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상승하면 금리 못 내린다” 관망세 유지하는 한국은행, 美 피벗 변수 될까
한은 금통위, 부동산 시장 과열·가계부채 증가세 주시
"정부 정책 효과 없으면 금리 올려야" 일부 인사 강경 발언도
불투명한 한은 '피벗' 시점, 9월 美 금리 인하에 영향받을까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이 집값 상승세와 가계부채 증가세를 지켜보며 기준금리 인하 시기와 폭을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부동산 시장발(發) 금융 불안을 막기 위해서는 보다 신중하게 통화 정책 전환 시점을 결정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8월 금통위 의사록 공개
한은이 10일 공개한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8월 22일 개최) 의사록에 따르면, 한 위원은 당시 회의에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은 목표 수준에 수렴해 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반면 주택 가격 오름세와 가계대출 증가세가 확대돼 금융 불균형 누증에 대한 우려는 커졌고, 국제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따른 외환시장의 경계감도 남아 있어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통위는 8월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기준 금리 동결을 의결한 바 있다.
또 다른 위원도 “물가 상승률이 둔화 추세를 이어가 목표 수준에 점차 수렴할 전망이고 내수 회복세가 더디지만, 수도권 중심의 주택 가격 상승과 가계대출 증가세 확대 등으로 금융 불균형이 확대될 가능성이 큰 데다 외환시장의 경계감도 남아있어 통화정책 기조 전환이 금융 안정에 미칠 영향을 좀 더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이어 “현 시점에서 주택시장과 가계부채 확장세가 장기화하지 않도록 적절한 정책 조합을 통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주택가격 증가세가 잡히지 않을 경우 통화 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 위원도 있다. 해당 위원은 “부동산과 같은 특정 자산에 대해 거시건전성 정책 중심으로 대응한다는 원칙은 타당하다”면서도 “필요시 통화정책 측면에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을 배제하기 어려우므로, 적시에 필요한 통화 정책 수행을 위한 대응책도 미리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부동산’에 초점 맞추는 한은
이에 시장에서는 부동산과 가계부채가 한은의 핵심적인 ‘판단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이 흘러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통위는 지난 7월 회의에서도 주택 가격 상승세와 가계부채를 근거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며 “한은 주요 인사들 역시 최근 계속해서 부동산 시장에 대한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집값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기준금리 인하 시기가 시장 기대 대비 지연돼도 이상할 것은 없다”고 진단했다.
실제 신성환 한은 금통위원은 지난 3일 서울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2024 세계 경제와 금융 안정’ 컨퍼런스에서 기자들과 만나 “주택 가격 문제가 좀 심각한 것 같다”며 “모멘텀이 더 강해지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는 “집값이 이미 버블 영역으로 들어간 것으로 생각한다”며 “집값이 소득 대비 더 올라가 버리면 금융시장에 안정성을 상당히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금융당국의 여러 조치가 실제 시장에 얼마나 효과적인지 보고 판단해야 한다”며 “모든 정책이 효과가 없다고 하면 다른 방법이 없지 않겠나”라고 짚었다. 집값 안정화를 위한 정부 정책의 효과를 지켜본 이후, 집값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금리 인상을 고려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풀이된다. 그는 앞서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린 ‘잭슨홀 미팅’에서도 기자들과 만나 “집값이 계속 상승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금리를 올려야 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잭슨홀 미팅은 매년 8월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와 경제학자 등이 모여 정책을 논의하는 행사로, 통화정책 방향 변화를 알리는 자리로도 활용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2024 세계 경제와 금융 안정’ 컨퍼런스에서 “인플레이션(물가 안정)만 보면 기준금리 인하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시기가 됐다”면서도 “금융 안정 등을 봐서 (금리를) 어떻게 움직일지 적절한 타이밍을 생각해 볼 때”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 총재의 발언은 ‘기준금리 조정 시기를 결정할 때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금융 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며 “사실상 신 위원의 발언과 맥락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피벗 앞둔 美, 관건은 금리 인하 폭
한은이 부동산 시장 상황을 주시하며 ‘관망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다가오는 미국의 9월 금리 인하가 한은의 피벗 결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잭슨홀 미팅에서 “통화정책을 조정할 때가 도래했다”며 9월 금리인하를 기정사실화한 바 있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에 매우 가까워졌다”며 “인플레이션이 2%로 안정적으로 복귀할 것이란 확신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관건은 연준의 금리 인하 폭과 차후 정책 전환 속도다. 만약 연준이 기준금리를 25bp 단위(베이비컷)로 인하하면 미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금리 수준을 더 오래 유지하게 된다. 이 경우 투자자들이 달러 표시 자산으로 몰리면서 미국 통화가 강세를 보일 수 있다. 반면 연준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내리면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도 금리를 따라 내리며 전 세계적으로 피벗(통화 정책 전환) 흐름이 확산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연준이 9월 빅컷(50bp 인하)을 단행할 경우 한은 역시 강력한 금리 인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시장은 조만간 발표될 미국의 주요 경제 지표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6일 발표된 일자리 통계에서 9월 금리 인하 폭을 가늠할 만한 단서가 발견되지 않은 만큼, 이번 주 발표되는 2개의 물가 지표가 사실상 연준의 금리 인하 폭을 예측할 ‘마지막 기회’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 노동부 노동통계국은 11일(이하 현지시간) 8월 소비자물가지수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어 12일에는 도매 물가 지표인 8월 생산자물가지수를 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