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ELS 배상 여파 ‘제한적’, 타격 불가피한 은행과 온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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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 "손실 배상액 상당 부분 충당금 감소로 상쇄 가능"
가장 익스포저 많은 KB은행 8,000억원 배상 규모 예상
은행권, 배상 지급 시 비이자이익 위축 등 파급효과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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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분쟁조정기준안/출처=금융감독원

증권가에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분쟁조정기준안이 은행주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비용 부담에 따라 올해 자본비율이 하락할 수 있지만, 이미 ELS 배상 이슈는 주가에 선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는 조 단위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이번 배상안에 대해 난색을 표하는 은행권과 상반된 모습이다.

주가에 이미 선반영 된 ELS 배상 이슈, “영향 제한적일 것”

12일 금융감독원은 수 조원대 원금손실 사태를 일으킨 홍콩 H지수 ELS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했다. 판매사의 배상비율은 23~50%로 정해졌다. 가입자별 연령, 자료 유지 및 관리 미흡 여부 등 가중 항목을 적용하면 배상 비율은 더 높아질 수 있다. 다만 은행주의 비용 부담은 일회성 요인인 만큼 주가에 끼칠 영향은 제한적이란 분석이다. 특히 은행주의 주주환원 확대 기조도 이전처럼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준석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배상 규모가 가장 클 것으로 예측되는 KB금융을 두고 “ELS 배상으로 자본비율이 하락할 수 있지만, 이미 회사는 대규모 추가 충당금을 적립해 놓은 상황”이라며 “손실 배상액 상당 부분은 충당금 감소로 상쇄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KB 외 타사는 ELS 배상 부담이 현저하게 낮다”고 덧붙였다.

정광명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이미 ELS 배상 관련 이슈의 상당 부분이 주가에 반영됐다고 판단한다”며 “현재 대형 시중은행의 높은 보통주자본비율(CET1) 비율과 이익 규모를 고려하면 은행의 주주환원 정책 확대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배승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미 오랜 기간 표면화된 이슈인 데다가 기본배상 비율이 예상 범위 수준이다. 또 최근 H지수 하락세도 일단락을 보여 은행주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크지 않을 전망”이라며 “다만 향후 은행권의 ELS 판매가 위축될 수 있어 하반기 수수료 이익 확보엔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대형은행들, ELS 배상 관련 비이자이익 위축 피하기 어려울 듯

다만 대형은행을 중심으로 일정 수준의 부담은 불가피해 보인다. 관련 배상이 지급될 경우 과거 사모펀드 사태와 유사하게 은행의 이익 감소, 비이자이익 위축 등 파급 효과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전기준에 따르면 은행의 경우 은행별로 모든 투자자에게 적용되는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위반 사항이 발견됐음을 근거로 최소 20~30%에서 최대 40%까지 기본 배상비율을 적용한다. 여기에 영업목표 설계 부적정 등 내부통제부실을 명목으로 10%포인트의 공통 가중도 적용됐다. 이는 대면 판매 기준으로 온라인 판매의 경우 5%포인트가 적용된다. 은행의 ELS 판매가 대부분 창구에서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최소 30% 이상의 배상비율이 기본적으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고객 가입 목적, 연령, 은행 자료 유지·관리 미흡 등에 따라 최대 45%포인트의 가산항목과 투자경험, 매입·수익규모, 금융상품 이해능력 등 여부에 따라 최대 45%포인트의 차감항목이 적용된다. 결국 기타 조정 최대 10%포인트 안팎으로 감안해 최종적인 배상 비율이 결정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SK증권은 이러한 분쟁조정안과 올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H지수 ELS 손실 추정액을 은행별 ELS 만기 도래액 규모로 배분해 각 은행에 미치는 시나리오 테스트 추정했다. 올해 예상되는 H지수 ELS 손실액 추정 금액은 지난달 말 기준 연간 5조8,000억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은행과 증권 간 손실금액 비율을 적용할 경우 은행의 경우 약 4조8,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설용진 SK증권 연구원은 “구체적인 배상 등 규모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최저 기본 배상비율 20%에 공통 가중 10%포인트를 적용한 배상비율 30%만을 가정할 경우 가장 익스포저가 많은 KB금융이 약 7,000~8,000억원,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이 약 1,000~2,000억원 규모의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중요인 등을 감안해 배상비율이 평균 40%까지 올라가는 경우에는 KB금융이 약 1조원, 신한지주와 하나금융지주가 약 2,000~3,000억원 규모를 부담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배상이 지급될 경우 영업외비용 등을 통해 재무제표에 반영될 것으로 예상되며 은행의 전반적인 투자상품 판매 위축, 자산관리 관련 손익 감소 등으로 이어질 전망”이라고 전했다.

반복되는 한국 금융의 후진성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안전성 위주로 운영돼야 할 은행이 도박 같은 고위험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이를 수습하느라 당국이 개입하는 등 한국 금융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이번 사태에서 은행은 책임을 피할 수 없다. 4년 전 독일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대량 손실 사태 후 정부가 2021년 고난도 투자 상품 판매를 규제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을 만들었지만, 수수료 수입에 목맨 은행들은 법망을 교묘히 피해 가며 홍콩H지수 연계 ELS를 19조원어치나 팔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ELS가 손실 구간에 들어갔음에도 정상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평가하고, 내부 규정까지 고쳐 판매 한도를 늘리며 ELS 판매를 독려했다.

금융 당국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금감원은 DLF 사태 후 은행의 고위험 금융 상품 판매를 금지하려다 소비자 선택권을 강조한 은행들 요구를 수용해 ELS 판매는 계속 허용하기로 물꼬를 터줬지만, 사후 감독과 감시를 소홀히 해 피해 규모가 커진 것이다. 은행들의 내부 통제 체제와 당국의 외부 감시 시스템이 동시에 고장난 셈이다. 투자자들의 책임도 있다. 투자는 기본적으로 ‘자기 책임’이다. 모든 투자는 자신이 위험을 떠안는 것이다. 이익이 나면 자신의 몫이고 손해가 나도 자신의 책임이다. ELS 상품을 사려면 반드시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부분을 듣고 직접 서명해야만 한다. 만약 금융회사가 고의나 과실로 투자자에게 손해를 끼쳤다면 법적 절차를 통해 구제받는 것이 선진국형 해법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선 투자에서 손해를 본 사람 숫자가 많으냐, 적으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숫자가 많으면 손실을 물어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정부는 이에 굴복해 금융사권을 압박한다. 선진적이고 합리적인 금융이 자리 잡을 수 없는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