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국민 과반이 ‘빈곤층’ 전락, ‘밀레이’발 개혁 조치 한계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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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율 55%·극빈율 20%·아동 빈곤율도 70% 육박
밀레이 대통령 강력한 긴축 정책, '중산층' 끌어내려
고물가에 평균 급여 급감 '빈곤선' 아래로 곤두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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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빈곤율이 50%를 넘어서며 올해 1분기에만 500만 명에 가까운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지난해 취임한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 대통령이 페소화 평가절하 등 과감한 개혁 조치를 추진하며 국가 재정이 흑자 전환하고 물가가 안정되는 효과가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교육비나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중산층의 붕괴’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올해 들어 빈곤층 470만 명, 극빈층 280만 명 증가

4일(현지 시각) C5N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의 빈곤율이 올해 들어 3개월간 44%에서 54.8%로 급증했다. 극빈율도 13.8%에서 20.3%로 증가했다. C5N은 “해당 수치는 민간연구소가 아닌 아르헨티나 국립통계청(INDEC)이 지난 2일 발표한 공식 수치”라고 강조하며 “이는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급격한 구조조정과 고물가로 인한 급여 구매율 하락으로 인해 빚어진 결과”라고 보도했다.

INDEC 통계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인구 4,600만 명의 절반 이상인 2,550만 명이 빈곤층으로 집계됐으며, 이 중 900만 명이 절대빈곤인 극빈층에 속한다. 지난해 12월 밀레이 정권 출범 이후 3개월 만에 빈민은 470만 명, 극빈층은 280만 명가량 늘어난 것이다. 특히 어린이 빈곤율과 극빈율이 각각 69.7%, 30%로 14세 이하 어린이 10명 중 7명이 가난한 가정에 속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INDEC에 앞서 지난 2월 아르헨티나 가톨릭대학교(UCA·Universidad Católica Argentina) 산하 사회부채관측소가 발표한 빈곤율은 57.4%로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밀레이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해 12월 기록한 49.5% 비교하면 2개월여 만에 8%P가량 급등한 수치다. INDEC의 공식 통계와는 수치상 다소 차이가 있으나 과반의 국민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빈곤으로 인한 서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아르헨티나에서는 밀레이 정권의 경제 정책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재정 흑자 달성을 목표로 한 밀레이 정권의 무리한 경제 정책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다. 밀레이 대통령은 “지난 100년간의 쇠퇴기를 끝내기 위해 점진적인 변화 대신 오직 급진적인 변화만이 있을 것”이라며 다소 과격한 개혁정책과 충격요법을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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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년간 아르헨티나 페소·달러 환율(2024.8.5. 기준)/출처=국제금융센터

밀레이 정권, 페소화 평가절하 등 개혁 조치 단행

말레이 정부는 출범 직후 고강도 개혁 조치의 첫걸음으로 자국 통화인 페소화에 대한 54% 평가 절하를 단행했다. 기존 환율은 달러당 366.5페소였지만 정부의 발표 이후 페소화의 공식 환율은 달러당 800페소로 인상됐다. 루이스 카푸토(Luis Caputo) 아르헨티나 경제 장관은 해당 조치에 대해 “아르헨티나는 123년의 역사에서 113년간 재정 적자를 겪었고 이제는 재정 적자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향후 몇 달간 인플레이션 상황이 전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정부의 조치에 대해 블룸버그통신은 “아르헨티나가 그동안 시장 개입을 통해 페소화 가치를 방어해 왔지만 이로 인한 부정적 효과가 커지면서 페소화 평가절하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전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성명을 내고 “페소화 평가절하는 과감한 조치”라고 환영하며 “경제를 안정시키고 지속가능한 민간 주도 성장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2018년 금융위기 당시 IMF로부터 빌린 구제금 440억 달러(약 60조원)를 아직 상환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카푸토 장관은 페소화 대폭 평가절하 조치를 포함해 10여 개 긴급 경제 대책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에너지·교통 보조금 삭감, 1년 미만 정부 근로 계약 미갱신, 새 공공사업 입찰 중지, 지방정부로의 재정 이전 최소화, 정부 부처와 사무국 규모 50% 축소, 공무원과 공공부문 일자리 감축, 수입 사전허가제(SIRA) 폐지를 통한 절차 간소화, 보편적 아동수당 2배 인상안 등이 포함됐다. 다만 중앙은행 폐지와 달러화의 공식 통화 채택 등 극단적인 조치는 일단 유보했다.

“고물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회적 재앙 직면할 것”

이런 가운데 아르헨티나 내부에서는 현재 밀레이 정부의 개혁 조치를 두고 경제 정상화를 위한 일종의 성장통으로 보는 시각과 무리한 긴축 정책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란 시각이 대립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 폭등했던 물가가 점차 둔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6월 물가 상승률은 4.6%로 최고치였던 지난해 12월 25%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무분별한 화폐 발행을 중단하면서 국가 재정도 16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조만간 국제 금융시장 접근 제한도 해제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후자의 경우 과도한 긴축 재정으로 중산층의 붕괴가 심화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교육비, 주거비 등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직장인 평균 급여가 빈곤선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INDEC에 따르면 1월 기준 근로자 평균 임금은 55만4,269페소(약 1,320만원)로 기본 생필품(CBT·Canasta Basica Total) 구입비 59만6,823페소를 하회했다. 페소화 평가절하로 식료품 등 물가 전반이 급등한 데 반해, 공공 일자리 감축과 공공사업 중단으로 일자리가 급감하고 에너지·교통 보조금이 삭감되면서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전락한 것이다.

소비 부진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아르헨티나 상업·서비스 연맹(CAC)에 따르면, 6월 소비는 전년 대비 9.8% 하락했다. 7월 대형마트 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18% 하락한 데 이어 8월에는 하락 폭을 20% 이상으로 키울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빈곤율의 확대가 가계 수입과 민간 소비의 위축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내수 경제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UCA 사회부채관측소는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해소되면 안도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사회적 재앙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