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에 재정 64% 당겨 쓴 정부, ‘내수 부진’ 하반기 어떻게 버티나
중앙정부 기준, 예산 66.2% 상반기 조기 집행
‘상고하저’, 하반기 정부 경기 대응 능력 떨어져
경기 부양 목적 ‘예산 신속집행’, 득실은?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올 상반기 신속집행 예산을 연간 계획 대비 64%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예산 대비로는 55%에 해당하는 규모다. 경기 방어의 한축인 기준금리 인하가 지연되는 가운데 재정 ‘실탄’마저 부족해지는 상황이 우려되면서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재정투입에도 건설 경기 등이 여전히 바닥을 치자 정부가 내수 부양의 처방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간 대비 63.6%, 상반기에 집행
2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포괄)는 올해 상반기에 신속집행 예산 중 357조5,000억원을 집행했다. 이는 연간 신속집행 예산 계획(561조8,000억원) 대비 63.6%에 달하는 규모로, 19조2,000억원 늘어난 규모기도 하다. 아울러 지난해 상반기 신속집행예산 집행률(61.2%) 보다도 2%포인트 더 높다.
정부가 상반기에 특히 재정을 집중 투입한 곳은 ‘중점관리 대상’ 사업으로 불리는 약자복지·일자리·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다. 중점관리 대상 사업에 할당된 109조5,000억원 예산 중 상반기에만 74조3,000억원 사용해 67.9%를 이미 집행한 상황이다. 우선 SOC 사업은 도로 5조3,000억원, 철도 5조8,000억원, 기타 6조8,000억원 등 17조9,000억원을 집행하며 상반기 목표(16조3,000억원) 대비 109.8% 수준을 달성했다.
공공기관 투자는 SOC 분야 등을 중심으로 총 37조원으로 목표 대비 2조원을 초과했다. 이는 상반기 목표인 34조9,000억원, 연간목표 63조5,000억원 대비 105.8%, 58.2% 수준이다. 민간투자는 국토교통부 등을 중심으로 2조8,000억원(48.6%)를 집행했고, 국토부·서울시 철도 사업 등 중점관리대상 사업의 원활한 집행으로 상반기 목표 대비 1,000억원을 초과 달성했다.
하반기에도 4조6,000억원 신속 집행
하지만 정부의 신속집행 예산 투입에도 건설투자는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이날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건설투자는 건물건설(주거용)과 토목건설이 모두 줄어 1.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전문가들은 하반기에 지출 여력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고 있지만, 정부는 하반기에도 신속집행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우선 일감 감소로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건설업 일자리 지원 방안을 다음 달 중 마련하고 고용감소가 심화되는 경우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고용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하반기 일자리 예산 4조6,000억원을 신속집행하는 한편, 기금운용계획 변경을 통해 지역고용촉진지원금과 저소득 근로자 생활안정자금 등의 지원대상을 5만 명 이상 확대하기로 했다. 또한 세법개정안을 통해 고용증대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통합고용세액공제를 재설계하고 미취업 청년을 발굴해 찾아가는 고용서비스를 제공하는 청년고용올케어 플랫폼도 내달부터 시범운영을 시작하는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인프라도 확충하기로 했다.
민생안정을 위한 재정도 차질 없이 집행할 방침이다. 먼저 고령층 친화적 주거공간과 가사·건강·여가 서비스를 결합한 시니어 레지던스 공급을 적극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민간사업자가 부지와 건물 매입 없이 사용권 확보만으로도 실버타운 설립·운영을 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완화한다. 인구감소지역에 분양형 실버타운을 도입하되 부실운영 사례는 적극 방지하고, 저소득층 대상 고령자 복지주택도 건설임대와 리모델링을 통해 해마다 3,000호씩 공급하는 등 지속해서 확대할 예정이다.
예산 신속집행 제도 ‘폐지’ 주장도
그러나 일각에서는 예산 신속집행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속집행으로 인해 되려 행정서비스의 질이 저하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당초 신속집행 제도는 ‘연초에 정부 예산을 집행하면 당해 연도 내수시장이 활성화한다’는 기조하에 출발했다. 물론 연초에 정부 예산을 집중해서 지출하면 당기 내수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으나, 신속집행에 따른 부작용이 있을 경우 적어도 부작용에 따른 손실 및 균형 집행을 통한 내수시장 활성화의 효과에 대한 연구를 선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정해야 하는 정부가 신속집행을 위해 행정 절차까지 간소화하고 시설비의 상반기 지출을 위해 선금 지급을 장려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로 인해 공정성은 떨어지고, 선금을 받은 시공사와 정부의 위치가 바뀌게 된다는 비판이다. 더욱이 신속집행에 따른 기회비용도 만만치 않다. 균형 집행을 하면 은행에서 이자를 지급하는데, 연금리 4.5%로 1조원만 계산해도 한달에 37억5,000만원이다.
또한 상반기까지 공사를 마무리하기 위한 공사 기간 단축은 부실 공사로 이어지고 추가 보수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다. 뿐만 아니라 ‘상반기 신속집행 60% 달성을 위한 독려’라는 명목으로 최일선에서 사업을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매일 계획서를 제출받으며 발생하는 행정력 낭비 등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이렇다 보니 민간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상반기에 공사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한시적 인력 부족과 선금으로 인한 추가 보증보험 가입, 자재 부족으로 인한 가격 인상 등으로 예상했던 비용보다 지출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10억원 이상의 세금이 투입되는 공사를 상반기에 마무리해야 하는 정부는 설계 기간도 짧게 설정하는 탓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며, 설계·공사 기간 단축으로 인해 충분한 조사와 검증도 이뤄지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