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美 제재’에도 기술 자립 순항, 상하이 ‘롄추후 R&D 캠퍼스’ 인재 영입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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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상하이에 초대형 R&D캠퍼스 건립
구글 본사보다 10배 이상 큰 규모
미국의 기술 제재에 중국 '기술 자립화'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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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롄추후 레이크 R&D 센터’ 전경/사진=상하이시 인민정부

중국 화웨이가 상하이에 미국 알파벳 본사 10배에 달하는 대규모 연구·개발(R&D) 캠퍼스를 짓고 글로벌 인재 영입에 나섰다. 미국의 대중국 제재에 맞서 첨단산업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화웨이 초대형 반도체 R&D 센터, 인력 배치 시작

25일(현지시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화웨이가 최근 상하이 칭푸구에 ‘롄추후 R&D 캠퍼스’를 열고 인력들을 배치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100억 위안(약 1조9,500억원)을 투입해 준공한 롄추후 캠퍼스는 약 1,050만㎡ 크기로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위치한 구글 모회사 알파벳 본사보다 10배 이상 크며, 화웨이의 R&D 센터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다. 8개 블록과 104개의 건물로 구성됐으며 실험실, 사무실, 식당, 카페, 피트니스센터 등의 시설이 포함돼 있다. 또한 초대형 규모인 만큼 자체적인 교통시설도 갖추고 있다. 친환경 버스와 궤도 차량은 이미 이달 14일부터 R&D 센터에서 정식 가동되기 시작했다.

화웨이 본사가 위치한 선전의 R&D 센터가 통신 설비에 주력한다면 상하이 롄추후 캠퍼스는 반도체 개발에 집중하게 된다. 롄추후 캠퍼스는 특히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외주 제작) 업체인 SMIC(중신궈지, 中芯國際) 인근에 위치해 있는 만큼 향후 화웨이와 SMIC의 협력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화웨이의 상하이 R&D 센터에는 3만 명 이상의 R&D 인력이 모여 연구개발 활동을 진행하게 된다. 반도체 이외에도 무선통신, IoT(사물인터넷) 등의 분야도 연구하게 되지만, 주력 연구 분야는 반도체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화웨이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자회사인 하이실리콘(하이쓰, 海思)의 R&D 인력이 대거 입주할 예정이다. 리위제 칭푸구 경제위원회 부주임은 “이달에만 연구원을 포함한 화웨이 직원 약 3,000명이 롄추후 캠퍼스로 옮겨 정상 출근을 하고 있다”며 “더 많은 R&D 인력들이 유입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거세지는 美 디커플링 압박에 中 기술자립 강화

화웨이의 이 같은 행보는 미국 규제에 대응한 조치다. 미국은 일본과 네덜란드로부터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에 동참한다는 약속을 받아낸 데 이어 중국 기업들에 대한 직접 제재의 칼을 연이어 빼 들었다. 지난 2020년 국가안보를 이유로 화웨이가 미국산 장비를 이용해 만들어진 반도체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 대표적이다. 또 화웨이가 미국 상무부의 승인 없이 미국 기술을 이용해 칩을 만드는 것도 막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 상무부는 중국군 현대화 지원, 대(對)이란 제재 위반, 자국민 감시 등의 이유로 AIF 글로벌 로지스틱, 갤럭시 일렉트로닉, 중국 최대 유전자 기업인 BGI 그룹의 연구소와 BGI 테크솔루션 등 28개 중국 기업을 수출 제재 명단에 올렸다.

미국의 압박이 지속되자 중국 정부는 R&D 예산을 대폭 늘리며 기술 독립을 추진했다. 2022년에는 3조 위안(약 585조원) 넘게 쏟아부으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R&D 투자액이 많은 국가로 꼽히기도 했다. 이는 전년보다 10.4% 늘어난 것이자 국내총생산(GDP)의 2.55%를 차지하는 규모다.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화웨이도 R&D에 거액을 투자하며 빠른 속도로 기술독립을 추구했다. 지난해에 총 매출의 23.4%인 1,647억 위안(약 32조원)을 R&D에 투입했으며 현재 R&D 인력은 11만4,000여 명으로 전체의 55%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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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 받아 구형 D램 물량 공세, 메모리반도체 빅3 위협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중국 정부의 기술 굴기를 통해 이미 중국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중국 메모리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D램 생산능력은 현재 월 16만 장(글로벌 점유율 10%)으로 늘어 세계 4위가 됐다. 지난해 말(12만 장)과 비교하면 9개월 만에 30% 넘게 확대됐다. 미국의 중국 제재가 시작된 2020년 이후 공격적으로 캐파를 늘린 결과다.

캐파 확장은 현재진행형이다. 노무라증권에 따르면 CXMT의 D램 생산능력은 올해 말 20만 장으로 증가하고, 내년에는 30만 장으로 늘어난다. 전 세계 생산량의 15%를 CXMT가 차지한다는 얘기다. 생산 능력만 놓고 보면 3위 마이크론(약 20%)을 거의 따라붙는 규모가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생산능력은 각각 40%와 30% 안팎이다.

CXMT가 빠른 속도로 몸집을 불린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과 더불어 스마트폰 업체들의 자국산 부품 이용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샤오미, 트랜션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지난해부터 CXMT의 12Gb(기가비트) 저전력 모바일 D램인 LPDDR5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CXMT가 주력하는 제품은 레거시(범용) D램인 더블데이터레이트(DDR)4다. 2012년 상용화된 구형 제품이다. 현재 시장의 주력은 2020년 상용화된 DDR5다. 인공지능(AI) 가속기에 들어가는 핵심 메모리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도 현재 시장의 주류인 HBM3E(5세대)보다 훨씬 뒤처진 HBM2(2세대)를 주로 생산한다.

CXMT가 구형 제품 물량을 쏟아내다 보니 제품 가격은 떨어지는 추세다. 16Gb DDR4의 현물 가격은 지난해 하반기 평균 3.5달러에서 올 상반기 3.3달러로 5.7% 내렸다. 이에 같은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로 인해 점유율 하락과 가격 하락이란 이중고를 겪고 있다. 특히 업계는 상대적으로 범용 반도체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가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두, 텐센트 등 중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삼성전자의 HBM2E를 많이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중국의 거센 추격이 현재로선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분석도 있으나 그럼에도 중국의 추격은 경계해야 한다는 시선이 강하다. 중국이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약 20~25%가량을 차지하고 있어서다. 더욱이 중국 공급업체가 자국 내 수요를 충족하기 시작하면 한국과 미국 기업은 과잉 생산능력을 갖추게 돼 생산량을 줄이거나 낮은 가격에 공급할 수밖에 없게 된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 재정 지원까지 단행하고 있어 예상보다 첨단 제품이 더 빨리 생산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