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화학 특수가스 인수 줄다리기, ‘1조3,000억원’ 가격 두고 논쟁 본격화
효성화학 특수가스 가격 협상 돌입, 우협 측 "몸값 고평가"
재무 상황 악화 일로 걷는 효성화학, "몸값 조정 크지 않을 가능성 높아"
석유화학산업 부진 심화, 원인은 중국의 공격적인 석유화학 시설 증설
효성화학 특수가스사업부 매각이 본격화한 가운데 매각 측과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우협) 측이 몸값을 두고 ‘밀당(밀고 당기기)’을 이어가고 있다. 몸값이 지나치게 높은 수준으로 책정됐단 인식이 확산한 영향이다. 다만 효성화학이 특수가스를 헐값에 매각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재무 안정성이 악화한 탓에 자금 유입이 시급한 상황이어서다.
효성화학 특수가스 가격 두고 ‘밀당’
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IMM프라이빗에쿼티(PE)-스틱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은 최근 효성화학 특수가스사업부 몸값을 낮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전 제시가 1조3,000억원이 고평가됐다는 인식에서다.
컨소시엄 측은 특수가스가 주력 제품인 삼불화질소(NF3)를 장기 계약이 아닌 스팟성(일시적) 공급 형식으로 판매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 삼아 몸값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IB 업계 관계자는 “산업용 가스 업체 에어퍼스트의 경우 범용성이 높은 제품을 판매하며 삼성전자 등 주요 고객사들과 장기 계약을 맺고 납품하고 있지만, 특수가스는 그렇지 않다”며 “이번에 책정된 몸값은 과하게 높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효성화학 특수가스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600억원에 불과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현재 국내 증시에 상장돼 있는 산업용 가스 관련 기업들의 EBITDA 멀티플은 최고 10배 수준이다. 원익머트리얼즈가 지난해 EBITDA를 기준으로 10.6배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대비 주가 수준)을 인정받았고, 동성화인텍이 9.1배, 태경케미컬이 6.9배, 덕양산업 2.7배가량이다. 만약 10배의 멀티플을 효성화학 특수가스에 적용하면 기업가치는 총 6,000억원 수준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컨소시업 입장에선 6,000억원 선의 가격을 정하는 게 이익이란 의미다.
적자 시달린 효성화학, 지나친 가격 조정은 부담일 듯
다만 컨소시엄이 효성화학 특수가스의 몸값을 6,000억원대로 깎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통상 기업 매각 시 우협 선정 단계에서부터 수정안(마크업)에 가격 조정 제한을 두는데, 그 조정 폭이 최대 10% 수준으로 설정돼 있어서다.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하더라도 1조1,700억원이 최대 한계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효성화학 입장에서 지나치게 낮은 몸값을 수용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NF3 시장은 반도체 산업의 비약적인 성장에 발맞춰 갈 수밖에 없는 만큼 일반적인 산업용 가스 기업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증설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효성그룹의 NF3 생산 능력은 2007년 1,300톤에 불과했지만 꾸준히 증설한 결과 현재 1만 톤까지 늘었다. 여기에 오는 2026년까지 1만7,500톤으로 확장할 계획을 세운 만큼 미래 성장성을 고려해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효성화학의 재무 상황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단 점도 몸값을 함부로 낮출 수 없는 이유로 꼽힌다. 효성화학은 2022년부터 이어진 대규모 영업적자로 인해 부채 비율이 3,500%에 달한다. 올해 1분기 기준 순차입금 규모는 2조5,000억원으로 자기자본 924억원 대비 차입 부담이 과중하다. 여기에 2분기 추가 손실이 더해질 경우 자본잠식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결국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베트남 법인 매각까지 타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사 내 알짜 사업부인 특수가스를 헐값에 매각하진 않을 것이란 게 시장의 대체적인 시선이다.
이에 컨소시엄 측은 우선 자금 마련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이 중 눈에 띄는 건 IMM PE의 5호 블라인드펀드(로즈골드 5호)다. 2021년 10월 자본시장법 개정 이후 처음으로 펀드 파이낸싱을 활용해서다. 회사를 운영해 현금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대출금을 갚는 기존 인수금융과 달리 펀드 파이낸싱은 펀드의 캐피탈 콜(Capital Call, 출자 요청)을 통해 은행에 돈을 갚는다. 대출 담보가 PEF의 캐피탈 콜인 셈이다.
IMM PE가 펀드 파이낸싱을 활용한 이유는 IRR(내부수익률) 제고 측면이 크다. 통상 GP(위탁운용사)의 투자 성과를 평가할 때 IRR이 자주 활용되는데, 여기엔 시간 가치가 내재돼 있다. 수익률이 같아도 투자 기간이 짧을수록 IRR이 올라간단 의미다. 이런 가운데 펀드 파이낸싱을 활용해 대출금으로 회사를 인수하면 투자 기간이 같더라도 펀드 자금이 실제로 투입되는 기간을 줄일 수 있어 명목상 투자 기간이 줄어드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투자 성과를 높이기 위해 사전 작업이 이미 시작됐단 의미다.
특수가스 인수 후 ‘엑시트’ 가능할까
다만 시장 일각에선 효성화학 특수가스 인수로 IMM PE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크지 않을 수 있단 의견도 나온다. 인수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매각을 통한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가능할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 효성화학 특수가스 자체만 보면 알짜 사업부라 할 만하다. 실제 효성화학은 지난해 기준 특수가스 사업에서만 매출 1,684억원, 영업이익 20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효성화학 전체 매출 비중의 6%, 영업이익 비중의 11.9%를 차지할 정도다. 특히 최근 반도체 경기가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특수가스 부문의 수익성과 성장성이 커지기도 했다. 일본의 화학공업사 간토텐카공업에 따르면 올해 NF3 수요는 2022년 수요 수준까지 회복되고, AI 시장 확대에 따른 수요 증가로 오는 2027년까지는 매년 10% 이상의 수요 증가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석유화학산업 전반의 부진이 예상되고 있단 점이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던 중국이 석유화학 시설을 공격적으로 증설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수직 하락한 탓이다. 실제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석유화학 기업의 중국 수출 비중은 36.3%로, 3년 전인 2020년 42.9%에 비해 6.6%p나 떨어졌다. 이렇다 보니 전체 수출액도 감소하는 추세다. 한국무역협회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석유화학 제품 수출액은 456억 달러(약 62조원)로 전년 대비 15.9% 감소했다. 이처럼 ‘떨어지는 해’로 전락한 화학 가스 시설을 인수하겠다고 나설 기업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게 시장의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