 기업들이 누릴 수 있는 원화 약세의 긍정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도 “일본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과 경쟁이 가장 치열한 국가”라며 “엔저 장기화를 염두에 두고 금융, 산업 대응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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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수지 적자 확대에 원-엔 동조화 우려까지

당초 지난해까지만 해도 엔저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력은 제한적일 거란 의견이 많았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일본의 위협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한국 제품의 품질 경쟁력이 높아졌단 이유에서다. 문제는 엔저가 지나치게 장기화하고 있단 점이다. 실제 원-엔 환율은 1월 100엔당 925.02원 수준이었으나 3월 885.74원까지 하락했다. 4월 들어선 다소 회복세에 접어드는 양상이 보였지만, 이후 6월부터 재차 하락하며 7월 5일 기준 100 엔당 858.79원까지 내려왔다. 일본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단 것이다. 우리 기업 제품의 품질 경쟁력이 높아도 가격 압박이 심화하는 상황은 버티기 어려울 수 있단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수출 부진 외 영향이 추가적으로 나타나고 있단 점도 악재다. 대표적인 게 여행수지 적자 확대다. 한은이 공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여행수지 적자는 125억2,700만 달러(약 17조원)로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 중 대일본 적자는 33억8,000만 달러(약 4조6,600억원)에 이른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통상 유학·출장 자금 지출이 많은 대미 여행수지 적자가 컸는데, 지난해부터 엔화 약세 효과로 일본 관광객이 늘면서 대일본 여행수지 적자가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일본 관광객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관광공사 집계에 따르면 올해 1~4월 일본 방문 관광객은 299만9,901명으로 전년 동기(206만7,670명)보다 45.1% 증가했다. 차후 적자가 더 확대될 수 있단 의미다.

일각에선 ‘원-엔 동조화’ 현상으로 원화 가치가 동반 하락할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한다. 글로벌 외환 투자자들이 위험 회피를 위해 원화와 엔화에 동시 투자(프록시 헤지)하면서 원화 가치가 급락할 수 있단 것이다. 이미 동조화가 시작됐단 의견도 있다. 지난 4월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기록하며 급등한 원인이 프록시 효과에 따른 것이였단 시선에서다. 이에 한은은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선제적 대응을 이뤄 나가겠단 방침이지만, 일본 정부의 공격적인 긴축이 이어지는 이상 타격을 피하기는 어려울 거란 게 시장의 대체적인 시선이다.

엔저에도 대기업 실적은 ‘견조’

다만 이런 가운데서도 대기업은 견조한 실적을 유지하며 슈퍼 엔저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벗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대표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약 730만4,000만 대의 자동차를 판매하며 도요타(1,123만3,000대), 폭스바겐(924만 대)에 이어 판매량 3위를 기록했다. 특히 4위와의 판매량 격차를 약 69만 대에서 91만 대 수준까지 벌리면서 ‘빅3’ 그룹을 공고화하기도 했다.

양적 성장과 더불어 질적 성장도 이뤘다. 지난해 현대차·기아의 영업이익은 양사 합계 기준 역대 최대인 26조7,348억원에 달했으며, 영업이익률도 10.2%를 기록했다. 향후 성장 전망도 긍정적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최근 현대차와 기아의 신용등급을 기존 ‘BBB+’에서 ‘A-’로 상향 조정했다. 피치 20개 신용등급 중 상위 7번째에 해당하는 ‘A-’ 등급 이상을 획득한 글로벌 자동차 기업은 현대차·기아와 도요타, 메르세데스벤츠 등 총 7개사밖에 없다. 

삼성전자도 실적 호조세를 이뤘다. 연결 기준 올 2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10조4,000억원이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452.24% 증가한 수준이다. 매출도 74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31% 증가했다. 삼성전자 분기 영업이익이 10조원을 넘은 건 2022년 3분기(10조8,520억원) 이후 7개 분기만이다. 하반기에도 실적 개선세는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능력 증설에 따른 범용 D램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기업이 슈퍼 엔저의 영향권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건, 국내 생산 비중을 줄이고 해외에 생산 인프라를 구축한 덕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에서 전체 낸드 물량의 40%를 생산하고 있으며, 모바일 기기는 약 60%가량을 베트남에서 생산 중이다. 최근엔 과도한 베트남 의존을 탈피하기 위해 인도 공장 중심의 투자도 이어가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지난해 368만 대가량의 자동차를 해외에서 생산했다. 구체적으로 현대차는 미국과 인도·중국·튀르키예·브라질·인도네시아·싱가포르 등 8곳에서 224만3,069대를, 기아는 미국과 중국·슬로바키아·멕시코·인도 등 5곳에서 143만5,762대를 각각 생산했다. 해외생산 거점을 확충함으로써 분업 고도화, 소부장 제품 및 기술 수출 확대, 신기술 개발 역량 확보 등 부수적인 효과를 창출한 덕분에 엔저 상황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사업을 이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