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팬데믹 정상화 속 이례적인 금리인상기, 당초 우려보단 국내경제 충격 적어”
글로벌 공급 차질 및 팬데믹 이후 경제 정상화와 동반된 금리인상기 ‘가계 초과저축, 원활한 노동 수급’ 등 당초 우려보단 금리인상 충격 감내 한은 “거시경제의 안정과 함께 성장잠재력 확충 위한 노력 강화할 시점”
국내외 금리인상 이후 국내경제는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 경기 침체 충격을 어느 정도 감내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간 충격을 완충하는 데 도움이 됐던 요인들이 오히려 경제활력과 생산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향후 거시정책은 적절한 인플레이션 리스크 관리와 함께 수출 부진 및 내수 경기 침체 확산을 막기 위한 정책 지원 등의 유동성 공급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례적인 금리 인상기 속 국내경제 비관론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국의 이번 금리인상기는 팬데믹으로부터 경제가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진행됐다. 특히 과거와 다르게 부문 간 경기 흐름이 차별화되는 특징을 보였다. 수요가 재화에서 서비스로 옮겨가면서 제조업은 빠르게 둔화하고, 서비스업은 강하게 반등했다. 이와 더불어 글로벌 긴축국면이 동반되면서 금리에 민감한 IT·제조업 경기는 더욱 위축된 반면, 서비스업은 상대적으로 금리에 덜 민감함에 따라 엇갈린 경기 흐름이 보다 뚜렷해졌다.
이번 금리인상은 상품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이 급등한 상황에서도 이뤄졌다.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망 차질, 러-우 전쟁, 친환경 에너지전환 등 공급 문제가 각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이후 공급차질 완화, 주요국 동반긴축의 영향으로 상품물가는 빠르게 둔화됐지만, 서비스가격은 임금 상승과 느린 가격조정 등으로 더디게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국내경제에 대한 비관적인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외 기준금리 인상이 지속되는 지금, 경기 하방압력이 여전히 높고 대외여건도 우호적이지 않다는 주장이다. 물가 역시 소비자물가를 중심으로 물가 안정 추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소비·고용이 양호한 만큼 근원물가가 한동안 높은 수준을 이어갈 것이란 우려도 존재한다.
급격한 금리인상에도 소비 및 고용 양호한 국내경제
그러나 현재 경제상황을 놓고 판단해 본다면 국내경제를 그리 비관적으로만 평가하긴 어렵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기업, 가계 등 국내 경제주체들이 통화긴축의 영향을 당초 우려보다는 감내해 온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기업에서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팬데믹 기간에 축적한 높은 이익이 금리인상 충격을 완충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가계 또한 고용안정, 초과저축을 바탕으로 금리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을 일정 부분 감내할 수 있었다”면서 “금융기관도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은 점 등이 금리상승 충격을 어느 정도 완화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높은 금리 수준에도 소비와 고용이 비교적 양호하다는 점에서 체감경기가 나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국내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국내 노동시장에서는 이번 금리인상기에 서비스업종을 중심으로 여성·고령층 고용이 기조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났다”면서 “그 덕분에 우리나라는 팬데믹 이후 주요 선진국과 같은 노동공급 부족을 크게 겪지 않을 수 있었고, 지속적인 서비스업 생산확대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국내경제의 원활한 노동 수급은 향후 물가 안정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공급망 차질 문제가 해소된 상황에서 현재 미국 등 주요국에선 끈질긴 인플레이션 현상의 주범으로 서비스 업종의 임금압력을 꼽고 있다.
지속되는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 속 ‘경기둔화 압력’ 확대
다만 향후 국내경제는 IT·중국 수출 회복 지연 등에 따른 하방 압력이 높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수출과 내수 중심으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내 A 기업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하반기로 갈수록 IT 및 수출경기가 점차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그 회복속도는 당초 예상보다 완만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에 더해 향후에도 미국 통화 긴축 지속 등 대외 불확실성이 높을 것으로 보여, 정부가 직접 수출 경기 회복 등을 위한 유동성 공급에 나서야 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금융안정 리스크가 높은 점도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팬데믹 이후 주택가격에 대한 고평가 인식이 커진 상황에서 자금조달 비용이 상승하기 시작하자 부동산 경기가 빠르게 하강했다. 그 결과 주택 미분양이 급증한 데다 부동산 PF에 대한 노출이 큰 증권사 등 일부 비은행금융기관의 리스크가 부각되는 만큼, 향후 주택가격 지속 하락한다면 PF 대출에 대한 리스크가 금융시장 전체로 확산될 소지가 있다.
한편 그간 충격을 완충하는 데 도움이 됐던 요인들이 오히려 경제 활력과 생산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팬데믹 충격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로 IT·제조업 부문에서 핵심 연령층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고, 이것이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와 맞물리면서 저생산성 부문의 고용이 크게 늘어났다”면서 “이 외에도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될 경우 경제 전반의 생산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