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금융서비스’ 수요조사 폐지된다고? 핀테크 혁신은 아직도 ‘산 넘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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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 단계에서부터 선별' 혁신금융서비스 수요조사 절차 본격 폐지 
지정대리인·위탁테스트 제도는 여전히 침체, 갈 길 먼 금융 규제샌드박스
샌드박스 제도 미비한 채 돈만 쏟는 당국, 제도적 개선 절실해

‘혁신금융서비스’ 제도의 허점으로 꼽히던 수요조사(선별접수제, 금융당국의 사전검토)가 폐지된다. 22일 금융위원회는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수요조사 관련 서면 답변서를 통해 “향후 수요조사 절차를 없애고 컨설팅을 거쳐 곧바로 정식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핀테크 기업의 혁신을 가로막던 수요조사 절차는 사라지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금융 규제샌드박스가 허점투성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단순히 핀테크 기업 자금 지원만을 확대할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지정대리인·위탁테스트 등 혁신의 밑바탕이 될 제도적 기반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벤처 핀테크 혁신 막는 ‘수요조사’ 절차 폐지

금융 규제샌드박스는 ▲혁신금융서비스 ▲지정대리인 ▲위탁테스트 등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이 중 혁신금융서비스는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금융서비스를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 2년(1회 연장 가능)간 금융 관련 법률에 따른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제도다. 금융 거래 시 안면인식 활용, 금융사 알뜰폰 서비스 등이 혁신금융서비스 제도를 통해 도입됐다.

문제가 된 것은 금융위가 2019년 7월 도입한 ‘수요조사’ 절차다. 이에 따라 약정 신청서를 제출한 기업은 한국핀테크지원센터, 금융감독원 등의 컨설팅을 받게 되며, 해당 서비스의 수요 등에 대한 금융위의 사전 검토를 받아야 한다. 이 같은 사전 검토 과정에서 ‘수용 가능’하다는 판단을 받아야만 정식 신청서를 쓸 수 있다. 사실상 금융당국이 신청 단계에서부터 ‘기업 선별’을 실시한 셈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사전 검토 건수 중 정식 신청 안내·허용을 받은 건은 16~23%에 그친다.

금융위는 수요조사 절차가 사전에 큰 부담 없이 금융당국과 소통·협의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수요조사 절차가 그저 ‘희망 고문’일 뿐이라는 원성이 터져 나왔다. 실제 수요조사 신청 후 사업화가 지연되는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대형 로펌을 거쳐야만 그나마 진행 경과를 알 수 있다는 웃지 못할 ‘팁’이 나돌기도 했다. 기나긴 수요조사를 기다리다가 좋지 못한 결과를 받아 드는 기업도 많았다. 실제 혁신서비스 지정 건수는 수요조사 신청 건수 대비 20%대에 그친다.

제도 취지와 달리 5대(KB국민·신한·하나·금융·NH농협) 금융지주, 대형 회사 위주로 혁신금융서비스가 지정된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됐다. 최근 5년간 지정된 혁신금융서비스 중 금융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62.6%에 달했으나, 핀테크 기업은 30.7%에 불과했다. 대형 금융사의 서비스가 핀테크 등의 중소업체에 비해 수요가 풍부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수요조사 절차 통과 및 정식 지정 과정에서도 유리한 입지를 점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 규제샌드박스’의 또 다른 한계

혁신금융서비스의 수요조사 절차가 사라졌다고 해서 금융 규제샌드박스의 효용성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도 아니다. 샌드박스의 또 다른 축인 지정대리인과 위탁테스트 제도가 사실상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정대리인은 금융사가 핀테크사에게 금융사의 본질적인 업무를 위탁하는 제도며, 위탁테스트는 핀테크사가 개발한 금융서비스를 금융사에 위탁해 시범 영업을 진행하며 사업화 여부를 테스트하는 제도다.

이들 제도는 금융사와 핀테크사 양측의 수요가 있어야 성립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금융사의 제도 수요가 크게 위축됐으며, 핀테크사 역시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제도의 효용성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핀테크를 통한 혁신이 금융 시장 변화를 이끌어나가는 가운데, 혁신 주체인 핀테크 업체와 전통 시장인 금융권의 협력 사례 자체가 급감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지정대리인 및 위탁테스트 지정 건수는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여왔다. 제도가 시행된 2019년 지정대리인과 위탁테스트 지정 건수는 각각 18건, 3건 수준이었으나, 이듬해인 지난 2020년에는 6건, 2건으로 눈에 띄게 줄었다. 심지어 지난 2021년에는 지정대리인이, 지난해에는 위탁테스트가 단 한 건도 지정되지 않았다. 이에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 ‘2022회계연도 금융위원회 소관 결산 검토보고’에서 정무위는 “두 제도 모두 시행 초기부터 실적이 저조했다”며 “금융위가 핀테크사에 대한 제도 홍보를 강화하고, 금융사와의 협력 기회를 제공하는 등 실적 향상을 위한 개선 방안을 마련할 여지는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일갈했다.

정무위는 또 “위탁 업무·책임 범위, 정보 이용 범위, 비용 부담 등 실무적 이유로 금융사와 핀테크사 간 위탁 계약을 맺지 못할 경우 테스트가 그대로 종료되고 있다”며 “계약 미체결 건에 대해선 금융위나 한국핀테크지원센터가 대안을 제시하는 등 제도 활성화를 위한 후속 절차를 마련할 필요성도 있다”고 짚었다. 금융위 측에서 제도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한 셈이다.

혁신 기반 없이 쏟아지는 지원, 효용성 부족

정부는 꾸준히 핀테크 관련 지원 규모를 키우고 있다. 지난해 말 금융위는 ‘핀테크 혁신펀드’ 규모 확대를 선언한 바 있다. 핀테크 혁신펀드는 금융권 출자를 바탕으로 2020년부터 오는 2023년까지 5,000억원을 투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한국성장금융의 펀드 상품이다. 금융위는 오는 2024년부터 2027년까지 해당 펀드에 추가로 5,000억원을 결성, 총투자액을 1조원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핀테크 기업을 대상으로 한 특화 상품 등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 연간 2,000억원 이상의 대출 및 보증 공급을 실시할 계획이다.

올해 6월에는 사업모델의 혁신성과 성장성을 갖춘 핀테크 대표 기업 ‘K-Fintech 30’ 선발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다. 금년도에는 1차 모집을 통해 10개 기업을 선정하고, 3년(‘23~’25년)에 걸쳐 총 30개 기업을 선발하겠다는 구상이다. 선정된 기업은 △각종 정책금융상품 이용 시 우대 적용 △금융회사 대출·외환 서비스 우대 지원 △핀테크 지원 프로그램(보안 점검, 클라우드 바우처 등) 이용 우대 등 각종 혜택을 받게 된다.

하지만 정작 혁신을 위해 최우선시돼야 할 규제샌드박스 제도는 여전히 ‘빈틈투성이’다. 대기업 및 정책자금을 노리는 일부 기업이 불어나는 정부 지원을 독식하는 가운데, 진짜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사각지대에 내몰려 몸을 웅크리고 있다. 혁신금융서비스 수요조사 절차 폐지는 혁신 핀테크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한 ‘첫걸음’에 불과한 만큼, 이후로도 꾸준한 샌드박스 제도 개선을 실시하는 등 금융시장 혁신의 기반을 다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