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일부 점포 분할 인수 추진 ‘영등포 권역 11곳 유력’
MBK, 이커머스에 밀린 오프라인 유통업계 불황에 분할 매각 추진
당초 인수 후보군에 거론됐던 알리익스프레스·쿠팡은 인수설 부인
농협, 영등포·동작구 등 서울 남서부의 핵심 상권에 추가 매장 확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기업형 슈퍼마켓(SSM) 점유율 4위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분리 매각을 추진한 지 한 달여가 지난 현재, 농협중앙회가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일부 점포의 인수를 검토 중이다. 당초 유력 인수자로 거론됐던 알리익스프레스, 쿠팡은 모두 인수설을 부인한 가운데, 농협이 인수 후 핵심 상권에서 매장을 추가로 확보한다면 양사가 가진 농산물 소싱 능력과 마케팅 역량을 결합해 시너지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농협,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일부 매장 인수 위해 태핑 중
1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농협은 서울 시내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장 일부를 따로 인수하기 위해 여러 경로로 의사를 태핑(사전조사) 중이다. 전국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직영·가맹점은 310여 곳으로 농협은 이 중 서울 남서부권 영등포농협의 관할 구역에 위치한 지점 11곳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별로 살펴보면 영등포구 5곳, 동작구 4곳, 구로구와 금천구가 각 1곳이다.
특히 영등포구는 영등포농협 관할 구역 안에서도 유동 인구가 많은 핵심 상권으로 농협은 일부 매장을 인수해 하나로마트와 시너지를 내는 방안, 혹은 부동산만 활용하는 방안 등을 두루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영등포농협 관할 지역 내에는 5개의 하나로마트가 있는데 이 중 신길점은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신길 2호점과 상권이 겹치기도 한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핵심 상권의 점포 일부만 매각하는 방안을 협상의 우선순위로 두진 않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MBK파트너스 입장에서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전체를 매각해 자금을 확보해야 이를 홈플러스에 재투자하고 금융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몸값을 최대 1조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
유통업계 불황에 통매각 어려워지면서 분리 매각 추진
농협이 홈플러스의 인수자로 거론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5년 홈플러스가 처음 매물로 나왔을 당시 가장 유력한 후보군으로 점포가 부족한 농협과 대형마트 시장에 진입하지 않은 현대백화점이 인수자로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양사 모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결국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의 새 주인이 됐다. 당시 2015년 MBK파트너스는 테스코로부터 7조2,000억원에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2015년 당시 MBK파트너스는 블라인드 펀드로 2조2,000억원을 투입하고 나머지 5조원은 대출받아 매각 대금을 치렀다. 이후 20여 개 홈플러스 점포를 폐점 또는 매각 후 재임차 방식 등으로 처분해 마련한 자금으로 대출금을 갚았고 현재는 4,500억여 원을 남겨두고 있다. 사모펀드의 특성상 자산을 매각하고 실적을 개선해 단기간에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MBK 파트너스는 올해 3월부터 엑시트를 위해 잠재 원매자와 접촉하는 등 홈플러스 재매각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오프라인 유통업계의 침체가 길어지는 데다 이미 시장에 SSG닷컴, 11번가 등 매물이 쌓여있는 상황에서 7조원에 이르는 홈플러스의 몸값을 감당할 만한 인수자를 찾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MBK파트너스는 지난달 홈플러스 내 사업 부문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분리 매각에 착수했다.
홈플러스는 ‘알짜’ 사업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우선 매각해 덩치 줄이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전국 지점의 75%가 수도권 핵심 상권과 주거 지역에 입점해 있다. 멤버십 가입자도 1,000만 명이 넘어 업계에서는 매력 있는 매물로 평가받는다. MBK파트너스는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 전액을 홈플러스에 대한 투자와 차입금 상환에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분리 매각 추진 사실이 공개된 뒤 한 달이 지난 상황임에도 이렇다 할 인수 후보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앞서 오프라인 확장을 위해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인수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던 알리익스프레스와 쿠팡은 잇따라 인수설을 부인했다. 경쟁 SSM 업체를 운영하는 GS리테일과 이마트, 롯데쇼핑도 최근 사업 효율화에 더 주력하고 있다.
‘농산물 소싱 능력+마케팅 역량+외형 성장’ 시너지 기대
유통업계의 시장 구조도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의 발목을 잡는 요소다. 현재 SSM 시장에서 점유율 2위와 3위에 오른 이마트 에브리데이, 롯데슈퍼의 경우 이미 전국 200~300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데다 자사의 대형마트를 별도로 보유하고 있어 상권이 겹치기 때문이다. 특히 두 회사의 점유율 등을 감안할 때 독과점의 문제가 발생해 인수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제한점 때문에 업계 관계자들은 홈플러스의 새 주인으로 농협이 적합하다고 평가한다. 농협은 일반 유통업체와 달리 운영 목적이 조합원의 이익 실현에 있다. 조합원의 안정적인 생산을 보장하는 동시에 소비자들에게 국내산 신선식품을 적정한 가격에 공급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경쟁력이 있다. 더욱이 농산물 취급 비중이 높은 만큼 ‘유통산업발전법’이 정하는 대형마트 규제에서도 자유롭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하나로마트를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 점포가 경쟁 업체에 비해 부족하다는 점은 농협의 약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이 같은 약점으로 인해 농협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려워 경쟁사에 휘둘리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홈플러스의 상품 기획, 매장 운영 등 마케팅 역량과 농협의 산지 조직력, 농산물 소싱 능력이 결합한다면 농협이 국내산 신선식품을 앞세워 대형 할인점 시장에서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에서는 홈플러스가 농협에 부동산 가격과 권리금을 받고 일부 점포를 분할 매각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보고 있다. 유통시장에서 점포는 핵심 유동화 자산으로, 적자 점포를 매각해 손실을 줄이거나 현금을 확보하는 것은 흔한 사례다. 앞서 홈플러스는 2012년 경기 동수원점, 부산 센텀시티점 등 4곳을 6,066억원에 매각했고 2013년에는 부천 상동점과 수원 영통점 등 4개 점포를 6,225억원에 팔았다. 이후 2021년에는 서울 가양점을 비롯한 15개 점포를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한 바 있다. 다만 농협중앙회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점포 일부 인수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