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7주래 최강세, 155엔도 무너졌다 “38년 만의 슈퍼 엔저 막 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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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 금리 격차 감소 기대·안전 자산 수요가 엔화 지지 
日 정부 외환시장 개입 및 트럼프 엔저 문제 언급도 영향
엔화 강세 흐름에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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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달러 환율 추이/출처=구글 파이낸스

속절없이 떨어지던 엔화 가치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아시아 통화 약세’에 대한 경고성 발언과 미국-일본 간 기준금리 격차가 좁혀질 것이란 시장의 기대감이 반영되면서다. 기록적 슈퍼 엔저의 끝이 보인다는 기대가 커지는 가운데, 저리의 엔화로 다른 고금리 자산을 매입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도 풀리기 시작했다.

달러당 엔화 강세, 엔·달러 환율 153엔대

26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가 오르면서 엔·달러 환율은 한때 달러당 153.66엔까지 떨어졌다. 약 2개월 반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전날과 비교하면 하루 만에 2엔가량 하락했다. 현재 주요 10개국 통화(G10) 중 가장 높은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는 엔화는 약 7주 전만 해도 심리적 저항선이라고 여겨졌던 ‘1달러=160엔’을 돌파하며 일본의 경제 버블 시기인 1986년 12월 이후 38년 반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당시 시장에선 엔화가 160엔대에서 움직이는 ‘초(超)엔저 시대’가 지속될 것이란 비관론까지 나왔다.

최약세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던 엔화가 반등하기 시작한 건 미국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 이후부터다. CPI 상승률이 3개월 연속 둔화하면서 미국의 금리 인하론에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CME Fedwatch)에 따르면 시장은 오는 9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을 96.3%로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전망도 엔화 가치 상승을 유도했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가 축소될 것이란 기대감이 확산하면서다. 현재 연준은 22년 만의 최고 수준인 5.25~5.5%의 기준금리를 고수하고 있는 반면 BOJ는 0~0.1%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분석업체 LSEG에 따르면 금리선물시장은 일본은행이 오는 30~31일 개최되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금리를 10bp 인상할 가능성을 67.2%로 점치고 있다. 이는 이번 주 초 40%에서 대폭 상승한 수치다.

“달러와 엔화 격차 크다”, 트럼프 발언도 엔화 강세 견인

최근 발생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총격 사건도 엔화 강세를 이끌었다. 총격 사건은 외환시장에서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을 급격히 높인 것은 물론, 향후 엔저 흐름의 전환 가능성도 부각했는데, 이는 트럼프가 재임에 성공할 경우 양적 완화를 동반한 달러 가치의 하락이 발생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의 최근 발언도 엔화 매수에 불씨를 당기며 엔저가 흔들릴 가능성을 열었다.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내세우며 수출 촉진을 위해 달러화 약세를 지지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인터뷰에서 통화 이슈를 언급하며 엔화 약세를 용인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그는 “우리는 큰 통화 문제를 안고 있다”며 “현재 강한 달러 및 약한 엔, 약한 위안이라는 측면에서 통화의 깊이(the depth of the currency)가 엄청나기(massive)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달러와 엔, 달러와 위안의 불일치(discrepancy)가 믿기지 않는다(unbelievable)”며 “미국 제조업체들은 달러가 너무 비싸서 아무도 제품을 사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는 유지하면서도 미국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달러 약세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트럼프는 1기 집권 당시에도 달러 가치를 낮춰야 한다며 연준에 금리 인하를 압박한 바 있다.

트럼프의 발언에 달러인덱스는 즉각 반응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7일 미국 동부시간 오전 4시 반께 104에서 103 후반대로 내려앉았다. 이는 지난 3월 중순 이후 최저 수준이자 200일 이동평균선이 가리키는 수치인 104.4도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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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가치 오르자 ‘엔 캐리 트레이드’ 위축

일본 정부의 개입도 엔저 기조에 제동을 건 요인으로 거론된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당국은 11일 3조 엔(약 27조원) 넘는 자금을 외환 시장에 투입한 데 이어 12일엔 2조 엔(약 18조원) 정도를 추가로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11일 엔화 가치는 장중 달러당 161.6엔대에서 157.4엔까지 올랐다.

미국과 일본 주식시장에서 주요 지수가 하락하며 부각된 위험 회피 움직임도 엔저 탈피에 기여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를 하던 투기 세력이 엔화 매도 포지션을 축소하고 엔 매수에 박차를 가하면서다. 실제로 최근 엔저 추세가 완화되는 가운데 엔 캐리 트레이드에도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다. 금리가 낮을 때는 엔 캐리 트레이드를 통해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으나, 금리가 오르고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면 그만큼 환손실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엔화로 투자한 자산을 팔고 자금을 회수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엔 캐리 자금은 올해 5월까지만 해도 57조2,640억 엔(약 515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8조7,167억 엔)과 비슷한 수준에서 느는 추세였다. 유럽이 최근 잇달아 기준금리를 내리며 통화가치가 낮아진 반면 미국의 금리 인하 지연으로 달러 독주가 이어진 데 따른 것이다. 여기에 엔 캐리로 고수익을 추구하는 ‘와타나베 부인’들이 슈퍼 엔저에 베팅하면서 엔화 약세를 더욱 부추겨왔다. 하지만 최근 엔저 추세 완화로 이같은 흐름에 반전이 생긴 것이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대한 시그널은 3개월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4월 유가증권(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이 순매수한 금액은 2조4,600억원으로, 2월 7조8,583억원, 3월 4조4,285억원에서 점차 순매수 규모가 축소되는 모습을 보였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4월에만 7,580억원어치를 팔아치우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하반기 엔화의 절상 움직임이 나타나는 와중에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정상화와 지정학적 리스크로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점진적으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요건이 충족될 것이라 보고 있다. 닛케이지수 하락 자체가 엔고로 이어지는 구조도 있다. 외국인은 통상 일본 주식에 투자할 때 같은 금액의 ‘엔 매도·달러 매수’를 통해 환율 변동 리스크를 헤징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