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부동산 빚 ‘눈덩이’, 역대 최악 치닫는 PF 지표들 “골든타임 놓쳤나”
금융권 건설·부동산 대출 617조원, 비금융 연체율 역대 최고
PF 제때 정리 못하고 위기 이어온 결과, PF 차주는 버티기만
시간 갈수록 부실 심화, 적기 해소 않으면 사업성 더 악화할 수도
2022년부터 이어져 온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에 대해 사실상 구조조정 시기를 놓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각종 지표가 역대 최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에도 경기가 회복될 것이란 기대만으로 버텨온 결과다. 전문가들은 PF 사업장이 옥석 가리기 과정에서 또 다른 위기에 노출될 수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정상화를 위한 속도감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부실지표 2년 새 5~9배 치솟아, 연체율도 9년 만에 최악
1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업권별 건설·부동산업 기업대출 현황’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현재 전체 금융권(은행+비은행)의 건설업과 부동산업 대출 잔액은 각 116조2,000억원(55조5,000억+60조7,000억원), 500조6,000억원(309조1,000억+191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두 업종의 잔액 모두 한은이 해당 업종 대출 통계를 금융업권별로 나눠 집계하기 시작한 2015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부실대출 지표도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비은행권의 건설·부동산업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올해 1분기 기준 각 7.42%, 5.86%를 기록해 역시 2015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높았다. 2023년 1분기(3.38%·3.15%) 이후 1년간 각 2.2배, 1.9배로, 2022년 1분기(1.79%·1.31%) 이후 2년간 각 4.2배, 4.5배로 급증했다.
연체 기간이 3개월 이상인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은 저축은행에서 건설업이 19.75%, 부동산업은 14.26%인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업의 경우 1년 전(4.41%)이나 2년 전(2.22%)의 무려 4.5배, 8.9배 높은 수준이다. 저축은행 사태 직후 2013년에 건설업종의 NPL 비율이 30%를 뛰어넘은 바 있는데, 현재 당시 수준에 근접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업도 최근 1년, 2년 사이 각 3.3배(4.36%→14.26%), 7.8배(1.82%→14.26%)로 급증했다.
특히 PF 직격탄을 맞은 저축은행과 증권사는 당장 실적 악화에 직면했다. 충당금 적립 등 손실 인식 부담이 커지며 지난해 저축은행은 2014년 이후 9년 만에 적자로 전환됐다. 올 2분기부터는 캐피털사와 중소형 증권사의 실적 악화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대출 연체율도 심각하다. 일반 가계부채(0.98%), 소상공인(1.52%), 기업(2.31%) 등 모든 종류의 대출 연체율이 10여 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으며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정부 ‘PF 정상화 정책’, 실패 시 부실 이연·성공해도 버블 확대
이처럼 금융사 실적은 물론 연체율 등 관련 금융지표가 모두 악화하고 있지만 악성 PF 차주들은 현재 직면한 위기만 넘기고 보려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향후 집값 상승, 금리 인하 기대감에 부실 정리를 미루며 버티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내놓은 PF 정상화 방안의 사실상 실패라는 쓴소리도 나온다. 부실을 제때 정리하지 못하고 위기를 키운 결과란 지적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PF 정상화 방안을 발표한 건 지난 5월이다. 해당 방안은 △사업성이 충분한 정상 PF 사업장에 추가 자금 공급 △사업성이 부족한 사업장은 정리를 추진하는 두 가지 방안으로 실시된다. 이를 통해 옥석 가리기를 본격화하겠다는 복안이다. 금융당국의 적정성 평가는 내부에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금감원은 앞서 부동산 PF 대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취합한 사업장별 데이터를 근거로 금융사의 자체 평가 결과의 적정성을 검토하고자 기본 틀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사업성 평가 기준을 기존 3단계(양호·보통·악화우려)에서 4단계(양호·보통·유의·부실우려)로 세분화한 바 있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경·공매를 시장에 자율적으로 맡길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현재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거래되는 경·공매의 경우 시행사가 구입한 토지 실거래가의 50% 수준에서도 거래가 원활하지 않다. 거래 활성화를 위해서는 매매가를 당국 개입으로 낮춰야 하지만, 이 경우 해당 사업장에 대출한 중·후순위 대주가 전액 손실 보는 건 물론 선순위 대주마저 손실을 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경·공매 거래 가격을 시장에 맡긴 채 정책만 시행될 경우 또 다른 부실 이연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의 의중이 반영된 은행·보험사·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등에 PF 시장 참여자의 부실 사업장을 경·공매 거래 가격 대비 비싸게 팔 경우 해당 사업장이 정상화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자금을 추가로 공급해도 부실 사업장이 정상화되기 어려울 것이란 점도 문제다. 현재 부실 사업장은 가격이 충분히 내려가지 않아 사업성이 떨어진 상황인데, 여기에 자금이 추가될 경우 담보대출비율(LTV)이 늘어나게 된다. 사업성이 더 취약해지는 셈이다. 결국 신규 자금을 공급하며 금융기관의 규제를 완화하면 부실을 미래로 이연할 뿐이며,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더라도 부동산 ‘버블’이 커지는 결과가 발생하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금리 하락기 접어들면 새로운 위기 초래, 근본적 구조 개선 필요
일각에서는 머지않아 금리가 하락기에 접어들 경우 PF 대출이 다시금 증가해 새로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PF 대출은 금리가 낮을수록, 부동산 경기가 좋을수록 늘어나는데, 금리가 하락할 때 부동산 경기가 개선되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은 PF 문제의 원인이 명확한 만큼 중장기 개선 방향도 명확하다고 분석한다. 자기자본비율(BIS)을 주요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고 건설사 등 제3자의 보증은 폐지하는 방식이다. 원칙적으로 자본 구조(capital structure)는 기업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사업성 평가 미흡 △묻지마 투자 초래 △시스템 리스크 확대 등 부정적 외부효과가 존재하는 만큼 제도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는 자본확충을 요구하는 규제책을 제시한다. 우리나라 시행사의 자기자본비율이 주요국 대비 낮은 근본적인 원인이 구조상 자본투입이 적어도 사업 추진이 가능해서인 만큼, 이 같은 구조를 깨야만 자본확충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시행사가 PF 대출을 받을 때 일정 수준의 최소 자기자본비율을 요구하는 ‘직접규제’를 도입할 수도 있고, 자기자본비율이 낮을수록 금융사가 PF대출을 공급할 때 더 많은 대손충당금을 쌓도록 하는 ‘간접규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있다.
실제로 미국은 사업주체가 총사업가치(총사업비+개발이익) 대비 최소 15%의 자기자본을 투입하지 않으면 해당 사업에 대한 대출을 ‘고위험 상업용 부동산(High-Volatility Commercial Real Estate)’ 대출로 분류하고 은행이 일반 기업대출에 비해 대손충당금이나 은행자본을 1.5배 더 쌓도록 규제하고 있다. 아울러 제3자의 보증을 제한하는 규제도 필수적이다. KDI는 결과적으로 이러한 규제 없이는 자본확충을 지원하는 정책 도입만으론 자본확충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규제가 부재할 경우 정부의 여러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시행사는 막대한 개발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지분 투자자를 유치하지 않으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