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무역으로 인한 지역별 소득 재분배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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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 곡물 수입 자유화 후 지역별 영향 ‘상반’
곡물 재배지 몰락하고 목축지는 영향 없어
경제 정책이 미치는 지역적 영향 반드시 검토해야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1846년 ‘곡물법’(Corn Laws)의 폐지로 곡물 수입 관세가 사라지면서 영국은 싼값의 수입 곡물들로 넘쳐나게 되고, 저가 곡물들의 범람은 곡물 생산에 유리한 영국 동부와 목축에 유리한 서부에 완전히 상반된 경제적 효과를 야기한다. 동부는 토지, 고용, 소득 등 모든 경제 지표에서 몰락의 수순을 밟은 반면, 서부는 영향이 제한적이거나 오히려 긍정적이었던 것이다. 글로벌 무역이 지역 간 소득 분배에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시사점을 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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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EPR

19세기 영국 곡물 수입 자유화, 농업 및 목축 지역에 ‘상반된 영향’

1846년 영국 정부가 곡물 수입을 제한하던 ‘곡물법’을 폐지하면서 북미와 아르헨티나 등지로부터 값싼 밀이 밀려들게 된다. 영국의 밀 수입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25년 후인 1871년에는 1846년의 다섯 배가 된다. 수입 물량에서 신대륙 국가인 아르헨티나, 캐나다,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17%에서 43%로 증가한다. 시간이 갈수록 교통수단 발달과 운송비 하락으로 신대륙 곡물 수입은 더욱 늘어나 1901년이면 영국 곡물 수입의 95%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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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밀 소비량, 생산량, 수입량 추이 (1831~1901, 단위: 백만 쿼터)
주: 연도(X축), 물량(Y축), 아르헨티나(ARG), 호주(AUS), 캐나다(CAN), 인도(IND), 러시아(RUS), 미국(US), 나머지 국가들(ROW), 영국 밀 소비량(막대그래프 전체), 영국 자체 생산량(UK)/출처=CEPR

영국 농업은 이에 따라 획기적인 변화를 겪게 되는데 곡물 재배에 적합한 영국 동부 지역은 생산 작물의 가격 경쟁력 하락으로 큰 타격을 입은 반면, 서늘하고 습한 날씨 때문에 가축의 방목에 적합했던 서부 지역은 별 영향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토지 이용, 고용, 소득 등의 모든 경제 지표에서 양 지역은 완전히 상반된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북대서양 표류(North Atlantic Drift)와 페닌 산맥(Pennines)의 영향을 받는 영국 서부와 웨일스(Wales) 지역은 험한 지형과 서늘한 온도, 낮은 토질 등으로 곡물 재배보다는 가축 방목에 의존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곡물 수입으로 인한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은 것이다. 반면 동부 지역은 건조한 기후와 비옥한 토지 덕분에 곡물 생산에 최적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입 곡물과 심각한 경쟁에 직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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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지역별 ‘밀 경작 적합도’
주: *옅은 색일수록 밀 경작에 유리/출처=CEPR

밀 수입 증가로 경작지 인구 18%, 자산 가치 24% 줄어

스테판 헤블리치(Stephan Heblich) 토론토대학교(University Of Toronto) 교수, 스티븐 레딩(Stephen Redding) 프린스턴대학교(Princeton University) 교수, 야노스 질베르그(Yanos Zylberberg) 브리스톨대학교(University Of Bristol) 부교수로 구성된 연구진은 해당 역사에서 지역적 요인이 미친 경제적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1801~1901년 기간 영국 내 1만여 개가 넘는 교구(parish) 자료를 연구했다.

그 결과 값싼 수입 곡물의 영향으로 1871~1901년 사이 영국 내 곡물 경작지가 29% 줄어든 반면 목축지는 35% 늘어났음을 발견했다. 동부 지역 농업 노동자 비율도 20% 이상 감소했지만 서부는 10% 미만에 그쳤다. 곡물 수요가 줄며 동부의 농업이 곡물 생산에서 목축 위주로 변화했고 이는 밀 수확량이 높았던 지역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또한 곡물 재배 지역 농업 노동자들이 제조업 및 서비스업으로 업종을 바꾸는 현상도 발생했는데 이 역시 밀 수확량이 높던 교구에서 두드러졌다. 노동자들이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나면서 1901년까지 해당 지역 자산 가치는 24%, 인구는 18% 각각 감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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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 경작 적합도’와 인구 변화 간 관계
주: 연도(X축), 상관관계(Y축), 95% 신뢰구간, *밀 경작에 유리한 지역일수록 1846년 곡물 수입 자유화 후 인구가 줄었음을 보여줌/출처=CEPR

경제 정책 시행 시 지역에 따른 소득 재분배 효과 고려해야

연구진은 ‘정량적 공간 모델’(quantitative spatial model, 경제 활동의 분배를 결정하는 요소를 찾는 데 적합)을 사용해 지역에 따른 경제적 변화를 검증했는데 각 교구를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경제 단위로 보고 다시 농업을 곡물 생산과 목축으로 구분했다. 각 교구에 존재한 토지는 주어진 조건으로 가정하고 노동자들은 자유롭게 지역을 이동할 수 있도록 모델에 반영해 곡물 가격 하락이 지역 경제에 미친 영향을 시뮬레이션했다.

이러한 ‘반사실적 시뮬레이션’(counterfactual simulation, 조건을 달리해 실제 일어난 사실과 비교)을 통해 연구진은 밀 가격 하락이 농업 생산 인구 중 곡물 농업 종자사들을 목축업으로 전업시켜 곡물 재배 지역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역별 자산 가격도 밀 재배 적합지에서는 토지 임대료가 10% 하락한 지역이 나온 반면, 목축지에서는 10% 상승한 곳이 있을 정도로 상반된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이 결과는 기존 ‘헤커-올린 모델’(Heckscher-Ohlin model)의 ‘농산물 가격의 전반적인 하락이 토지 사용료의 전반적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오히려 곡물 경작지 지주들은 퇴출 위기에 처하고 목축지 지주들은 이익을 얻는 소득 재분배 효과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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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 경작 적합도’에 따른 토지 임대료 변화
주: ‘밀 경작 적합도’(X축), 토지 임대료 변화율(Y축), * 1846~1901년 곡물 가격 19% 하락 가정, 각 교구(회색 점), * ‘밀 경작 적합도’가 높은 토지일수록 임대료 하락 폭이 컸음을 보여줌/출처=CEPR

사실 1846~1901년 사이 영국 전체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은 곡물 수입 자유화로 다소 상승해 기대 효용(expected utility)이 3.65%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전체적인 복지 향상에도 불구하고 지역 간에는 상당히 불균등한 경제적 영향과 부의 재분배 효과가 나타났다. 수입 자유화로 대부분의 노동자가 더 높은 구매력을 얻게 된 상황에서 밀 곡창 지대 주민들은 오히려 경제적 곤경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연구진은 결론으로 무역을 포함한 경제 정책 검토 시 지역 간 소득 재분배 효과를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 사례에서 보듯 정부의 곡물 시장 개방 관련 의사 결정 하나가 지역 간 소득은 물론 주요 산업 구성과 인구 분포까지 변화시키는 거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문의 저자는 스테판 헤블리치(Stephan Heblich) 토론토대학교(University Of Toronto) 교수 외 2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The distributional consequences of trade: Evidence from the Grain Invasion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