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형은행들, 상업용 부동산 대출 연체율 증가에 대출 사기 단속까지 이중고 직면
美 상업용 부동산, 대세 상승기에 대출받으려 가치 평가 수치 조작 사례 알려져
오피스 임대료 폭락에 조작 사례까지 드러나자 은행 건전성 우려 확산
안전하다 믿었던 대형은행들도 "상업용 부동산 손실 타격 상당하다"
미국 주요 은행들이 상업용 부동산 가격 폭락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가격 책정 정보를 조작했던 사례가 밝혀지며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호황을 이뤘을 당시 성행했던 사기 행각이 침체기를 맞이한 현재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美 상업용 부동산 가치 평가 조작 사례 연이어 적발
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상업용 건물의 재정 상태와 가치 평가 등을 조작한 부동산 대출 사기 단속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 상승기였던 2010년대 중반부터 2021년 사이 확산한 사례들로, 인근 부동산과 유사한 수치로 조작하면서 회계 실사를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미 연방 검찰이 적발한 사례들을 보면 이들은 건물 가치 평가에 필수인 자료들을 조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체로 상업용 부동산은 공실률과 더불어 임차인들에게 제공하는 렌트프리(Rent Free, 최초 몇 개월간 임대료 면제), 핏아웃(Fit Out, 사무실 입주 전 공사 기간 임대료 면제) 등이 가치 평가에 중요한 수치다. 임대료, 접근성, 건물 상태 등에서 인근 사무실과 유사한 조건의 상업용 부동산들은 대체로 임차인들에게도 유사한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건물 사정이 달라질 경우에는 더 많은 이득을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에 적발된 사례들은 인근 상업용 부동산과 유사한 조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렌트프리, 핏아웃 등의 수치를 조작해 같은 조건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대출을 받거나 가치 평가에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인 관행을 악용해 자세한 정보를 숨긴 것이다. 특히 상업용 부동산 가치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던 2010년대 중반 이후에는 대출 경쟁이 격화된 탓에 꼼꼼한 실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미 연방주택금융청(FHFA)의 설명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가격 상승기에는 임차인들 간의 경쟁 탓에 인근 건물과의 조건 격차가 크지 않을 수 있으나, 경기 침체기에는 격차가 가시화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국내에도 벤처 투자금이 넘쳐났던 2022년 여름까지만 해도 강남 일대 사무실에 렌트프리, 핏아웃을 제공해 주는 건물을 찾기 힘들었지만, 최근 들어 폐업하는 벤처기업이 크게 늘면서 주요 교통편, 상권과의 근접성, 건물 상태에 따라 렌트프리 규모가 다르다는 설명이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 연체율 급등, 미국 대형은행들도 부담
최근 수치 조작이 가시화된 것은 미국 은행들이 장부상의 상업용 부동산 가치 재평가 작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최초 대출이 있었던 2010년대 중반에 비해 임대료가 크게 달라진 것과 더불어 렌트프리, 핏아웃 조건 등에서 차별화가 나타났고, 일부 부동산의 경우 과거 대출 시점에 잘못된 정보가 기록됐던 것이 알려졌다.
상업용 부동산 평가 가치 하락 및 연체율 급등에 이어 대출 사기 사건까지 알려지자 은행들의 자산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간 중소형 은행, 지방 은행들이 미국 상업용 부동산 위험에 상대적으로 크게 노출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난 6일(현지시각) WSJ는 대형은행들도 상업용 부동산 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형 은행들이 보유한 자산 1,000억 달러(약 138조원) 이상의 비거주 상업용 부동산 대출 중 4.4%가 연체 또는 부실 상태에 놓여있다. 이는 전 분기 대비 0.3% 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반면 소형 은행들이 보유한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연체율은 1% 미만이다. 이는 소형 은행들이 보유한 자산 규모와 대출 구조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미국 은행권에서 일반적인 충당금 비율이 2%인 데 반해 상업용 부동산에는 평균 8%를 배정하는 만큼, 은행들의 부실화 우려는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가치 평가 조작 사태로 충당금을 추가해야 하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투자 기관들 수익성도 악화
이런 가운데 해외 부동산 펀드 관련 국내 전문가들은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 시중 은행에서 대규모로 판매됐던 해외 부동산 펀드 수익률 악화 가능성을 지목한다. 당시 해외 부동산은 저금리 기조 속에 자산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가 컸고, 현재도 해외 부동산 펀드 잔액은 6,687억원에 달한다. 8일 기준 지난 1년간 국내외 주식·채권 등 주요 유형별 펀드의 1년 평균 수익률을 살펴보면 △해외 주식형 19.36% △국내 주식형 9.44% △국내 채권형 4.76% △국내 부동산형 3.76% △해외 채권형 1.71% 등 국내외 주요 펀드 수익률은 모두 플러스(+)를 기록한 반면, 해외 부동산형(-19.16%)은 손실률이 -20%에 육박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도 재택근무가 장기화되면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침체기에 빠져있던 상태에서 최근 평가 수치 조작 사례까지 알려지며 원금 손실 우려도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하기에 들어갈 때까지 만기를 연장하는 방식으로 부동산 펀드들이 ‘버티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지만, 손상 차손이 대규모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조작 건물들은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