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장기화에 신용등급 강등 위기 맞은 보잉, 350억 달러 확보해 위기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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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여객기 사고, 파업 장기화로 수익성 악화
인력 10% 감원 발표에 파업 열기는 오히려 확대
자금난에 신용 등급 강등 위기 경고까지
주식 및 채권으로 250억 달러, 신용 대출로 100억 달러 확보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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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보잉

각종 사고와 파업에 자금난에 휩싸인 보잉이 48조원 규모의 유동성 확보 계획을 발표했다. 올 초 보잉737맥스9 여객기의 도어 패널이 뜯겨나가는 사고로 생산 지연이 발생한 데다, 9월부터 미 서부 지역 보잉 공장 노동자 약 3만 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가면서 현금 흐름이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각종 항공 사고에 파업까지 겹친 자금난, 350억 달러 확보로 돌파

15일(현지시간) 보잉은 향후 3년 동안 주식 및 채권 발행을 통해 최대 250억 달러(약 34조원)의 현금을 확보하고 추가로 100억 달러(약 14조원)의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는 계약을 채권단과 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잉이 이번 조치를 통해 단기적인 자금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장기적인 설비 및 기술 투자를 위한 자금을 확보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며 애널리스트들이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보도했다.

보잉 측이 발표한 350억 달러는 당초 시장이 예상한 100억 달러 규모를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상장사의 자금 조달로는 지난 6월 이후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보잉 측은 이번 결정을 “회사의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신중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자금 조달 게획은 파업 장기화로 보잉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언급한 보고서가 나온 가운데 발표됐다. 미 서부지역 주요 공장에서 지난 9월 13일부터 시작된 3만3,000여 명의 노조 소속 기계공 파업으로 인해 보잉의 주요 항공기 모델인 737MAX, 767, 777의 사실상 중단된 것이 현금 흐름을 악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것이 파이낸셜타임스(FT)등 주요 외신의 설명이다. 파업과 기체 결함 문제로 보잉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으며, 한 달간 파업으로 인한 보잉과 주주들의 손실만 37억 달러(약 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보잉은 최근 비용 절감을 위해 직원의 10%를 감원할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보잉의 이번 자금 조달이 파업 장기화와 운영상 어려움 속에서 재무 유연성을 높이고 단기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단기 자금 조달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항공우주부문 이사 벤 조카노스는 “보잉은 시간을 벌었지만, 신용등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파업 문제를 해결하고 항공기 생산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S&P는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보잉의 신용등급이 투자적격에서 ‘정크등급’으로 강등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세스 세이프만 JP모간 애널리스트도 “보잉은 150억 달러에 가까운 금액을 조달하지 않으면 내년 여름 현금이 바닥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보잉 주요 관계자들은 주문량이 5,490대나 밀린 상태에서 파업이 장기화 되면서 수익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기업 곳곳에 퍼져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제이 티몬스 미국 제조업협회(NAM) 회장은 “미국에서만 50만 명의 노동자에 영향을 미치는 항공우주 산업의 혼란은 파괴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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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항공기 공급 차질에 항공사들 사업에도 악영향

항공기 납품 지연은 항공사들의 영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유럽 최대 저가항공사 라이언에어는 항공기 도입 차질로 일부 노선을 축소하고 연간 실적 예상치를 낮췄다. 보잉뿐 아니라 에어버스도 프랫앤드휘트니 엔진 결함 등으로 일부 생산 차질을 빚은 탓에 양쪽에서 여객기 인도가 지연된 몇몇 항공사는 특히 큰 타격을 입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윌리 월시 사무총장은 블룸버그통신에 “항공기를 제대로 인도받지 못한 몇몇 항공사가 조종사와 승무원을 휴직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루프트한자와 대한항공 등 주요 항공사들도 낡은 여객기 수명을 연장해 사용해야 하는 형편이다. 25대의 777 여객기를 주문했던 아랍에미리트(UAE) 에티하드 항공은 중고 보잉 777을 구해 사용하기로 했다. 장거리 운항에 특화된 기존 777 모델을 개량한 최신 기종인 777X도 당초 인도 계획보다 6년 늦어지게 됐다.

보잉은 개발 및 테스트 문제와 노조 파업으로 인한 작업 중단 등을 이유로 들었다. 최근 임금·단체협약(임단협)에서 나온 임금 협상안을 노조원들이 압도적인 표차이로 부결시켰고, 곧바로 파업이 시작되면서 보잉 767, 777 생산이 멈춰섰다는 것이다. 노조는 향후 3년간 40% 임금 인상과 10년 전 폐지한 확정급여형(DB) 연금 복원 등을 고집했지만 사측은 제안을 철회하고 테이블에서 철수했다.

2018년부터 계속된 767 기종 결함 지적, 제 때 대응하지 못한 것이 화근

이렇듯 계속해서 불거지는 보잉 항공기의 안전 결함 문제는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으로 이어지면서 보잉을 부진의 늪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올해 1월 737 맥스 기종 여객기가 이륙하고 얼마 뒤 동체 벽면이 떨어져 나가는 사고가 발생했고, 지난 4월에는 767 기종이 이륙 직후 비상 탈출용 슬라이드가 떨어져 나갔다. 5월에는 767기의 앞바퀴가 내려오지 않아 화물기가 활주로에 그대로 동체 착륙하기도 했다.

그런데 앞서 2018년과 2019년에도 767 기종의 여객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에 미국 항공 당국은 보잉에 생산 속도 제한 명령을 내렸으며 대대적인 생산라인 점검에 나섰다. 문제가 된 767 기종은 2027년부터 생산이 중단된다. 이를 두고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결함 의혹이 제기됐던 2018년부터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면 미국 항공 당국이 나서서 생산라인 점검에 들어가는 비상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공장 주도의 이번 파업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보잉의 이번 파업은 16년 만이다.

권보헌 극동대학교 항공안전관리학과 교수는 항공기 안전관리의 핵심은 숨겨져 있는 잠재 요인을 미리 발견해서 더 큰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잠재 요인을 찾아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만큼, 전문성이 필요하고 조직이 전문가 양성을 위해 각종 훈련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