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금융계 공룡’된 사모신용공여 시장, 생태계 뒤바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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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금융’ 사모신용공여, 전통 대출시장 규모 넘어설 듯
기존 은행권서 자금 조달 어려운 기업들 대거 몰려
미국 기업 지배권 잠식·기업회생 절차 영향 우려도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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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tchBook

‘그림자 금융’으로 불리는 사모신용공여(Private Credit)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기존의 금융 생태계마저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모신용공여 시장이 신디케이트론(Syndicated Loan, 공동대출)과 채권 시장을 합친 것보다 더 큰 규모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돈줄 급한 중소 규모 기업들 몰렸다

17일(현지시간) 글로벌 투자 전문 연구기관 피치북(PitchBook)은 자레드 엘리아스(Jared Ellias)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와 엘리자베스 드 퐁뜨네(Elisabeth de Fontenay) 듀크대 로스쿨 교수가 이달 초 발표한 논문 ‘레이더에서 사라지는 신용 시장(The Credit Markets Go Dark)’을 소개했다.

논문에 따르면 최근 고금리 장기화가 지속되는 와중에 은행이 대출을 조이자 돈줄이 급한 기업들이 사모신용 시장으로 몰렸고, 단기간에 시장 규모가 급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모신용펀드는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기업에 공여해 주거나 고위험 고수익 회사채를 사들여 이윤을 내는데 투명성이 낮은 데 비해 상대적으로 규제가 적어 위험성이 높은 상품으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달 20일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사모신용공여 시장 규모는 약 1조5,000억 달러(약 2,080조원)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20년 1조 달러(약 1,384조원)에서 50% 늘어난 수치다. 기존 은행권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중소 규모 기업들이 사모신용공여 시장으로 쏠린 영향이 크다. 이 같은 증가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모건스탠리는 사모신용공여 시장 규모가 오는 2028년경 2조8,000억 달러(약 3,87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엘리아스 교수팀은 기업 부채가 민간신용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지적하며 이 같은 변화가 기업 지배구조와 기업 가치, 부실 여부 등 여러 부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은행권에서 비은행권으로의 전환은 기업금융뿐 아니라 기업들의 운영 방식 전반에도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의존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에 대해 소비자는 물론이고 규제당국과 정책당국마저 아는 게 없어지는 상황을 생각해 봐야 한다”며 많은 기업과 산업에 대한 정보가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기업 지배권, 사모투자 펀드에 집중될 수도

사모신용공여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각 기업의 지배권이 대규모 사모투자펀드에 집중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투자펀드가 지분 인수를 통해 기업 지배권을 확보하면서 기업의 운영과 전략, 기업부실 등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논문은 이 같은 상황이 사회 건전성에 불확실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기존엔 개인 투자자들이 기업 지분을 직접 소유하는 만큼 의결권자인 대주주들이 적절한 의사결정을 할지 여부에 대한 우려가 컸으나 이제는 사모투자펀드들이 상장 및 비상장 기업의 경영권을 쓸어담으면서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는 데 대한 우려를 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더욱이 사모투자펀드가 소유한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약한 규제를 받는다. 또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보다 큰 이득을 도모한다. 수익을 내는 과정에서 펀드매니저들의 재량권이 상당한 것도 특징이다. 이 같은 구조는 기업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는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항간의 우려처럼 부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엘리아스 교수팀은 “대다수 사모투자펀드가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에 대해선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이런 펀드가 미국 기업들을 지배하게 될 경우 지분이 없는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가 묻힐 가능성이 있고, 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외부효과(negative externality)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봤다.

그런가 하면 논문은 사모투자펀드가 미국 기업들을 장악함으로써 미국 경제 전체를 재편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근거로는 사모투자펀드들이 특정 유형의 기업에 특정 조건으로만 자금을 지원하는 점을 들었다. 예를 들어 벤처캐피탈(VC) 펀드는 주로 기술 투자에만 초점을 맞추고, 기업 인수합병(M&A)으로 수익을 내는 바이아웃(Buyout) 펀드는 현금 유동성이 안정적인 회사들을 주로 상대한다. 이런 이유로 특정 성격의 기업들은 자본을 쉽게 조달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들은 늘 자금난에 시달리기 십상이다. 즉 돈이 몰리는 산업만 비대칭적으로 성장하면서 미국 경제의 구조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늘어나는 ‘좀비 기업’

일반적으로 사기업 정보는 공개 채권시장이나 준공개시장에서의 차입 거래(LBO)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기업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경우 공시 의무가 생기는 만큼 회사 사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사모투자펀드에 기대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기업 정보가 사실상 비공개화되는 일이 많아졌다. 규모가 큰 기업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엘리아스 교수팀은 “미국 경제의 큰 부분이 소실되는 일인 만큼 잠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는 기업가치 평가를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정보의 비대칭을 악화시켜 해당 기업과 거래하는 다른 기업들에 손해를 유발할 수도 있다. 현재 사모투자펀드들은 대출을 받아간 기업이 파산해 손해를 보게 되더라도 상환을 유예해 주는 식으로 실제 손실 발생 시점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좀비’가 된 기업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까지의 시간이 더 길어지는 만큼 파산 절차가 지연되거나 매각 절차의 공정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5월 미국에서 기업회생(Chapter11)을 신청한 요식업 체인 레드랍스터(Red Lobster)가 대표적인 사례다. 레드랍스터는 사모펀드 업체인 포트리스인베스트먼트그룹(이하 포트리스)에 2억5,000만 달러(약 3,460억원) 채무를 진 상태였는데, 포트리스는 대출 계약 조건을 내세워 주주 의결권을 획득했고 레드랍스터가 파산 신청을 내기 전 레드랍스터의 지배권을 100%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금융당국의 규제를 받는 은행이나 기존의 상업 대출 기관들이 기업의 경영권을 탈취할 수 없고 기업에 문제가 생겼을 때 공격적인 조처를 취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이에 엘리아스 교수팀은 사모신용공여 시장의 역할이 기업의 재정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만큼 현행 파산법 역시 사모신용공여 시장의 생태계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모 자본의 증가가 기업회생 절차를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현행 미국 파산법은 파산을 신청한 기업이 구조조정 없이 회사 자산을 인수할 의향이 있는 매수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을 허용한다. 미국의 ‘리테일 공룡’ JC페니(JCPenney)가 이 조항을 활용해 회생한 경우다.

그러나 엘리아스 교수팀은 사모신용공여 시장이 커지면서 잠재 인수자들은 사모투자펀드 소유 기업의 복잡한 자산 구조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사모신용공여 시장의 성장으로 부채 시장이 탈(脫)민주화되고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활황을 보였던 채권 시장이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상황에 대한 우려 속에서 파산법의 존재 이유와 기업 금융의 미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영어 원문 기사는 More zombies, less info: Study warns about consequences of private credit growth | PitchBook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