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반격 카드에 쏠린 눈, 증권사들 “개미 피해 염려”
고려아연 측 대항 공개매수 방안 언급 전망 팽배
경영권 분쟁 테마에 올라탄 개인 투자자 급증
“미결제 쏟아질라” 빚투 억제 나선 증권사들
기자회견을 앞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대항 공개매수 등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언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개인 투자자들이 최 회장 측 대응책을 기다리며 고려아연 주가를 대폭 끌어올리고 있는 가운데, 증권업계에서는 자칫 향후 주가 반락으로 인한 피해를 개인이 고스란히 보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려아연 대항 공개매수 계획 발표 여부에 촉각
24일 투자은행(IB) 업계 및 재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서울 종로구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한다. MBK와 영풍의 ‘적대적 M&A’ 시도를 규탄하는 한편, 현 경영진이 고려아연을 계속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역설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항 공개매수 계획이 언급될지 주시하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최 회장이 이미 전략적투자자(SI)나 재무적투자자(FI)를 백기사로 확보했으며 공개매수를 전격 준비 중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MBK와 영풍이 공개매수에 2조원을 투입하는 만큼, 최 회장 측 대항 공개매수에도 최소한 그 정도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최 회장 측 대항 공개매수를 둘러싼 신경전은 이미 시작됐다. MBK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그동안 최 회장 백기사로 언급돼 온 SI와 FI들을 겨냥해 “출구전략이 없다”고 주장하는 한편, “SI들에게 높은 마진을 보장해 주고 추가 이윤을 확보해 줘야 할 텐데 이 경우 최 회장은 개인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고려아연의 장기적 이익을 희생시키는 배임적 성격의 거래를 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MBK는 전날에도 “최씨 일가가 주담대를 총동원해도 대항 공개매수 자금 2조원은 마련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고려아연의 급등 전 주가에 통상적 수준의 담보비율(LTV) 40%를 적용한다면, 최씨 일가의 지분 15.6%로 최대 5,000억원까지만 대출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MBK는 또 증권사들이 여기에 특혜를 주면 자본시장법 제35조 위반 소지가 있으며, 감독당국에서 규제 위반 여부에 대해 주도면밀하게 모니터링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금융감독원을 언급함으로써 사실상 증권사들을 향해 “최 회장에게 특혜를 주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한 셈이다.
앞서 업계 일각에서는 최 회장 측이 백기사를 모은 것처럼 시장에 기대감을 주면서 고려아연 주가를 끌어올려 MBK의 공개매수가 실패하게 만드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온 바 있다. 한화나 LG화학, 현대차 등 이미 고려아연 지분을 보유 중인 대기업들이 나서서 공개매수를 돕는 건 배임 리스크가 있는 데다, 그렇다고 외국 자본을 끌어오자니 MBK를 해외 자본이라고 주장했던 게 자가당착이 될 수 있어서다. 최 회장 측이 공개매수 ’설’만 흘려도 주가가 MBK의 공개매수 가격보다 높게 형성된다면, 어쨌든 일차적으로 MBK의 공개매수는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최 회장 측이 실제로 대항 공개매수를 시작한다면, 주가는 지금보다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최 회장 측 대항 공개매수 자금 마련 가능성이 미지수인 지금도 갖가지 설과 추측이 나오며 주가가 고공행진하고 있는 만큼, 대항 공개매수가 공식화하면 주가의 추가 상승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자본시장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경영권 분쟁에 개미 ‘투기성 거래’ 급증, 증권사들 사전 차단
다만 눈여겨볼 부분은 공개매수 발표 이후 고려아연 주가를 지금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이 개인 간 손바뀜이었다는 점이다. MBK와 영풍은 지난 12일 장 종료 후 공개매수 계획을 발표했는데, 13일부터 23일까지 고려아연 주식 매매가 개인 투자자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 기간 개인은 고려아연을 118만 주를 사고 139만 주를 팔았다. 반면 국내 기관은 73만 주 사고 48만 주 파는 데 그쳤으며, 외국계 기관은 53만 주를 매수하고 55만 주를 매도했다.
이에 증권사들은 일찌감치 ‘빚투(빚내서 투자)’ 빗장을 걸어 잠그는 분위기다. 먼저 KB증권은 지난 19일 고려아연의 신용대출 종목군을 개인당 최대 20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한 ‘S’에서 ‘F’로 변경했다. F는 개인당 최대 5억원, 종목별 1억원까지 신용대출이 제한된다. 위탁증거금률도 20%에서 40%로 인상했다. 뿐만 아니라 실제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 가격 변동에 대해 차액만을 거래하는 차액결제거래(CFD) 증거금률도 조정했다. 이보다 앞선 이달 10일에는 삼성증권이 고려아연의 위탁증거금률을 30%에서 40%로 올렸다.
증권사들이 빚투 억제에 나선 건 ‘경영권 갈등’이라는 테마에 올라타 한몫 챙기려는 수요가 주가를 요동치게 하는 과정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대규모 손실을 볼 수 있어서다. 실제로 최 회장이 대항 공개매수를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투기성 거래가 크게 늘었다. 기존 공개매수 가격(고려아연 66만원·영풍정밀 2만원)이 더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빚투가 급증하면서 신용잔고도 크게 늘었다. 코스콤 체크에 따르면 이달 20일 기준 고려아연 신용잔고는 424억8,000만원을 기록했다. 이는 영풍·MBK의 공개매수 발표 전보다 무려 241억4,500만원(131.69%) 급증한 규모다. 신용잔고율도 0.17%에서 0.39%로 높아졌다. 신용잔고율이 높을수록 상장된 주식 중 신용으로 산 주식이 많다는 의미다.
경영권 분쟁 종료 후 주가 뚝뚝
하지만 앞서 SM엔터테인먼트 주가도 공개매수 당시 6만~7만원대에서 16만원대까지 치솟았으나 1년도 안 돼 제자리로 돌아간 바 있으며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 역시 1만원대에 머물렀던 주가가 공개매수 당시 2만3,000원대까지 올랐지만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1만5,000원대로 내렸다. 모두 경영권 분쟁 종료에 따른 주가 폭락이다.
최근 경영권 분쟁이 격화하고 있는 한미사이언스도 이를 피해 가지 못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한미사이언스의 주가는 지난 4월 12일 종가 기준 3만5,000원으로,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영권 분쟁 종료 직전인 3월 28일 대비 21% 하락이자, 경영권 분쟁이 극에 달했던 1월 16일 종가(5만6,200원) 대비 27.72% 급락이다. 경영권 분쟁을 호재로 인식한 투자자들의 심리가 분쟁 종료 이후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주가 하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경영권 분쟁 2차전에 돌입한 현재까지도 한미사이언스 주가는 33,000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