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M&A로 신뢰 붕괴 vs. 새로운 활로 개척, MBK 행보에 ‘엇갈린 시선’

160X600_GIAI_AIDSNote
MBK파트너스, LP 출자사업서 연이어 탈락
정량평가는 고득점, 정성평가는 '낙제점'
부정해도 결국 적대적 M&A, 대기업 반발 가능성도
MBK_KIM_FE_20241112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사진=MBK파트너스

사모펀드 운용사(PEF) MBK파트너스가 국내 기관투자자(LP) 출자사업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시고 있다. 정량평가에선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정성평가에서 쓴맛을 본 모습이다. 그 배경에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있다. 이를 두고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고 싶은 LP들의 입장이 이해된다는 의견이 나오는 한편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전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에서 행동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만큼 이젠 한국도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MBK, 출자사업 연일 ‘고배’

1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MBK는 최근 과학기술인공제회 출자사업에 이어 노란우산공제회 출자사업에서도 탈락했다. MBK가 국내를 넘어 동북아 최대 운용사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결과다. 전문가들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MBK는 고려아연 사태 이전 국내 출자사업에서 ‘연전연승’을 해 왔다. 하지만 최근 MBK는 정량평가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고 있지만 정성평가에선 낙제점을 받고 있다. 시장은 이를 오랜 기간 국내에서 누적돼 온 평판 등이 반영된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MBK는 그동안 국내 LP보다 해외 LP를 우선시해 왔다.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캘리포니아 교직원 퇴직연금, 플로리다 퇴직연금, 뉴욕주 공무원퇴직연금 등 글로벌 LP가 MBK의 앵커LP였다. 해외에서도 충분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보니 국내 LP들에겐 아예 출자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국내 LP들의 불만도 지속적으로 누적됐다.

그러던 중 MBK는 지난해 6호 블라인드 펀드 조성 과정에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 투자를 지속해 온 MBK 행보에 부담을 느낀 미국의 LP들이 출자금을 크게 줄인 탓이다. 이에 MBK는 뒤늦게 국내 LP들에 손을 내밀어 자금을 조달하려 했지만 이미 등을 돌린 기관들은 MBK의 손을 잡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LP들은 성과보수를 받지 못하는 만큼 어떻게든 리스크를 안고 가지 않으려는 특성이 있다. 아무리 정량평가에서 고득점을 하더라도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하는 GP(위탁운용사)에는 출자하지 않다는 얘기다. 특히 국내 LP는 안정주의 성향이 더욱 짙다.

MBK_FE_20241112
사진=MBK파트너스

“감히 재벌에 맞선다” 의견도

국내 LP들을 잘 아는 PE들은 MBK의 탈락을 ‘뻔한 결말’이라고 입을 모은다. 고려아연 경영권 쟁취를 위한 공격적인 행보로 정치권과 금융감독원에 엮여있는 MBK에 국내 LP들이 자금을 대줄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실제 MBK는 이번 거래에서 과거 찾아보기 힘들었던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적대적(Hostile) M&A가 아니다”라는 MBK의 호소가 무색할 정도다.

수차례 배포한 보도자료·입장자료를 통해 고려아연 진영의 자금 모집을 폄훼하거나 무시하는 시도도 끊임없이 보여준다. “일본 스미토모 같은 원자재 공급업체가 지분을 사면 당신들이 배임이 된다”, “소프트뱅크나 베인캐피탈이 인수하면 향후 지분 매각이 불가능할 것이다”, “엑시트(투자금 회수) 방안이 없다”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모두 MBK의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정당성과는 거리가 먼 주장들이다.

이렇다 보니 ‘MBK·영풍’ 연합에 대한 반발 움직임도 상당하다. 고려아연 사외이사 7인은 MBK의 경영권 인수시도를 ‘적대적 M&A’로 규정,모두 최윤범 회장 측 경영진을 지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MBK는 단기 기업가치 제고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어 회사와 지역사회가 큰 손해를 입을 것이고, 외국자본인 MBK는 국내기업과 충돌을 일으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MBK에 대한 재계와 오너들의 시선도 국내 LP들이 우려하는 요소다. 한국타이어에 이어 고려아연에서도 ‘행동주의 펀드’의 모습을 보여준 MBK와 대기업 오너들이 과연 거래를 하려고 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한 PE 관계자는 “LP들 사이에서 재벌 중심으로 움직이는 재계에 감히 맞서는 MBK를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며 “이런 상황에서 출자금이 국내 기업의 적대적 M&A에 쓰일 수 있다는 인식까지 더해졌으니 결과는 충분히 예상됐다”고 짚었다.

