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트럼프發 강달러에 재차 1,400원 돌파
"미국 기준금리 내려갔는데" 꺾이지 않는 강달러
트럼프 당선인 관세 강화·감세 공약이 금리 상승 기대 키워
기준금리 조정 앞둔 韓·엔저 시달리는 日 '난감'
원·달러 환율 시가가 재차 1,400원을 넘어섰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지자, 시장 전반에서 강(强)달러 흐름이 지속되며 환율이 치솟는 양상이다. 기준금리 조정에 제동이 걸린 한국, 엔저 장기화 가능성이 커진 일본 등 주변국의 셈법은 한층 복잡해지게 됐다.
치솟는 원·달러 환율
1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전 9시 20분 기준 1,400.7원을 기록했다. 전 거래일 종가(1,394.7원)보다 4.4원 오른 1,399.1원에 개장한 뒤 곧바로 1,400원대까지 올라선 것이다. 환율 시가가 1,400원을 넘긴 것은 지난 7일(1,401.10원) 이후 3거래일만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6일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압승을 거뒀다는 소식에 1,400원대를 넘나들다가 8일 Fed가 스몰컷(0.25%p 금리 인하)을 단행하며 1,380원대까지 밀린 바 있다.
달러인덱스는 이날 105.7까지 오르면서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인덱스는 경제 규모가 크거나 통화가치가 안정적인 세계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미국 달러의 평균 가치를 지수화한 것으로, 달러의 가치 변동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다. 시장에서는 Fed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달러 강세가 이어지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하면 금리 뛴다?
미국 대선 이후 달러 강세가 이어지는 배경에는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이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미국으로 오는 모든 수입품에 10%의 보편 관세를 매기고, 중국산 수입품에는 60%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이에 시장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세계적으로 통상 갈등이 심해지고 물가가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2025년 만료되는 ‘감세와 일자리법(TCJA)’을 연장할 것이라는 전망 역시 달러 강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와 의회가 통과시킨 TCJA는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소득세 최고세율을 39.6%에서 37%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해당 법안을 연장하고 법인세율을 15%까지 낮추겠다고 공약한 상태다. 공화당이 백악관과 의회의 상·하원을 동시에 장악하는 ‘레드스윕’ 현상이 나타난 만큼, 이 같은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은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들이 금리 인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수입품 관세를 인상할 경우 자연스럽게 물가가 상승하게 되고, Fed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크다. 세금 감면 시에는 세수가 줄고 재정 적자가 커지며 국채 발행이 늘어나고, 금리 역시 이에 발맞춰 상승할 확률이 높다. 미국의 금리가 상승하면 전 세계의 자금이 미국으로 쏠리게 되고, 달러 수요가 급증하면서 강달러 현상이 심화하게 된다.
셈법 복잡해진 韓·日
강달러 기조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가운데, 세계 각국의 셈법은 한층 복잡해지게 됐다. 우선 우리나라의 경우 한동안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조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강달러로 인해 고환율이 이어지면 수입 물가를 자극해 소비자 물가가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시장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오는 28일 진행될 연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엔저 장기화로 신음하고 있는 일본의 고민 역시 깊어지는 추세다. 지난 9월 달러당 140엔선까지 떨어졌던 달러·엔 환율은 트럼프 당선인이 미 대선 승기를 잡은 지난 6일 달러당 154엔까지 뛰었다. 과거 엔저는 일본의 수출을 떠받치는 호재로 작용했으나, 대기업 공장들이 해외로 대거 이탈한 현시점에는 내수 기업의 수입 부담을 가중하는 악재로 꼽힌다. 엔저가 장기화하며 소비자물가가 치솟을 경우 출범 한 달 만에 30%대로 고꾸라진 이시바 내각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크다.
달러·엔 환율이 눈에 띄는 상승세를 보이자 일본 정부는 시장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고 나섰다.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가토 가쓰노부 일본 재무상은 지난 8일 각의(국무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최근 외환시장에 대해 “일방적이고 급격한 움직임이 보인다”며 “지나친 움직임에는 적절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의 대선 승리와 관련해 “미국은 주요 무역상대국”이라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일본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