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보험사’ 주담대 금리 역전, 시장 혼란 키우는 관치금융에 실수요자만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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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 대출금리가 은행보다 싸다" 초유의 금리 역전
당국의 고강도 압박에도 대출 증가폭 연일 신기록 경신
대출금리 인위 조정, 실수요자 이자 부담만 가중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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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압박에 은행권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높이면서 은행 금리가 보험사의 주담대 금리보다 높아지는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담대 수요가 꺾이지 않는 가운데 정부의 일관성 없는 규제가 혼란을 유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사 주담대 금리, 은행보다 낮아져

29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8월 생명보험사 10곳의 주담대 금리(연 3.59%~6.83%) 하단은 한 달 전(연 3.82%)보다 0.23%포인트 하락한 연 3.59%로 집계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주택가격 3억원 △대출금액 1억원 △대출기간 30년 △고정금리 △아파트담보대출로 설정할 경우 삼성생명이 3.59~4.94%, 삼성화재 3.68~6.13%, 농협손해보험 3.98~6.17%, KB손해보험 4.07%~6.08%, 한화생명 4.18~4.91%, 교보생명 4.23~5.44%, 동양생명 4.56~4.76% 등으로 나타났다.

반면 같은 날 시중은행 주담대 5년 고정금리(혼합·주기형)는 3.63~6.03%로 집계됐다. 두 달 전 2.94%~5.76%에서 하단이 0.69%포인트 상승하며 3% 중반대를 넘어선 모습이다. 2금융권인 보험사보다 1금융권의 금리가 더 높은 역전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보험사뿐 아니라 지방은행의 주담대 금리도 시중은행 금리보다 낮아졌다. 27일 주담대(혼합형)의 하단 금리 기준으로 BNK경남은행은 연 3.52%, 영업 근거지가 대구·경북인 iM뱅크(옛 대구은행)는 연 3.25%다. BNK부산은행은 이달 초 연 2.9%대 금리에 주담대 특판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1조원 한도의 특판 상품은 13일 만에 소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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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대출 빗장에 ‘풍선효과’ 우려

이 같은 역설 현상은 폭증하는 가계부채와 집값 상승을 잡기 위해 금융당국이 은행권 대출 규제를 강화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시행을 기존 예정했던 7월에서 9월로 급작스럽게 연기한 바 있다.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의 자금 융통을 위한다는 명목에서였다. 집값이 들썩이던 와중에 한도 규제가 갑자기 두 달 미뤄지면서 은행 대출은 막차 수요로 폭증했고, 당국의 속도 조절 주문으로 은행권은 지난달부터 금리를 20차례 넘게 인상하며 고삐를 조였다.

하지만 은행권의 대출 억제 카드가 무색하게 주담대 증가 속도는 역대 최고를 경신하고 있다. 26일 기준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23조7,783억원으로 7월 말 715조7,383억원 대비 8조400억원 증가했다. 지난달 증가 폭인 7조1,660억원을 벌써 뛰어넘은 것이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이 한창이던 2021년 4월(9조2,266억원) 이후 40개월 내 최대 증가 폭이다. 주담대 잔액 역시 지난달 말(559조7,501억원)과 비교해 7조2,059억원 늘어 566조9,56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에 전문가들은 대출 수요가 은행업권을 넘어 2금융권으로 불붙는 풍선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험사 등 2금융권 주담대 금리는 시중은행보다 0.5~1%p가량 높지만, 2금융권 금리가 은행보다 낮아지면서 우량 차주도 보험사나 상호금융권의 대출 창구를 두드릴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출 한도 면에서도 2금융권이 더 유리한 상황이다. 현재도 보험사 등 2금융권은 DSR이 50% 적용돼 1금융권이 적용하는 40%보다 대출 한도가 높게 책정되는데, 은행권이 다음 달 스트레스 DSR 2단계를 시행하면 1금융권 대출 한도는 더 줄어든다. 여기에 더해 최근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압박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출 수요를 억제하고 있다. 현재 시중은행은 주담대 만기 기간 단축과 한도 축소, 거치 기간 폐지 등 가계대출을 조이기 위한 카드를 모두 꺼내 들며 대출 문턱을 크게 높인 상태다.

2금융권에 대출이 몰리고 이들 차주들이 빚을 갚지 못할 경우 1금융권보다 큰 타격을 받아 연쇄 부실 및 금융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리 인상으로 인한 실수요자 부담 가중도 문제지만 2금융권 대출수요 부담이 높아질 경우 가계부채의 뇌관이 2금융권으로 옮겨갈 수 있다”며 “이미 연체율 등 건전성 우려가 높은 곳은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가계대출 대책 대혼선, 시장 왜곡 불러온 ‘엇박자 정책’

통상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면 주택 마련 수요가 커져 주담대가 증가한다. 이런 추세를 반전시키기 위해선 정부가 집값을 안정시키고 돈줄 역할을 하는 대출을 관리해야 하는데,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시장의 왜곡을 불러왔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실제로 당장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데도 신생아특례보금자리 대출 자격을 완화한 것은 불난 집값에 기름을 부었다. 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당시 서민 부담을 이유로 대출금리 인하를 주문하고 대출 갈아타기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은행권의 금리 인하 경쟁을 부추겨 잠자던 수요까지 폭발시켰다. 정부가 직접 ‘빚내서 집 사라’는 시그널을 준 셈이다.

하지만 가계부채가 급증하자 정부는 시중금리가 내려가는 시점임에도 돌연 ‘가계대출 억제 정책’ 카드를 꺼내며 금리 인상을 종용했다. 이에 은행권은 당국의 압박에 따라 대환대출을 포함해 주담대 금리 인상으로 대응했다. 정부가 불과 반년 사이에 완전히 다른 주문을 내놓으면서 금리 ‘인하’ 경쟁이 금리 ‘인상’ 경쟁으로 전환됐고 급기야 지금의 금리 역전 상황까지 맞닥뜨린 것이다. 이 같은 기현상에 대해 금융당국은 “대출금리 상승은 당국이 원하던 바가 아니다”라며 은행권에 화살을 돌리고 있지만, 시장에선 이를 두고 ‘관치금융의 역습’이란 표현이 통용되고 있다.

관치금융에 대한 비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말에는 은행들의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이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50년 주담대 상품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DSR 규제 완화의 대안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은행권 주담대 증가폭이 3년 만에 최대폭으로 늘어나는 등 과열 조짐이 보이자, 당국은 즉시 입장을 바꿨다. 당시에도 정부 정책이 엇박자라는 지적이 나왔는데, 금융당국은 그때도 은행권이 대출한도를 늘리기 위해 50년 만기 대출을 사용하거나, 소득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며 모든 책임을 은행에 전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관치금융 탓에 실수요 금리까지 줄줄이 오르면서 결국 대출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는 데 있다. 최근 주담대 금리 산정을 위한 지표 금리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와 은행채 등이 내림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은행들이 대출 금리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즉 돈을 빌린 차주들이 시장 금리보다 더 높은 이자를 떠안고 있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