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은 총재 “가계부채 우려에 금리 인하 신중히”
이창용, 국회 기재위 국감에서 금리 인하 등 입장 밝혀
내수 부진 속 물가 안정 지속, 韓 경제 2%대 성장 전망
금리는 가계부채 등 상충 변수 간 관계 살펴보고 결정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추가적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 신중히 접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성장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금융 여건 완화가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여전히 크다는 판단에서다. 시장에서는 연내 추가 금리 인하가 없을 것이란 예상이 우세한 가운데 빨라야 내년 하반기에야 2%대 금리에 도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창용 “올해 2% 초중반 수준의 성장세”
14일 이 총재는 한은 본관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 업무 현황 보고에서 “수출이 증가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내수도 회복 흐름을 재개하면서 2% 초중반 수준의 성장세를 나타낼 전망”이라며 “향후 통화정책은 물가, 성장, 금융 안정 등 정책 변수 간의 상충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신중히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내수가 회복세로 전환했으나 당초 예상보다 흐름이 지연된 데다 불확실성은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국내외 금융 여건 완화가 가계부채 증가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에는 여전히 유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내수 경기를 살리기 위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이번 달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지만, 집값과 가계부채 문제를 감안하면 연이은 금리 인하는 힘들 것이란 시장의 관측과 부합하는 발언이다. 한은이 내놓은 금리 관련 지표 전망을 보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국제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당분간 2%를 밑돌다가, 연말 이후 2% 내외에서 안정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전년 동월 대비 CPI 상승률도 2022년 7월 6.3%로 정점을 찍은 후 올해 8월 2.0%, 9월 1.6%까지 하락하면서 디스인플레이션이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회복세로 돌아선 민간소비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민간소비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높은 물가수준, 가계부채 증가와 고금리로 인한 원리금 상환 부담, 소득 개선 지연과 여타 구조적 요인 등에 영향받아 그간 더딘 회복세를 나타냈다”며 “가계부채가 늘어난 상황에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소비 여력 개선을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상수지는 정보통신(IT) 품목 중심의 수출 호조와 유가 하락 등으로 큰 폭의 흑자기조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 8월 경상수지는 66억 달러(약 9조원) 흑자로 집계되면서 4개월째 흑자가 지속된 바 있다.
내수 회복 지연 맞지만 가계대출 지켜봐야
민간소비가 개선되고 물가 상승률이 둔화하는 상황에서도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에 신중론을 내세운 데에는 가계부채에 대한 불확실성이 작용했다. 이 총재도 이날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인하 이후 금융 여건 완화 기대가 커진 가운데 주택시장 전개 양상 등에 따라 향후 가계대출 상황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정부 대책의 효과를 계속 점검해 나가면서 가계부채 비율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지난 11일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하를 결정한 직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도 “9월 빅컷을 단행한 미국의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 이상으로 오르면서 기준금리도 5%포인트 이상 올린 데 비해 한국은 물가 상승률이 최고 5% 정도에 그쳐 기준금리도 3%포인트만 올렸다”며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 우리도 미국처럼 0.5%포인트씩 떨어지겠구나, 돈 빌려도 문제없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기준금리 인하 여부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들의 시각도 비슷하다. 이날 이 총재는 “저를 제외한 금통위원 여섯 분 가운데 다섯 분은 3개월 후에도 3.25%가 유지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견해를 밝혔고 1명의 위원만이 향후 3개월 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시각이 유지된다면 다음 달 28일 열리는 올해 마지막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금리 인하가 추가로 단행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실제로 가계부채 증가세는 억제됐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은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1,135조7,000억원으로 8월 말보다 5조7,000억원 늘었다. 주택 구입 목적의 개별 주택담보대출은 5대 은행에서 9월 한 달 동안 하루 평균 3,451억원 새로 취급됐다. 8월(3,596억원)보다 4%가량 적지만 추석 연휴 사흘을 빼면 평균 3,934억원으로 8월에 이어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내수 회복세 반전 어려워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올해 마지막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내수 부진에 대한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시장에서도 한은이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지만, 내수가 회복세로 반전될 것이란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통화정책의 특성상 시차를 두고 실물 경제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10년 치 거시경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정책금리 변화의 효과는 9개월 뒤에야 실물경제에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통화정책 효과가 본격화하기 전에 내수 회복의 마중물이 될 수 있는 국가 재정도 상황이 좋지 않다. 특히 올해 30조원의 세수 결손이 확실시되는 터라 그 부작용이 4분기에 집중될 여지가 크다. 재원이 없어 예정된 예산 사업을 집행하지 못하면 해당 예산은 불용 처리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재정 사업은 일반적으로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올해 4분기는 정부의 국내총생산(GDP) 성장 기여도가 크게 하락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기준금리 인하가 시중은행의 대출금리 인하로 이어지는 데도 시차가 발생한다. NH투자증권은 지난 11일 펴낸 보고서에서 ‘고정금리 대출 비중’에 주목했다. 지난 8월 주택담보대출 잔액 기준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65.2%로, 금리가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2019년 12월 기록한 47.3%와 비교해 큰 폭으로 상승했다. 기준금리는 물론 시장금리가 내려도 원리금 상환 부담이 줄지 않는 가계가 과거보다 많아졌다는 얘기다.
더욱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관리하기 위해 가산금리를 올리면서 기준금리 인하에도 대출금리가 오르는 현상까지 발생한 상황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고정형(혼합형·주기형) 금리는 11일 기준 연 3.71~6.11%, 변동형 금리는 연 4.59~6.69%로 집계됐다. 시장 금리 하락에도 가산금리 인상의 영향으로 5대 은행의 주담대 고정금리는 지난 8월 연 3.64~6.04%에 비해 금리 상단과 하단 모두 높아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