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붙는 ‘부실 PF 사업장’ 경·공매, 관건은 매물 소화 수준
전체 부동산 PF 사업장 10곳 중 1곳은 '구조조정 대상'
이달부터 경·공매 본격 진행, 분양 얼어붙은 지방 유찰 우려
"6개월 내로 부실 사업장 정리하라" 상호금융권 옥죄는 정부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들의 재구조화 및 경·공매 움직임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지난 8월 금융감독원이 PF 사업장의 9.7%가 구조조정 대상이라는 평가를 내놓은 가운데, 이달부터 13조5,000억원 규모 PF 사업장 경·공매 물량이 속속 시장에 나오며 시장 내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분양 수요가 말라붙은 지방 사업장 등에서 유찰이 반복되며 사업장별로 경·공매 수요가 양극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흘러나온다.
PF 사업장 9.7%가 구조조정 대상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는 부실 PF 사업장들의 재구조화 움직임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엄격한 사업성 평가 및 구조조정 압박에 따라 시장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 개발업계 관계자는 “최근 강남권 등 사업성이 좋은 지역을 중심으로 재구조화 사업장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며 “당국이 사업성 평가를 통해 (PF 사업장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지시한 만큼, 시장 역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8월 금융감독원이 부실 우려 부동산 PF 사업장에 대한 1차 사업성 평가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1차 평가 대상 중 사업 정상화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되는 ‘유의’와 추가 사업 진행이 곤란한 ‘부실 우려’ 등급의 PF 위험노출액(익스포져)는 21조원에 달했다. 지난 6월 말 기준 금융권의 총 익스포져는 216조5,000억원 수준이다. 사실상 전체 부동산 PF 사업장 10곳 중 1곳(9.7%)이 ‘구조조정 대상’인 셈이다.
금융당국은 차후 1차 사업장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부실 우려 사업장에 대한 구조조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사업성 평가에서 유의 등급으로 분류된 사업장은 사업 재구조화 또는 자율 매각 계획을 제출해야 하며, 부실우려 등급으로 분류된 사업장은 상각 또는 경·공매를 통한 매각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경·공매 매물 소화 원활할까
추후 관건은 경·공매에 나온 매물이 시장에서 원활하게 소화될 수 있을지다.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경·공매에 부쳐진 매물 가격이 50~60%선까지 하락할 시 사업성이 개선되며 매수 수요가 일부 되살아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 부동산 개발업계 관계자는 “매물 가격이 50~60% 수준까지 내려가면 전반적인 분양가가 낮아지며 사업성이 개선된다”며 “이 경우 향후 부동산 시장의 회복 가능성을 고려한 수요자들이 토지 확보를 위해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이라고 밝혔다.
한편에서는 경·공매 매물이 ‘상급지’와 ‘하급지’로 나뉘며 수요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입지·용도 등의 방면에서 경쟁력이 부족한 매물들은 시장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한 시행업계 관계자는 “사업성은 결국 분양 시장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문제는 서울과 수도권 일부를 제외한 분양 시장 전반이 침체 상태라는 점”이라며 “지방 경·공매 매물들은 유찰을 반복하며 새 주인을 찾지 못할 위험이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최근 지방 분양 시장은 쌓여가는 미분양 매물로 인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지난 7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7만1,822가구) 중 지방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80.5%(5만7,833가구)에 달했다. 소위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지난달 말 전국 기준 1만6,038가구 수준이었으며, 이 중 지방 물량은 81.9%(1만3,138가구)에 육박한다.
상호금융권, 당국 압박에 ‘비명’
일각에서는 신속한 PF 정상화를 주문받은 상호금융권 등이 경·공매 수요 양극화로 사업장 정리에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지난 9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신협·새마을금고·농협·수협·산림조합 등 상호금융 중앙회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문제의 신속한 해결이 급선무”라며 “부실 우려 사업장은 자체적으로 마련한 계획에 따라 6개월 내에 정리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이 ‘6개월’이라는 구체적 기한을 언급하며 상호금융권을 압박하고 나선 것은 상호금융이 금융권에서 부실 사업장 물량이 가장 많은 업권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기준 상호금융권의 부동산 PF 익스포저는 54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유의 또는 부실우려 등급으로 구분된 구조조정 대상 사업장은 9조9,000억원 규모이며, 경·공매로 처분해야 하는 사업장 규모는 6조7,000억원 수준이다.
IB(투자은행)업계에서는 상호금융권의 부실우려 사업장이 6월 기준 가치의 80~90% 수준으로 정리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시장의 매수 수요가 얼어붙을 경우, 사업장의 가치가 시장 기대를 크게 밑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은 금융권에 1개월 주기로 6개월 내 PF 사업장 공매를 완료하라고 주문했다”며 “첫 경·공매에서 유찰되면 1개월 이내에 직전 회 최종 공매가보다 10% 낮게 가격을 책정해 다시 매각해야 한다. 유찰이 반복되면 사업장의 매각가가 순식간에 미끄러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