정치권 “약탈적 사모펀드” 질타

MBK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이에 MBK는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당시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증인으로 참석한 김광일 MBK 부회장에게 “과거 MBK는 7조2,000억원을 들여서 A마트를 인수했는데 블라인드 펀드로 2조2,000억원을 투입하고, 나머지 5조원은 A마트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만든 회사로 대출받았다”며 “결국 A마트 점포 20여 개를 매각해서 대출 4조원을 갚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것이 그렇다”며 “B기업을 인수했을 때도 직접 투입한 자금은 4,700억원밖에 안 된다”며 “B기업을 담보로 또 돈을 받아서 인수를 하고 그리고 몇 년 안에 엄청난 배당금을 받아서 (투자금을) 다 뺐다”고 지적했다.

백 의원은 또 “C치킨을 인수하고 나서 프라이드 치킨 가격을 33.3% 인상했고, A제품의 가격을 28.8% 인상했다”고 말했다. 이어 “D보험사도 10년 이상 장기 보유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5년 만에 어떻게 보면 팔아 치운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많은 의원들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는 그만큼 MBK가 그동안 해 왔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라며 “쏙 빼먹고 그냥 달아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알짜 자산 매각과 구조조정 등 MBK의 고질적인 문제를 넘어 이익 대부분이 해외로 유출된다는 점과 갑질 논란을 지적했다. 대표 사례로는 MBK 인수 후 한 프랜차이즈 치킨업체가 치킨값을 과도하게 인상한 사례를 들었다. 박 의원은 “우리가 늘 문제 삼는 게 M&A에서 알짜 자산을 매각하고, 또 과도한 구조조정을 하고, 치킨값을 올려서 기업 가치를 올리고 그 이익 대부분이 해외로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C치킨 인수 후 가맹점 계약을 부당해지하고 물품 공급을 중단하는 등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3억5,000만원과 시정명령 처분을 받았다”며 “이렇게 가맹점을 쥐어짜 치킨값을 올리고 알짜 자산을 매각해서 C치킨의 가치를 올린 것이냐”고 비판했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경우 MBK를 ‘약탈적 사모펀드’라고 지칭했다. 서 의원은 “결국 근로자를 대량 해고하고 과도한 배당을 하고 알짜 자산을 매각하고 이렇게 남발해서 약탈적이고 또 국민의 피눈물을 흘리게 한다”고 비판했다.

속내 복잡한 국내 PE들

다만 일각에서는 MBK 행보가 충분히 이해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내 자본시장 상황을 곱씹어보면 MBK의 전략이 납득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 자본시장이 어느 정도 성장하다 보니 딜 발굴(소싱)이 어려운 상황에 도래했고 LP들에게 높은 이익률을 안겨주기 위해선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이에 MBK가 해외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행동주의 전략을 국내에 도입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에선 행동주의 펀드가 득세하는 분위기다. 시장조사기관 딜리전트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공격을 받은 미국 기업은 550곳이다. 한국은 77곳으로 미국의 7분의 1 수준이다. 한 PE 관계자는 “높은 이익률이 예상된다면 적대적 M&A도 못 할 건 없다”며 “돈에 출신, 국적 같은 꼬리표가 어디 있나. 이익이 되면 그냥 하는 게 자본시장”이라고 말했다.

적대적 M&A가 국내 시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올 것이란 견해도 있다. 이번 고려아연 사태를 지켜본 기업들이 거버넌스 이슈에 눈을 떠 주가 부양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IB업계 관계자는 “최근 전 세계 증시가 호황을 이어가고 있지만 코스피만 박스권에 머물러 있다. 코리아디스카운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거버넌스”라며 “상속 등 이슈로 의도적으로 낮은 주가를 유지하는 기업에겐 이번 사태가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