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전자’로 추락한 삼성전자, 코리아 밸류업 공시 계획 ‘묵묵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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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주주들 속타는데 밸류업 공시 왜 안 하나
전문가들, 배당 여력 부족·금산분리 등 분석
매년 6월 종목 심사 “밸류업 공시 없인 지수 포함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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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1순위 삼성그룹이 정부가 추진 중인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공시’에 나서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주요 계열사들이 줄줄이 밸류업 공시를 발표하고 있는 현대차·LG·롯데 등과 대조적이다.

10대 그룹 중 삼성·한화만 “공시 계획 없다”

24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올 3분기 기준 한국거래소의 ‘상장기업 밸류업 준비현황’ 설문 조사 결과 10대 그룹 중 삼성·한화그룹(상장계열사 포함)만이 “연내 밸류업 공시를 낼 계획이 없다”고 답변했다. 현대차와 롯데렌탈, 롯데쇼핑, 롯데칠성, 롯데웰푸드, LG전자 등은 전날까지 기업 경영·주주환원 세부 방향을 적은 ‘본공시’를 내놨다.

10대 그룹은 계열사 시가총액 합이 국내 전체 상장사 시총 규모의 절반을 훌쩍 웃돌 만큼 증시 영향력이 크다. 때문에 한국거래소는 지난 8월 10대 그룹 재무 담당 임원들을 불러모아 밸류업 공시를 당부하는 등 대기업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자 노력했다. 당시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최근 국내외 주식시장 변동성이 확대됨에 따라 우리 증시의 든든한 버팀목인 10대 그룹부터 밸류업 프로그램에 선도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강조했다. 거래소의 참여 독려에 재계가 하나둘 응답하는 모양새이지만, 1등 기업 삼성은 다른 노선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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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구글 파이낸스

삼전 주가 흐름 부진, 밸류업 언제 하나

국내 증시 시총 대장주인 삼성전자가 밸류업지수에 포함된 건 지난달 24일이다. 시총과 2개년 실적, 주주환원책,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지수 편입 요건을 충족했기 때문이다. 시총 2위인 SK하이닉스가 ‘2년 합산 흑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도 지수에 들어간 것을 감안하면, 삼성전자는 요건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지수에 편입됐을 가능성이 크다. 시총만 350조원 규모의 ‘초대형주’기 때문인데, 추후 리밸런싱(지수 조정) 시 이 종목을 넣고 빼는 것만으로도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지수를 처음 만들 때부터 포함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정작 삼성전자는 밸류업 공시에는 무관심한 모습이다. 이미 연말까지는 공시를 할 생각이 없다고 못 박기도 했다. 또한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부회장)은 지난 22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제55회 한국전자전’ 부스 투어 후 취재진과의 자리에서 “(부진한) 주가와 관련 밸류업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가’ 묻는 질문에도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소액주주 수만 425만 명에 달하는 ‘국민주’인 만큼 회사의 적극적인 주가 대응을 원했던 주주들로선 아쉬운 대목이란 평가다. 삼성전자 주가는 이달 8일 3분기 잠정실적 발표가 나온 다음 날 ‘6만전자’가 붕괴된 채 장을 마쳤고 현재는 ‘5만전자’까지 내려온 상태다. 이에 종목토론방에선 ‘밸류업 계획은 왜 발표 안 하는지 모르겠다’, ‘주가 흐름이 부진한데 밸류업은 언제 하나’ 등 토로 글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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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편출 대상에 포함될 수도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밸류업 공시에 소극적인 이유로, 밸류업 제도를 활용할 유인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삼성전자는 3년마다 배당 등 주주환원책을 수립해 왔다. 올해도 삼성전자는 연초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2024~2026년 주주환원책을 내놨는데 직전 3개년과 동일하게 3년간 발생하는 잉여현금흐름의 50%를 환원하고 연간 9조8,000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한다는 게 골자였다. 밸류업 공시를 한 10대 그룹의 한 IR 담당자는 “거래소 밸류업 공시 간담회 때 삼성전자에선 ‘우리는 이미 많은 정보들을 공시하고 공개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밸류업 공시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귀띔했다.

본업에서의 부진 때문에 밸류업 자신감이 부족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증권사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는 “이미 잉여현금흐름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생기면 절반을 주주환원 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한 올 초 약속도 못 지킬 상황인데, 더 의지적인 내용을 내는 게 무슨 소용이겠느냐”라며 “본업 개선이 선결 사항이라고 봤을 것”이라고 짚었다.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부담 탓에 발이 묶여 있다는 해석도 힘을 얻고 있다. 삼성전자의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은 금융산업 구조 개선에 대한 법률에 따라 지분율을 10% 미만으로 유지 중인데,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 땐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이 높아지는 만큼 삼성화재와 합친 삼성전자 지분이 10%를 넘어 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내부에선 소각도 못하는데 자사주 매입에 의미가 있는지 등을 두고 고민이 컸던 것으로 안다”며 “삼성전자 순현금은 80조원대지만 대부분 해외법인 곳간에 있어 투자나 배당 여력도 어렵기 때문에 이런 상황상 밸류업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다만 삼성전자가 공시를 계속 이행하지 않을 경우 향후 밸류업지수 편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거래소는 매년 6월 심사를 거쳐 밸류업지수의 종목을 교체할 예정이다. 특히 오는 2026년 6월 이후부터는 밸류업 공시 이행 기업을 중심으로 지수를 구성키로 했다. 이와 관련해 이부연 한국거래소 경영지원본부장보는 지난달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밸류업 공시를 하지 않는 기업이 밸류업지수에 포함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 대표주마저도 밸류업 공시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지수에서 빼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