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마이너스 성장을 준비해야 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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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기 GDP 성장율 0.1%, 순수출 -0.8% 타격 탓
지난 분기 역성장 비하면 다행 vs. 기대치였던 0.5%보다 낮아 '쇼크'
4분기 1% 이상 성장 없으면 올해 연간 2% 성장 어려울 것 전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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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기 한국 GDP(국내총생산) 성장율이 0.1%로 발표됐다. 발표를 담당한 한국은행 신승철 경제통계국장도 0.1%라는 수치가 자못 충격적인지 숫자를 읽으면서 기자들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었다. 발표장에 참석한 한은의 팀장, 과장들도 눈치를 봤다. 자신들의 잘못은 아니지만 부끄러운 숫자라는 것은 인식을 했다는 얘기다.

밖에서는 반도체·자동차 중심 국가, 안에서는 마이너스 성장을 겨우 면한 나라

지난 1분기까지만 해도 한국 경제 성장의 핵심은 수출이었다. 1분기 내수가 0.5% 성장하는 동안 순수출이 0.8% 성장하면서 민간이 1.2% 성장, 정부 지출이 1.0%의 성장을 견인했었다. 정부가 선거철을 맞아 급하게 예산을 끌어쓴 이후로 2분기 연속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됐다. 그마저도 3분기에 썼던 각종 내수 진작책이 효과로 내수가 0.9% 성장하지 않았다면, 3분기에도 2분기에 이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을 상황이었다.

일반적으로 해외에서는 한국을 ‘반도체와 자동차 기반 수출 중심 국가’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한국의 대표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에서 수요처를 구하지 못해 20조원의 재원을 투입한 평택 공장 가동을 대폭 축소한 상태다. ‘반도체 겨울론’을 주장하는 모건스탠리의 애널리스트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중국이 엄청냔 물량으로 저가 D램을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는 점을 든다. 그간 한국의 먹거리였던 반도체 중 SK하이닉스가 우연히 만들었던 HBM(고대역폭메모리)을 제외하면 사실상 곳간을 비우는 시대가 된 셈이다.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다. 최근 현대자동차가 인도 주식시장에 무려 26조원 규모로 상장에 성공했지만, 현대차가 이번 상장으로 마련한 4조원 규모의 자금을 한국에 갖고 올 것으로 기대하는 관계자는 없다. 인도에서 마련한 자금인 만큼, 인도 발전에 쓰여야 현대차가 인도 시장에서 인도에 안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어서다.

현대자동차는 IMIF(국제통화기금) 구제 금융기 이전인 1996년 5월, 처음 인도의 타밀나두 지역에서 인도 사업을 시작한지 28년 만에 상장에 성공했다. 인도와 더불어 미국, 튀르키예, 체코 등의 해외 공장에서 생산하는 물량 목표만 2030년까지 555만 대에 달한다. 반면 국내 생산량은 200만 대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난해 말에 발표된 현대차그룹의 2024년 계획에 따르면 현대차 434만 대 중 국내 190만 대, 해외 244만 대, 기아 314 만대 중 국내 159만 대, 해외 155만 대 생산을 목표로 한다. 한국 대표 기업의 글로벌 성장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수십 년 동안 조금씩 해외 이전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한국의 양대 먹거리 산업들 중 한 쪽은 중국 저가 시장에서 이미 추격당한 상황이다. 이는 이미 LCD 디스플레이와 스마트폰 시장을 통해 확인됐다. 기술 발전에 성공해도 고가 상품 위주로 시장이 축소되고, 기술 발전에 실패하면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완전히 잃게 된다. 이런 가운데 다른 한 쪽은 글로벌화에 성공했지만 해외의 근로자들과 투자자들에게 더 수익을 안겨주는 산업이 됐다. 산업 자체의 성장 여부와 별개로 한국에서의 성장이 지지부진한 상황은 지극히 당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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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영국 극작가이자 배우인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한국 경제 상황이 딱 그렇다. 외부인들의 눈에는 가난을 탈출한 거의 유일한 나라지만, 정작 내부로는 곪아들어가고 있고,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에서 허덕이거나 아예 생산단가가 낮은 시장으로 조금씩 탈(脫)한국을 시도하는 중이다.

