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117억 횡령”, NH농협은행 또 사고, 구멍 뚫린 내부통제 시스템
4년간 지인 명의 도용해 100억원대 허위 대출
사고 연루 직원 스스로 목숨 끊어 감사 중단
올해만 네 번째 금융 사고, 내부통제 '도마 위'
NH농협은행에서 100억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이달 여신 부문 자체 감사 진행하는 과정에서 명동지점 소속 직원의 거래 내역에서 특이점을 발견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농협은행에서 배임·횡령 관련 금융사고가 터진 것은 올해 들어서만 네 번째로, 내부통제시스템 부실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농협은행 명동지점 직원, 117억원 횡령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최근 명동점에서 횡령으로 의심되는 부당여신거래 행위를 발견하고 지난 20일 감사에 착수했다. 영업점 직원 A씨는 지인 명의를 도용하는 방식으로 거액의 대출을 일으킨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 기간은 지난 2020년 6월부터 올해 8월까지 약 4년으로, 사고 금액은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117억원에 달한다.
A씨는 직전 근무지인 회현역지점 재직 시절 서류를 꾸며 허위 대출을 받아 지인의 명의 계좌로 이체받는 방식으로 횡령을 했다. 이에 농협은행은 A씨와 회현역지점과 명동지점에서 함께 근무했던 지점장을 대기발령한 상태다. 다만 A씨가 내부 감사를 받고 난 후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감사는 중단된 상태다. 서울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21일 오전 11시 49분께 종로구 효자동의 차 안에서 A씨의 시신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족한 준법감시 인력, 5대 은행 중 관련 비율 ‘꼴찌’
농협은행에서 금융사고가 발생한 것은 올해 들어 이번이 네 번째로, 올해 상반기에만 금융사고 3건이 발생했다. 담보를 부풀리거나 배임이 의심되는 부당 대출 사고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 2월엔 허위 매매계약서를 활용한 109억원 규모의 부당 대출 사고가 났고, 5월에는 공문서를 위조한 업무상 배임(51억원)과 분양자 대출사고(10억원)도 있었다. 201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로 범위를 넓혀보면, 7년간 총 17건의 사고가 발생했으며 횡령금액만 31억원에 이른다.
임직원 배임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농협은행의 부실한 내부통제 시스템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이번 사고는 지난해 10월 금융당국으로부터 내부통제 미흡으로 관련 조치를 받은 지 5개월여 만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간 농협은행의 내부통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실제로 농협은행의 내부통제 인력 비율은 5대 은행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에 국회와 금융당국이 국정감사와 기관조치 등을 통해 농협은행의 내부통제 문제를 꾸준히 지적하고 있지만, 관련 인력의 충원 속도는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이번에 발생한 배임 사고 역시 통제 인력 부족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앞서 금감원은 2022년 은행권 금융사고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 강화를 위해 준법감시인력의 단계적 확충 등을 담은 ‘은행권 내부통제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방안에 따라 일반 은행은 전체 임직원 대비 준법감시인력의 비율을 지난해 말까지 0.4%, 오는 2025년까지는 0.8% 이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에 농협은행은 상시감사반과 규제대응지원반을 팀으로 승격시키는 등 조직을 강화하고 준법감시인력을 확충해 53명(지난해 8월 기준)에서 지난해 연말 65명까지 늘렸다.
다만 일각에선 농협은행의 후속 조치를 두고 당국의 기준치를 맞추기 위해 최소한의 인력만 충원한 게 아니냐며 평가 절하하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말 농협은행 전체 임직원 1만6,119명 기준 준법감시인력 비율은 0.403%로, 당국 기준치 0.4%를 간신히 넘기는 수치다. 인력이 1명만 적었어도 기준치에 미달한다. 이런 가운데 농협은행이 2025년까지 당국의 비율 목표치(0.8% 이상)를 달성하기 위해선 현재 준법감시인력 수준의 2배 가까운 인원이 확충돼야 한다. 하지만 농협은행의 그동안의 행보를 감안할 때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란 목소리가 크다.
근절 방안 대책 無, 추가 금융사고 가능성도
농협은행의 내부통제에 구멍이 난 사실이 드러나면서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의 책임론도 불거진 모습이다. 강 회장은 3개월 전까지도 고강도의 내부 기강 잡기를 천명하며 횡령·배임 사건 근절을 약속했으나, 이후에도 각종 비위 행위가 끊이지 않자 내부통제 등 관리 실패에 따른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서 농협중앙회는 지난 5월 “범농협 차원의 내부통제와 관리책임을 강화해 임직원의 경각심을 높이고 사고발생을 원천 차단하겠다”며 △사고를 유발한 행위자에 대한 즉각적인 감사 및 무관용 원칙에 의한 처벌 △공신력 실추 농·축협에 대한 중앙회의 지원 제한 △중대사고와 관련된 계열사 대표이사 연임 제한 △사고 발생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즉각적인 직권정지 등에 나선다고 밝혔다.
특히 농협은 공신력을 실추시킨 농·축협에 대해 △중앙회의 자금지원 제한 △예산·보조·표창 등의 업무지원 제한 △점포설치 지원 제한 등의 강력한 조치를 취할 예정임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강 회장은 “윤리경영은 조직의 생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며 “농협의 사고예방을 위한 관리책임강화 발표는 새로운 대한민국 농협 구축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횡령 사고 역시 지난 4년 동안 지속됐음을 고려할 때, 은행 내부의 감시 및 통제 시스템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더욱이 내부통제 구멍으로 금융사고가 유난히 잦음에도 사고 재발엔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지난 6월 이석용 농협은행장이 “내부통제 방안을 구체적으로 수립하고 있고, 금융사고 근절 방안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지금까지 구체적인 후속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언제든 또 금융사고가 터질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