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업황 악화 국난에 합병 이루는 중국 증권사들, 2-3위 궈타이쥔안-하이퉁도 합병 시사
중국 2-3위 증권사 합병, 총자산 315조원 이상 초대형 증권사 탄생하나
여타 증권사들도 M&A 본격화, '글로벌 IB 경쟁력 강화' 기대감 확산
경기 침체로 업황 악화한 증권업계, "M&A는 생존 전략의 일환으로 봐야"
중국 2~3위 증권사인 궈타이쥔안증권과 하이퉁증권의 합병이 현실화했다. 양 사의 합병 법인은 총자산 315조원이 넘는 초대형 증권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합병이 성사되면 다른 증권사들도 합병에 나설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중국 증권업계는 양 사 합병을 높게 평하고 있지만 문제는 중국 증권업계의 업황 악화다. 수입이 줄면서 여력이 감소했고, 인원 감축도 이뤄졌다. 증권사 합병만으로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꿈꾸기엔 어려운 상황이란 의미다.
궈타이쥔안증권-하이퉁증권 합병 절차 시작
6일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 등에 따르면 전날 저녁 궈타이쥔안증권은 하이퉁증권을 흡수 합병하는 절차를 시작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난해 양 사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두 법인이 합병할 경우 총자산은 1조6,800억 위안(약 315조5,000억원), 순자산은 3,300억 위안(약 62조원)에 달한다. 업계 1위 시틱증권의 1조5,061억 위안(약 282조9,000억원)을 뛰어넘는 규모다. 합병으로 단숨에 업계 1위를 차지할 ‘초특급 항공모함’ 증권사가 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이번 합병은 재정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궈타이쥔안증권이 다소 부실한 하이퉁증권을 떠안는 식으로 진행된다. 중국 금융데이터업체 윈드인포에 따르면 궈타이쥔안증권과 하이퉁증권은 2015~2021년 기준 증권 업계에서 2~3위권을 형성했다. 양 사 모두 비슷한 수준의 몸집을 가진 셈이지만, 수익률 측면에선 양 사 간 차이가 컸다. 궈타이쥔안증권은 안정적인 수익을 낸 반면 하이퉁증권은 실적이 등락을 반복했다. 실제 하이퉁증권은 지난 2018년 순이익 기준 26위권까지 순위가 밀린 바 있고, 2022~2023년에도 홍콩 자회사 등에서 상당한 손실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공염불’에 불과했던 대형 증권사 합병
중국 대형 증권사 간 합병은 증권업계의 오랜 숙원 중 하나다. 중국 증권업계의 역량이 미국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자웅을 겨루기엔 아직 모자란 부분이 많아서다. 중국 등우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중국의 최대 증권사인 중신증권의 순자산은 380억 달러(약 51조1,000억원)로 골드만삭스(1,169억 달러, 약 157조2,300억원)나 모건스탠리(990억 달러)에 한참 못 미친다. 매출액도 중신증권은 85억 달러로,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의 각각 5분의 1, 7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이렇다 보니 중국 공산당 차원에서도 대형 증권사 합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지난해 10월 열린 중앙금융공작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증권시장을 발전시켜 세계 일류 IB와 투자기관을 육성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3월엔 중국 증권업을 관리·감독하는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위) 차원에서 “오는 2035년까지 국제 경쟁력과 시장 지배력을 갖춘 IB와 투자기관 2~3곳을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나오기도 했다.
다만 당시까지만 해도 업계에선 공산당의 목표가 ‘공염불’로 끝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대형 증권사 합병설이 나오기 시작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합병이 제대로 시행된 바가 없었던 탓이다. 지난 2020년 한 차례 기대가 꺾였던 점도 회의론에 힘을 실었다. 앞서 2020년 중국 투자업계에선 공산당이 1~2위를 다투던 중신증권과 중신건투증권의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단 소식이 전해졌다. 여기에 두 기업이 이미 M&A를 위한 실사를 마치고 증감회에 관련 사항을 보고했단 내용까지 전해지면서 양 사 합병이 기정사실화하는 듯했지만, 결국 합병은 이뤄지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 입장에선 사실상 연례행사와 다름없는 공산당의 정책 목표를 덮어 두고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증권사 M&A 본격 속도 내고 있지만, “중국 증권업계 업황 악화 일로”
이런 상황에서 궈타이쥔안증권과 하이퉁증권의 합병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중국 내에선 긍정적인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양 사 합병으로 그간 지지부진하게 이어져 온 증권사 합병 절차에 속도가 붙으면 중국 IB의 경쟁력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단 시선에서다. 이미 M&A 행렬이 본격화 수순에 접어든 상태기도 하다. 선전시 구오센증권은 지난달 지역 경쟁사인 반호증권 지분을 53% 인수한다고 밝혔고, 지난 6월엔 산시성 중견 증권사인 웨스턴증권이 궈롱증권 인수 계획을 발표했다. 화창증권과 핑안증권 역시 합병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각종 증권사 합병 소식에도 미래를 낙관할 수 없을 만큼 중국 증권업계의 업황이 악화했단 점이다. 실제 올해 상반기 중국 내 43개 상장 증권사의 총보수는 745억7,100만 위안(약 14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가량 급감했다. 중국 증시가 위축돼 수수료가 줄고 당국의 규제로 기업공개(IPO) 시장이 침체하면서 수입원이 쪼그라든 것이 원인이다. 시틱증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국 본토 거래소 신규 주식 공모 가치는 1년 전보다 85% 급감했고 일평균 거래량도 7% 줄었다.
증권업계를 중심으로 직원 감축 움직임도 가시화하고 있다. 중국 경제 매체 제일재경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상장 증권사 40곳의 총직원 수는 31만7,400명으로 전년 말 대비 6,760명 감소했다. 50개 상장 증권사 중 직원을 감축한 곳만 18개다. 팡정증권은 상반기 직원을 1,381명 감원했고, 중신증권, 궈신증권, 중신젠투, 광파증권, 흥업증권 등은 500명 이상을 줄였다. 궈타이쥔안증권, 하이퉁증권, 중진공사, 창장증권 등도 100명 이상 감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적 압박 속에서 비용 절감과 효율성 증대를 위해 직원을 줄이고 채용 규모도 축소하고 있다는 게 현지 관계자의 전언이다.
최근엔 중국 금융권의 분위기도 뒤숭숭한 모양새다. 중국에선 올 상반기부터 금융권에 대한 구조조정 소문이 돌았다. 중국 정부가 금융권 고위직 임원들의 연봉 상한선을 300만 위안(약 5억6,700만원)으로 일괄 정했다는 설이 제기되는가 하면, 일반직 직원에 대해서도 임금 조정이 이뤄질 수 있단 목소리가 속속 나왔다.
이 같은 불안이 거듭 노출되는 건 중국 경제의 침체가 가속하고 있는 탓이 크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침체에 빠져 상하이종합지수가 9월 기준 2021년 12월 대비 23% 넘게 하락했다. 현시점의 중국은 경쟁력 강화보단 당장의 생존에 집중해야 할 상황이란 의미다. 결국 이번 증권사 합병 역시 글로벌 경쟁력 강화의 수단이라기보단 생존 전략의 일환으로 보는 편이 더 개연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