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장 “들쭉날쭉 대출 정책에 소비자 혼란”, 실수요자 보호 방법 논의 약속
금감원장, 은행권에 가계부채 관리 ‘자체적 기준’ 확립 주문
추석 전 은행장 만나 논의도, 구체적 대책 마련 기대
가계대출 고삐에 풍선효과 우려, 전문가들 "2금융권도 규제 강화해야"
최근 금융당국의 압박에 은행권이 연일 ‘초강수’ 가계대출 억제책을 내놓으면서 시장에 혼란을 준다는 비난이 커지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오는 10일 은행장들과 만나 가계대출 정책과 관련해 혼란을 야기한 부분을 손보겠다는 입장이다.
이복현 “실수요자 제약 없게 가계대출 세심히 관리할 것”
4일 금융감독원은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신관에서 ‘가계부채 관련 대출 실수요자·전문가 현장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이 원장은 “최근 서울·수도권 주택시장 회복, 금리 인하 기대 등으로 가계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해 여러모로 걱정이 앞선다”며 “과거 여러 차례 경험했던 것처럼 대출 수요가 관리되지 않을 경우 금융 불균형이 심화되고 ‘내 집 마련’을 바라는 실수요자들의 심리적 불안도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당국은 지금까지 가계부채 문제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적정수준으로 관리하고자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상환능력 범위내 대출 관행 정착을 위해 차주별 DSR 제도를 도입했고 올해 2월에는 금리 변동 위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스트레스 DSR 제도를 시행했으며 이번 달부터는 은행권뿐만 아니라 제2금융권에도 2단계 스트레스 DSR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융권을 향해 “갭투자 등 투기수요 대출에 대해서는 심사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으나 정상적인 주택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형태의 대출 실수요까지 제약받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해 나가야 한다”며 “예를 들어 은행권 가계대출 관리강화 조치 이전 이미 대출상담 또는 신청이 있었거나 주택거래가 확인되는 차주의 경우 고객과의 신뢰 차원에서 정당한 기대를 최대한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체 은행권에서 발생하는 주택담보대출 상환액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대출 규모를 관리하면서도 실수요자에 대한 신규 자금도 충분히 공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금융당국도 금융권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면밀히 모니터링 하겠다”며 “실수요를 보호하면서 가계대출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금융권과 함께 모색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1주택자 대출 중단은 과한 대책, “은행권 기계적 대책 지양해야”
이 원장은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선 은행권의 기계적인 대출 규제에 대해 꼬집었다. 최근 일부 은행이 가계부채 관리를 이유로 1주택자의 전세대출을 중단한 데 대한 질타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은행권에서 과한 대책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며 “기계적이고 일률적인 대책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1주택자들도 자녀가 지방에 대학교를 다녀야 해 전셋집을 구하는 등 실질적으로 생활에 필요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며 “투기 목적이 아닌 경우도 있을 텐데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이 원장은 또 이른 시일 내 은행장들을 만나 가계대출 폭증 문제를 논의하겠다고도 밝혔다. 그는 “오는 10일 은행장들과 만나 현시점에서 벌어지는 가계대출 급증 문제와 관련해 효과적으로 부채를 줄이면서도 실수요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간담회에서 실수요자, 창구 직원들에게 전달받는 내용이 실제로 은행 창구에서 진행될 수 있게 무주택자 및 유주택자라도 자녀 거취 등을 이유로 대출을 원하는 사람 등 실수요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추석 전후로 은행들의 구체적인 대책이 나오면 좋겠다”며 “은행에서 예측 못한 가계대출 급증 추이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금감원이 일률적·구체적 대책을 제시하기 어렵겠지만 (은행들이)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해 소비자 혼란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계대출 고삐에 풍선효과 우려, 은행-비은행 간 규제 차 축소 필요
다만 전문가들은 1금융권에만 집중된 당국의 관리에 아쉬움을 표하는 분위기다. 은행권이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 관리에 고삐를 조이면서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 대출 수요가 옮겨가는 ‘풍선효과’가 우려되고 있어서다. 전 금융권이 비슷한 수준으로 규제를 강화하지 않으면 대출 수요가 새로운 틈새시장으로 몰릴 수도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필요한 경우 추가적인 규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2금융권에 대한 규제 변화 등을 통해 금융당국이 일관된 가계대출 증가세 억제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풍선효과의 가장 큰 원인은 은행권과 비은행권 간 규제 차익인 만큼 적어도 주담대에 한해서는 2금융권 규제도 강화해야 한다”며 “1금융권에서 주담대를 받지 못해 2금융권으로 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주택 시장이 과열돼 있다는 뜻이고, 거시건전성 관점에서 부채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도 생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도 “만일 보험 등 일부 업권에서 주담대를 과도하게 내주는 시그널이 포착될 경우, 금융당국이 행정지도 등의 조치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은 아직 2금융권으로의 풍선효과는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현실화하지 않았다면서도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 원장은 “2금융권의 주담대 상담·신청 건수 등 선행지표로 보면 걱정할 정도의 풍선효과는 현실화하지 않않지만 상호금융 등 업권과 소통하고 계속 점검하며 규제 변화 필요성을 살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