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책무구조도’ 카운트다운, 내부통제 시스템 실패 시 CEO가 책임
책무구조도, 금융사고 발생 시 경영진에 책임 물어
사고 예방보다 처벌에 중점, 유인 부합성↓
'금융판 중처법'이지만, 중처법조차 효과 의문
금융권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책무구조도 도입이 급물살을 탄 가운데 최고경영진에게 부과할 ‘고유의 자기 책임’이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는 금융지주 회장 및 은행장의 ‘내부통제 관리 책임’ 강화를 의미하는데, 내부통제 실패 시 금융당국으로부터 ‘해임 요구’까지 받을 수 있는 핵심 사항으로 꼽힌다.
책무구조도 도입 급물살, 내부통제 강화 고삐
1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내년 초 책무구조도 도입 이후 금융권 횡령·배임·부당대출 등이 장기화 또는 반복되거나 광범위하게 발생할 때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임원은 행정 제재를 받는다. 당국은 책무구조도 상 관리 조치를 소홀히 한 책임자인 대표이사에게 △해임 요구 △직무 정지 △문책 경고 △주의적 경고 △주의 등을 내릴 수 있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에 따른 대표이사 등의 내부통제 등 총괄 관리의무(지배구조법 제30조의4) 위반과 임원의 내부통제 등 관리의무(지배구조법 제30조의2) 위반 등 개정된 지배구조법을 따른다.
책무구조도가 도입되는 이유는 일견 간단하다. 현행 지배구조법과 상법은 임원(이사, 감사, 업무집행책임자 등)의 추상적인 권한만을 정하고 있을 뿐, 각 임원 개개인의 역할이나 책무는 정하고 있지 않다. 금융당국은 금융사고 책임소재가 불분명함에 따라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봤다. 이에 누가 어떤 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는지 책임 소재를 밝히겠다는 취지다.
대표이사에게 내부통제 총괄 관리 의무 부여
실제로 지난 7월 개정법 시행 이전까지는 내부통제 관리에 실패한 은행장과 지주회장은 영업 현장에서의 책임자인 영업점장이나 본부장에게 지웠던 ‘감독자 책임’의 연장선상이었기 때문에 ‘주의’ 등 경징계에 그쳤다. 사고를 친 당사자와 직급 차이가 날 수록 징계 수위는 약화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 영업점에서 1,000억원대 횡령이 발생했다고 가정하면, 사고자 A씨의 ‘직상위자’는 영업점장 B씨고, 본부장 C씨는 ‘차상위자’다. B씨와 C씨는 A씨에 대한 관리 감독을 제대로 못 했기 때문에 감독자 책임으로 분류한다. 만일 A씨가 해고 처분을 받는다면 직상위자 B씨는 A씨 징계에 대한 ‘마이너스 1’ 징계인 ‘정직’, 차상위자인 C씨는 ‘마이너스 2’ 징계인 ‘단봉’ 처분을 받는다. 개정 이전 법대로라면 담당 임원과 대표이사도 감독자 책임으로 분류돼 A씨 징계에 대한 ‘마이너스 3’, ‘마이너스 4’ 징계로 결국 경징계를 받았다. 은행장과 지주회장에게 ‘고유의 자기책임’을 부과하게 된 배경이다.
법 개정 이후부터는 대표이사에게 책무구조도 마련 및 내부통제 관리라는 고유의 자기 책임을 부과하며 책임지어야 할 영역을 완전히 분리했고, 이에 따라 해임 요구 및 직무 정지와 같은 중징계 처분도 가능해졌다. 판단 기준은 위험이 장기화되고 반복적이거나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느냐 여부다.
더욱이 대표이사는 책무구조도를 마련하는 당사자이자 내부통제 총괄 관리의무를 부여받는 책임자다. 이 때문에 중대한 금융사고 발생 시 처벌 감경 및 면제받기 위해서는 그동안 어떤 내부통제 관리 조치를 했는지 증명해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즉 ‘상당한 주의 업무를 통해 내부통제 관리 조치를 했고 이 사고는 조치를 벗어난 수준’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방향은 좋지만, 과제 산적
다만 전문가들은 책무구조도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책무구조 작성과 실제 업무현장 적용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태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부분의 금융사고에 해당하는 횡령, 유용, 사기, 배임 등은 대체로 일선 부서에서 발생하며 해당 직원 또는 부서 외에는 사전에 감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앞으로는 임원의 전체 책무를 이러한 영업 일선에서의 사고까지 책임지고 관리하도록 전사적 관점에서 최대한 빈틈없이 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흔히 개인적 일탈로 치부되는 횡령 사건에서조차 인사관리, 공문·통장·직인날인관리, 자점감사, 이상거래 모니터링 미흡 등 업무 절차상 하자 또는 시스템적 실패 요인이 사후검사에서 종합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며 “개별사고의 책무도 여러 임원 간에 배분될 수 있다는 의미인데, 이런 책무구조 작성상 난제는 임원의 내부통제 관리의무 준수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감독상 난제로도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규제준수 부담이 증가하면서 소규모 금융회사가 경영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책무구조도를 회사 규모와 무관하게 동일 규제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영국은 회사의 자산규모, 회사 유형별로 규제를 달리 적용한다. 가령 자산규모가 작은 보험회사에는 책임지도 마련·제출 의무가 적용되지 않고 대상 임원 범위도 제한적이다. 호주는 총자산이 기준에 미달하는 금융회사들에게는 책임성지도, 책임성진술서 마련·제출 의무와 기재사항 중대 변경 시 통지의무를 적용하지 않는다.
책무구조도가 금융사의 사전 예방보다 금융당국의 사후 제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오 연구위원은 “금융당국은 그동안 금융사고 발생 후 제재로 손실 규모를 확대하거나 내부통제 노력 여부에 따라 이를 경감하는 방식으로 내부통제의 유인 부합성을 높여 왔다”며 “금융기관이 예방적 차원에서 내부통제 이행의 순기능을 체감하도록 유도해 나가지 않으면 여전히 사고를 은폐할 유인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무구조도도 만일 사후적 제재 수단에 그친다면 이로부터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근본적으로 금융사 임원을 처벌한다고 해서 금융사고가 줄어든다는 근거도 부실하다. 실제로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경영책임자, 사업주, 법인의 처벌을 규정한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도입 당시에는 사고를 줄일 것으로 기대됐지만 아직 유의미한 감소는 없는 상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상시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 사망자는 256명으로 시행 이전인 2021년 248명보다 8명 늘었다. 50인 미만 제조업체 사망자도 82명에서 96명으로 14명 증가했고, 50억원 이상 대형 건설현장 역시 2022년 115명에서 2023년 122명으로 7명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