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철회한 두산로보틱스-두산밥캣, 주주들 “근본적인 문제 여전해”

160X600_GIAI_AIDSNote
두산로보틱스, 두산밥캣과 포괄적 주식 교환 계약 해제
빗발치는 주주 불만과 금융당국 제동이 압박 더했나
"에너빌리티 주주가 손해다" 사그라지지 않는 논란
doosan_20240830

두산로보틱스가 두산밥캣과의 포괄적 주식 교환 계약을 해제한다. 합병 비율 산정과 관련한 주주들의 불만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가운데, 금융당국의 직접적인 압박이 누적된 결과다. 다만 주주들은 포괄적 주식 교환 해제는 지배구조 개편안 중 일부분에 불과하며,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두산로보틱스-두산밥캣, 주식 교환 않기로

지난 29일 두산로보틱스는 두산밥캣과 포괄적 주식 교환 계약을 해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두산로보틱스 측은 “양사의 포괄적 주식 교환의 필요성 및 적절성과 관련한 주주 설득 및 시장 소통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주 및 시장의 부정적 의견이 강한 상황”이라며 “포괄적 주식 교환을 통한 시너지가 존재해도 현시점에서 이를 추진하지 않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양사의 사업 재편과 관련한 논란은 합병 비율 산정에서 출발했다. 일반적으로 주권상장법인의 주식 교환가액을 정할 때는 기준시가와 자산 가치 중 하나를 기준으로 택할 수 있지만, 원칙적으론 기준시가를 적용하게 돼 있다. 두산그룹은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적용해 두산로보틱스의 교환가액을 8만114원, 두산밥캣의 교환가액을 5만612원으로 각각 확정했다. 이에 따른 합병 비율은 1대 0.63 수준이다.

해당 조치는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시장은 두산그룹의 부적절한 합병 비율 산정으로 인해 두산로보틱스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부풀려지고, 두산밥캣 기업가치는 평가절하됐다며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실제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매출 530억원, 영업적자 158억원을 기록한 적자 회사다. 반면 두산밥캣은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만 각각 9조7,000억원과 1조3,000억원에 이르는 ‘알짜 자회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lee_bokhyun_20240830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8일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산운용사 CEO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금융감독원

금융당국의 압박

금융당국 역시 양사의 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지난달 15일 금융감독원은 두산로보틱스가 제출한 ‘합병’ 및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증권신고서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 정정 제출을 요구했다고 공시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금감원은 △증권신고서의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경우 △중요 사항에 관해 거짓의 기재 또는 표시가 있는 경우 △중요 사항이 기재 또는 표시되지 않은 경우 △중요 사항의 기재나 표시 내용이 불분명한 경우 등에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할 수 있다.

최근 이복현 금감원장은 두산 등 주주가치 훼손으로 논란이 된 기업들을 정조준해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8일 이 원장은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개최된 간담회에서 “기획재정부 등 소관 부처와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배주주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기업경영 사례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정부와 시장 참여자들의 진정성 있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로 근절돼야 할 ‘그릇된 관행’”이라며 “주주의 권익 보호보다는 경영권 행사의 정당성만이 강조되어 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후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 원장이 언급한 그릇된 관행이 사실상 최근 진행 중인 두산로보틱스·두산밥캣 합병 사례를 가리키고 있다는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이어지는 당국의 압박 속 여론은 계속해서 악화했고, 두산로보틱스는 결국 두산밥캣과의 포괄적 주식 교환 계약을 해제했다.

주주 불만 여전한 이유는?

하지만 주식 교환이 무산됐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주주들의 불만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소수주주 의결권 플랫폼 액트팀은 29일 입장문을 내고 “포괄적 주식 교환을 철회했다고 해서 이 사건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며 “(양사의 주식 교환 합병이 무산돼도) 두산에너빌리티 입장에서는 기존과 달라지는 게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포괄적 주식 교환 계약 해제는 지배구조 개편안 중 일부를 철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실제 두산에너빌리티를 기존 사업 회사와 두산밥캣 지분을 소유한 신설 투자 회사로 인적분할하고, 해당 분할신설법인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안은 아직 철회되지 않은 상태다. 두산그룹은 앞으로도 금감원의 정정 요구사항을 반영해 두산에너빌리티 분할신설법인과 두산로보틱스 간 합병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다만 당국이 에너빌리티 분할신설법인의 수익 가치를 책정할 때 현금흐름할인법, 배당할인법 등을 활용해 기준시가 평가 방법과 비교하도록 지시한 만큼, 기준시가로만 평가했던 기존 합병 비율은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액트팀은 “두산에너빌리티 입장에서는 기존과 달라지는 것이 없고, 기존 안대로 밥캣을 로보틱스에 빼앗기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알짜 자회사 두산밥캣을 로보틱스에 넘기게 될 경우 결국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은 부채비율 상승, 배당 수익 감소 등 피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액트팀은 “(두산의 주식 교환 철회는) 밥캣만 일부러 살려주면서 에너빌리티 주주들을 궁지에 빠뜨리려는 계책으로 보인다”고 주장, 강력한 반발 의사를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