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美 연착륙 과정에 진입, 단기 급락 가능성 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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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고용·내수 등 경기지표 두고 전문가 엇갈린 전망
제조업 침체가 노동 수요 둔화로 이어져 실업률 상승
2분기 경제성장률 2.8% 등 실물경제는 호조 이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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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은행이 최근 불거진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와 관련해 경착륙 가능성은 작다고 진단했다. 노동시장이 다소 냉각됐지만 수급이 균형을 찾아가는 ‘정상화 과정’으로 현재 연착륙 단계에 진입했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다만 미국의 경기 지표가 부진할 경우 국내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고 나아가 금융시장과 대미 수출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는 남아 있는 상태다.

美 노동시장 다소 냉각됐지만 수급 균형은 정상화

23일 한은은 ‘경제전망보고서: 최근 미국 경기흐름에 대한 평가’를 통해 “미국 경기가 단기간에 급락할 가능성은 작다”며 “지난해 하반기 이후 연착륙 단계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미국 노동시장이 다소 냉각됐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해고율이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 노동 수요가 크게 위축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수급이 균형을 찾아가는 정상화 과정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통상 침체기 진입 직전에 성장률이 큰 폭으로 둔화하는데 최근 미국 경제는 양호한 성장 모멘텀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은의 이번 분석은 앞서 실업률 등 7월 고용지표가 부진하자 미국 경제가 경착륙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일부 경제 비관론자들은 최근의 실업률 상승, 채용률 하락, 빈 일자리 감소 등 경기후행지표의 부진이 기업의 노동 수요 둔화에 기인하고 있어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들은 일자리 감소가 경기동행성이 높은 제조업의 업황 부진의 영향이 크다는 점에 주목했다. 반면 노동 수요가 대체로 양호한 수준이며 최근 실업률 상승은 노동 공급 증가의 영향으로 급격한 경기 위축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보고서를 집필한 조사국 미국유럽경제팀 연구진은 “양측의 견해를 바탕으로 경기 흐름을 판단해 보면 삼의 법칙(Sahm rule)의 발동만을 근거로 경기 침체라고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삼의 법칙은 경제학자 클라우디아 삼(Claudia Sahm)이 2019년 고안한 것으로 3개월 평균 실업률이 1년 내 최저치 대비 0.5%포인트 이상 높을 경우 경기 침체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한다. 다만 삼의 법칙을 개발한 당사자도 해당 산식만으로 경기 침체를 예측하는 것에 는 한계가 있다며 팬데믹 이후 노동시장의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연구진은 미국 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하반기 이후 미국 경제는 고물가·고금리의 영향이 누적되고 노동시장 부진 등이 하방 압력으로 작용해 성장세가 점차 둔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주요 고용 지표가 팬데믹 이전 혹은 균형 수준에 근접하고 있어 앞으로의 고용 상황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이어 금융시장 측면에서는 경기 관련 지표의 등락에 따라 가계·기업 심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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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는 회복세, 노동시장은 등락 반복하며 불안정

미국 경제 침체에 대한 전망이 엇갈린 가운데 최근 소비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각) 미 상무부가 발표한 7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1% 증가했다. 소매판매 증가율이 1% 이상을 기록한 것은 2023년 1월 3% 증가율을 기록한 후 18개월 만이다. 자동차를 제외한 소매판매는 0.4% 증가해 증권가 추정치 0.2%를 상회했다. 미국 대형 유통업체 월마트도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2% 증가하며 컨센서스를 상회했다.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증권가도 월마트의 연간 매출 전망치를 상향했다.

반면 노동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7월 21~27일을 기준으로 집계된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전주 대비 1만4,000건 증가하며 2023년 8월 첫째 주 25만8,000건 이후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다. 그러다 일주일 후인 7월 28일~8월 3일 전주 대비 감소하며 노동시장 냉각 우려를 잠시나마 해소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8월 11∼17일 23만2,000건으로 한 주 전보다 4,000건 증가했다. 이는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 23만 건을 웃도는 수치다.

이 기간 2주 이상 실업수당을 신청한 ‘계속 실업수당’ 청구 건수도 186만3,000건으로 2021년 11월 3주 차 이후 2년 9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계속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증가한 것은 재취업 현황과도 직결된다. 일자리를 잃은 후 새 직장을 찾지 못한 노동자가 늘어났다는 의미다. 노동부는 계속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올해 4월 하순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미국의 실업률은 4.3%로, 2021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美 경기 침체 시그널, 韓 경제 하방 압력으로 작용

팬데믹 이후 ‘나홀로 호황’을 누렸던 미국은 올해 들어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 국면을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안심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도 경제지표 둔화를 잇달아 확인하면서 경기 침체에 대한 두려움을 키웠다. 2분기 경제성장률이 2.8%를 기록하는 등 실물지표를 살펴보면 미국의 경기 침체가 본격화한 것으로 판단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평가가 우세함에도 시장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그만큼 미국의 통화정책 피벗이 전 세계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고용시장에 대한 전망이 엇갈림에도 최근의 실업률, 실업수당 청구 건수, 해고율 등은 미국의 노동시장이 기존에 예상했던 것보다 강하지 않다는 시그널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보다 노동시장으로 초점을 전환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조만간 고용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금리 인하로 대응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지난 21일 공개된 7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서 다수의 연준 위원이 9월 통화정책 완화를 강력히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시장도 9월 기준금리 인하를 확실시하는 분위기다. 연준의 9월 기준금리 인하가 현실화된다면 미국 경제의 고금리 부담을 낮추고, 금융시장에는 위험회피 심리를 완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 외환시장에서도 그동안 고금리의 매력을 누렸던 달러에 대한 기대가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2021년 6월부터 시작된 미국의 금리 인상과 달러 강세의 공식은 이제 역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다만 미국 경제가 연착륙 단계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일시적인, 혹은 단기적인 경기지표의 부진은 한국 경제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국내 경제 주체들이 미국의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상황이 길어지면 국내 소비와 투자가 더욱 위축되고 금융시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지난달까지 10개월 연속 ‘플러스’를 기록한 수출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