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내수 양극화에 휘청이는 韓 경제, 금리 인하해도 부양 효과는 미지수?
현대경제연구원, 韓 수출-내수 경기 양극화 심각성 조명
"금리 내려서 경기 부양해야" 커지는 시장 기대, 가계부채·집값이 변수
실질 구매력 저하 등으로 내수 경기 회복 지연될 가능성도
한국 내수 경기와 수출 경기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수출 회복세가 좀처럼 내수 진작 효과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가운데, 한국 경제가 내수 불황 속 수출에 의존해 미약한 성장력을 유지하는 불안정한 국면에 놓였다는 평가다.
수출 회복돼도 내수는 ‘지지부진’
8일 현대경제연구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내수 회복 모멘텀의 실종 속 수출 경기 회복력의 약화 – 최근 경제 동향과 경기 판단’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수출은 직전 분기 대비 1.2% 성장했지만, 민간 소비(-0.2%)와 건설 투자(-1.7%), 설비 투자(-1.2%) 등 내수 부문은 부진을 이어갔다. 이후 3분기의 첫 달인 7월에도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8.4로 6월(99)보다 하락했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동행지수에서 추세변동분을 제거한 지표로, 현재 경기 국면 및 전환점 파악에 활용된다.
연구원은 이러한 내수 불황 속 수출 환경 변화, 통화정책 방향성에 따라 경기 회복이 지연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향후 경기 리스크 요인으로는 △미국 경제의 연착륙 여부 △중국 부동산 시장의 구조조정 강도 △국내 수출-내수 간 경기 양극화 등이 지목됐다. 연구원 관계자는 “미국 경제의 경착륙(침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현재 우리 수출 섹터 중 가장 좋은 모습을 보이는 대(對)미국 수출 경기에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면서 “다만, 최근 실물 지표들의 추이를 볼 때 연착륙의 가능성이 경착륙 가능성보다 다소 높다”고 분석했다.
이에 더해 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 경제의 불황 탈출 여부에 따라 향후 수출 경기의 회복 강도가 결정될 것으로 판단된다”며 “중국 경제의 거시 지표는 양호한 수준이나, 내수 부문을 견인하는 주택시장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완전히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기준금리 인하 필요성 제기돼
이에 시장 일각에서는 신속한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내수 회복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흘러나온다. 장기간 이어져 온 ‘고금리 시대’를 마무리 짓고, 본격적으로 소비 여력 확충에 힘쓸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내수 경기가 눈에 띄게 가라앉은 가운데, 주요국의 피벗(통화 정책 전환)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금리 인하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성급한 금리 인하는 오히려 우리나라 경기에 독이 될 가능성이 있다. 가계부채 증가, 집값 상승 등의 변수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부동산 시장·가계부채 상황을 금리 조정의 주요 잣대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7월 30일 한은이 공개한 ‘7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금통위원 다수는 물가 안정세와 내수 부진에도 불구, 급등하는 집값과 가계 부채를 경계하며 금리 인하를 주저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통위는 7월 11일 개최된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12회 연속 만장일치 의견으로 3.5%로 동결한 바 있다.
당시 한 금통위원은 “물가 측면에서의 피벗 위험은 상당폭 낮아진 것으로 평가하나, 주택 가격 상승 폭 확대로 인한 금융 안정 측면에서의 피벗 위험은 증가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주택 가격 상승세, 주택 매매 거래량 증가에 따른 주택담보대출 잔액 확대 등을 우려한 것이다. 그러면서 “과거 경험상 주택 가격과 가계부채 규모와의 상관관계가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주택 가격 상승 추세가 지속될 경우 가계부채가 다시 큰 폭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금리 인하 이후 경기 상황 전망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조정에 나선다고 해도 곧장 경기 부양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통상적으로 금리가 인상될 경우 차입 비용이 증가하며 시장 전반의 경제 활동이 둔화하게 된다. 반면 금리가 낮아지면 저축에 대한 유인이 줄어들어 대출과 가계 소비가 늘어나고, 산업계 역시 차입 비용 감소에 힘입어 투자 지출을 늘리게 된다.
하지만 소비자와 기업이 이미 부채에 얽매여 있을 경우, 금리가 인하되더라도 내수 회복 효과는 크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현저하게 저하된 실질 구매력이 내수 경기 회복의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어진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여유 있게 소비를 늘릴 수 있는 가구가 많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실제 최근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의식주 물가 수준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폭 역시 내수 경기 회복 과정에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 전문가는 “한국은행의 피벗은 현재의 고금리 압박을 일부 ‘완화’하는 형태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시장의 고통을 조금 덜어주는 형태인 셈”이라며 “한국은행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처럼 빠른 속도로 금리를 끌어내리며 완화적인 통화 정책을 펼칠 확률은 사실상 희박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