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파적 어조 누그러뜨린 ECB, “‘금리 동결’ 가능성 열려 있다”

Fed 따라 금리 인상한 ECB, 추가 인상은 “확정된 바 없음” 기술적 침체기 접어든 유로존, 하지만 SVB 뱅크런 사태 목도한 ECB, 지준금 적용금리 ‘기습 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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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사진=잉글랜드은행

유럽중앙은행(ECB)이 정책금리를 25bp 인상했다. 또 미래 금리 결정의 가이던스를 수정해 금리 동결 등 여러 선택지도 열어뒀다.

향후 물가 및 고용 지표에서 유로존 서비스 물가 압력 및 노동시장 압력이 점차 낮아지고 있음이 확인된 만큼 ECB 입장에서 더 이상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단행할 이유는 없어졌다. ECB 총재의 발언에서 ‘톤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 또한 주요한 이슈 중 하나다.

ECB, 정책금리 25bp 인상

ECB는 27일(현지 시각) 발표한 성명에서 주요 정책금리인 예금 금리를 3.50%에서 3.7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2000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ECB는 레피(Refi) 금리는 4%에서 4.25%로 인상하고 한계 대출금리도 4.25%에서 4.5%로 올렸다. 이로써 ECB는 2022년 7월 이후 이달까지 총 9번 연속 금리를 인상한 셈이 됐다. 이 기간 동안 인상된 금리 폭은 425bp에 달한다. 유로 창설 이후 가장 빠른 속도의 금리 인상이다.

앞서 유로존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 오르고 근원 CPI도 5.5% 상승한 바 있다.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중앙은행의 목표치인 2%를 웃도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선 추가 긴축이 예상됐는데, 이번 ECB의 금리 인상으로 시장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를 25bp 추가 인상한 것 또한 ECB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 기준금리 인상으로 연준의 기준금리는 5.25%~5.50%까지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금리 인상과 관련해 ECB는 “인플레이션이 계속 하락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에 따라 위원회는 인플레이션을 적시에 2%의 중기 목표치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회의 이후 인플레이션이 올해 남은 기간 추가로 하락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졌으나, 장기적으로는 목표치를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며 “인플레이션을 2%의 중기 목표로 적시에 돌아갈 수 있도록 금리를 필요한 만큼 제약적으로 보장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곧 금리 추가 인상이 확정된 바는 없음을 시사한 것이다. ECB는 “금리 인상 제약의 적절한 수준과 기간은 지표 의존적 접근법을 통해 결정해 나갈 것”이라며 “금리 결정은 경제 및 금융 지표, 기저 인플레이션 역학, 통화정책 전달 강도 등에 비춰 인플레이션 전망을 평가한 뒤 이를 바탕으로 이뤄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플레이션 여전히 높은 수준, 유로존 경기 상황도 나빠”

ECB가 연속적인 금리 인상을 단행한 건, 인플레이션이 둔화세에 접어들긴 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유로존의 경기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ECB의 금리 인상 속도 자체는 서서히 둔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 라가르드 ECB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향후 기준금리 인상 여부와 관련해 “인상과 동결 가능성이 모두 있다”며 “우리는 열린 마음”이라고 언급했다. 기준금리 인상과 관련한 수위를 다소 낮춘 셈이다.

ECB가 기준금리 동결을 검토하기 시작한 건 유로존 경제 상황 때문이다. 유로존은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 모두 -0.1%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기술적 침체에 접어들었다. 기업 체감경기를 보여주는 구매관리자지수(PMI)도 이달 48.9로 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데다 기준선인 50도 밑돌았다. 과도한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위축이 가시화되면서 ECB내 중도파 또한 비둘기파 쪽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pexels

SVB 뱅크런 사태에 위기감↑, ECB의 선택은

이런 가운데 ECB는 실리콘밸리은행(SVB)과 크레딧스위스(CS) 붕괴 사태를 계기로 은행의 유동성·자본 규제 강화에 나섰다. 앞서 지난 3월 미국 내 자산 기준 16위 규모(총자산 2,090억 달러, 총예금은 1,754억 달러)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돈줄 역할을 하던 SVB가 뱅크런 발생 약 2일 만에 파산절차에 돌입한 바 있다. 해당 사건으로 은행 유동성 저하에 따라 뱅크런 사태가 발생할 경우 경제 시스템 자체가 마비되기까지 채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공공연히 밝혀졌다.

ECB가 필요지준에 대한 이자율을 0%로 기습 변경한 건 SVB 사태에 따른 경각심 증대에 따른 결과인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 중앙은행의 정책비용 절감을 통해 통화정책 효율화를 꾀한 셈인데, 전문가들 사이에선 금액을 고려했을 때 시장 충격은 미미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의무 지준 규모가 1,650억 유로(약 239조원) 규모인 가운데 이에 지급되는 이자율이 예금금리(3.5%)에서 0%로 낮아졌다는 건 곧 민간에 지불하는 비용이 연 60억 유로(약 8조6,956억원) 축소됨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60억 유로 규모가 유로존 통화정책 및 금융 여건에 충격을 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다만 향후 관련 조치가 확대될 경우엔 시장 영향이 재평가될 가능성은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향후 물가 및 고용 지표에서 유로존 서비스 물가 압력 및 노동시장 압력은 점차 낮아지고 있음이 확인됐다. ECB 입장에서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할 이유가 사실상 없어진 것이다. 경기에 대한 하방 압력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 또한 추가 인상 여력을 제약하는 요인이다. 지난 6월까지 매파적 어조를 이어가던 ECB의 태도는 이날을 기점으로 다소 달라졌다. 특히 라가르드 총재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동결 가능성이 있음이 언급된 만큼, ECB가 Fed의 사례를 따라갈 가능성도 생겼다. 9월 추가 금리 인상이 저성장 장기화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ECB 차원에서도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9월 금리 동결도 가능성이 낮지는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