이번 3분기 GDP 성장률 발표장을 나오던 기자들은 0.1% 성장이라는 수치에 ‘쇼크’라는 표현을 썼지만, 한국 대표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 상황을 놓고 볼 때, 얼마 지나지 않아 ‘플러스 성장’ 자체에 감사해야 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 이와 관련해 한 스타트업 대표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틀렸던 것을 뒤늦게라도 인정해야 한다”며 “해외 기업들처럼 노동 단가가 낮은 동남아와 인도 시장에서 인력을 채용하고, 객 단가가 높은 미국, 서유럽 시장에서 매출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현대자동차처럼 30년 가까운 시간을 준비해야 겨우 해외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비관론으로 답변하니 “한국은 이제 마이너스 성장만 남은 나라”라며 “차라리 해외 시장은 성공 가능성이라도 있다”는 자조적인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유럽 및 아시아 지역의 동반 부진과 미국 제조업의 나홀로 성장 원인으로, 전쟁으로 인한 공급 충격 중에 미-중 갈등을 빌미로 미국이 제조업을 독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중국 및 화교 자본이 운영하던 사업에 투입된 막대한 투자금이 모두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중국은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1990년대 일본, 1998년 한국과 비슷한 불황에 직면했고, 중국 의존도가 높았던 한국, 독일 등의 국가들은 성장에 치명타를 맞았다. 반면 미국은 그간 중국과 독일이 누려온 글로벌 공급망의 제조업계 지위를 승계해 나홀로 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다.

사라진 중국 시장 메워넣으려면 오랜 시간 필요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경제 위기로 자본금이 일시에 증발하면 수년 간의 경제 성장이 있어야 겨우 회복이 되는 것처럼, 중국 시장이라는 ‘상수’가 ‘변수’도 아니고 ‘0’으로 바뀐 상황에서 한국 경제가 중국의 빈 자리를 메워넣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본다. 한국이 경공업 기반 소비재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반도체를 비롯한 기술 제품을 중국에 수출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일부를 형성했으나, 미-중 갈등과 중국의 기술 발전 탓에 한국의 대중 수출이 사실상 사라진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IMF 구제금융기에 무너진 기업들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이번 위기에 무너진 기업들이 보유한 기술 역량, 그 기업들이 고용으로 만들어낸 사회적 자본들이 다시 한번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지난 4월 퇴임한 서영경 전 금융통화위원은 금리가 단순히 금융시장에만 영향을 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기술 발전, 기업의 운명 등 시스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퇴임사에서 밝혔다. 내수 부진, 경기 침체라는 불평 불만의 목소리가 큰 것을 알고 있지만 집값 폭등을 막기 위해서 이자율 인하를 늦출 수밖에 없다고 발표하던 이창용 한은 총재도 같은 이해를 갖고 있을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부 수업 시간에 “IMF 구제금융으로 잃어버린 사회적 자본을 다시 복구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며 “금융 시장의 문제를 금융 시장 안에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을 항상 덧붙였다는 것이 당시 이창용 교수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의 회고다.

이미 이 총재는 낡은 경제 구조의 한계가 온 만큼, 더 늦기 전에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발언을 지난해부터 꾸준히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탈한국에 성공한 기업은 해외 시장에 아예 못을 박으려고 하고 있고, 탈한국에 성공 못한 기업은 중국에 시장을 빼앗기는 중이다. 단순히 기준금리의 인하폭이나 속도에 대한 결정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전반적인 개혁이 이미 상당히 늦은 상황이라는 점을 관가의 관계자들이 인식해야 하는 시점이다. 더 늦으면 오늘처럼 GDP 0.1% 성장에 ‘쇼크’라는 표현을 쓴 시절이 좋은 시절이었다고 상기하게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