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에선 아직 신중한 ‘상온상압 초전도체’, 시장에선 ‘묻지마’ 투자

꿈의 물질 개발 소식에 초전도체 관련주 뭉칫돈 쏠려 과학계, “충분한 설명 더 필요하다” 시장 참여자들의 ‘묻지마’ 투자 문화 그대로 보여준 것 아니냐는 분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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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K99의 마이스너 현상/출처=SBS 뉴스 유튜브 채널

‘상온상압’ 초전도체 NK99를 합성했다고 발표한 논문 소식에 투자자들의 뭉칫돈이 초전도체 관련주에 대거 쏠렸다. 그러나 NK99에 대한 과학계의 입장은 신중한 것으로 분석된다. 해당 연구가 표준적인 물리학 이론에 벗어나는 데다, 연구 과정이 아직 일반에 상세하게 밝혀지진 않은 만큼, 일상생활에 활용 가능한 초전도체가 개발됐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을 가지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의 이같은 ‘묻지마’ 투자에 대해선 주의를 당부한다. 제대로 된 사실 확인과 투자 근거를 기반으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꿈의 물질인 ‘상온상압’ 초전도체 개발 소식에 관련주 급등

지난달 25일 종가 기준 3,270원에 머물렀던 서남의 주가는 불과 거래일 기준 11일 만에 340.36%나 폭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남이 급등세를 이어가자 지난 2일 한국거래소(KTX)는 서남을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한 바 있으나, 주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지난 4일 하루 동안 매매거래를 정지시켰다. 한국거래소는 투자경고종목이 지정일 이후 특정일의 주가가 지정일 전일 및 직전 매매거래일의 주가보다 높으며, 특정일의 2일간 주가상승률이 40% 이상이면 해당 종목을 하루 간 매매거래를 정지할 수 있다. 지나친 변동성으로 인해 시장 질서가 흐트러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한국거래소의 이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서남을 포함한 초전도체 관련주들은 여전히 급등하는 모양새다. 8일 오전 10시 30분 기준 현재 서남 전일 대비 1,810원(14.35%) 오른 1만4,4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서남뿐만 아니라 신성델타테크(29.84%), 파워로직스(22.41%), 모비스(12.95%), 덕성(17.9%), 대창(10%), 국일신동(15.04%), LS전선아시아(0.81%) 등 대부분 초전도체 관련주들이 덩달아 오름세다.

그러나 초전도체 관련주로 묶인 회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개발해 특허를 낸 기술과 이번 초전도체 논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지난 4일 서남은 홈페이지를 통해 “최근 주식시장에서 저희 회사가 관련주로 여겨져 집중되고 있는 상황은 조금 우려스럽다”며 “당사와 현재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연구기관과는 어떠한 연구협력이나 사업 교류가 없다”며 입장을 표명했다.

‘상온상압’ 초전도체의 구현 가능성

이같은 급등세는 지난 7월 22일 퀀텀에너지연구소가 이른바 ‘상온상압’ 조건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합성물질 LK99에 대해 쓴 두 개의 논문이 논문 사이트 ‘아카이브’에 올라오면서 투자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간 과학계에선 일상생활에서 활용가능한 상온상압 초전도 물질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만약 상온과 상압에서 초전도체 개발이 성공할 경우, 전력을 공급할 때 에너지 손실 없이 전류를 송·수신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자기부상열차, 실생활 양자노트북 등 산업계 혁신이 일어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물질이 초전도체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 번째로 해당 물질의 전류 저항이 정확히 ‘0’이 돼야 한다. 두 번째로는 해당 물질은 마이스너 효과를 가져야 한다. 마이스너 효과란 초전도체가 자석이 만들어 내는 자기장을 완벽하게 상쇄하는 일종의 ‘반자성 효과’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초전도체 물질을 자석 가까이 두게 되면 자석에서부터 멀어지지도 않고 가까워지지 않는 ‘공중부양’의 상태가 되게 된다.

이번 초전도체를 합성했다고 발표한 논문의 저자인 김현탁 미국 윌리엄앤드메리대 교수는 LK99이 위 두 가지 속성을 모두 충족하는 것을 실험을 통해 확인한 것은 물론, 이 모든 과정이 상온상압 과정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다만 마이스너 효과의 경우 LK99이 완벽하게 자석과 수평을 이루는 등 자기장을 완벽하게 상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실험 데이터상 여타 물질 대비 압도적으로 높은 마이스너 효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을 미뤄볼 때 LK99를 초전도체로 볼 수밖에 없다고도 덧붙였다.

BCS 이론에 따르면, 초전도 물질을 개발하기 위해선 매우 낮은 온도 환경이 요구된다. 실제 초전도 현상을 처음 발견한 멜린 온네스는 액화 헬륨에 수은을 넣고, 영하 268.8℃ 환경에서 수은의 전기저항이 0으로 수렴하는 현상을 발견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게 됐고, 현대에 접어들어 초전도를 활용해 효율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개발된 ‘초전도 케이블’의 경우에도 거대한 규모의 냉각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 예컨대 LK99처럼 일상생활에서 초전도체를 구현하기 위해선 매우 가벼운 원자로 물질을 구성해야 한다. 이에 대부분 연구에선 우주에서 가장 가벼운 물질인 수소를 활용하고 있는데, 이때 수소를 고체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선 엄청난 압력이 필요하게 된다. 심지어 이를 재현한 ‘상온고압’ 관련 최근 연구 논문들도 철회가 되고 있기 때문에 현시점 인류의 지식으로는 ‘극저온’ 초전도체가 한계치라는 인식이 과학계에선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번 상온상압 초전도체 LK99의 경우, 위 논리의 BCS 이론을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는 게 과학자들의 입장이다. 아울러 현재까지 동일 조건 속에서 논문을 교차 검증한 사례가 없어 객관적인 신뢰도를 담보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김범준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는 “어떻게 LK99이 표준적인 물리학 이론을 벗어나 초전도체 물질로 구현된 건지는 과학계에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사진=GettyImages

초전도체 개발은 과학계의 몫, 투자자들의 불안한 투자 심리 개선이 우선돼야

김현탁 교수는 “연구자가 논문 게재 사이트에 논문을 게재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학술 활동을 한 것일 뿐, 다른 의도를 가진 게 없으며 아무런 회사와도 이해관계가 없다”며 “과학자가 도전하는 일에 대해선 정부가 오히려 지원을 해줘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과학계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연구의 성패와는 상관 없이 인류 지식을 진일보할 수 있는 연구에 대해선 오히려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시장의 관점에서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근거 없이 주식 종목이 오르는 현상에 대해선 투자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앞서 살펴봤듯 이번 초전도체 관련 종목으로 주가 상승의 수혜를 입고 있는 대부분 회사가 사실상 상온상압 NK99와는 무관한 데다, 현재까지의 정보만 미뤄볼 때 해당 연구의 상업적 활용 가능성은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초전도체 관련주 급등 현상은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한 투자 심리를 여실히 보여줬다. 단순히 남의 말을 듣고 투자의 세계에 뛰어들게 되면 결국 판단에 있어 이성적인 계산이 흔들리게 되고, 잘못된 의사 결정을 하게 된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듯, 이제는 올바른 경제 공부를 통해 시장에 대한 철학을 굳건하게 세우는 게 우선돼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