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은행서 500억 규모 횡령사고, 잇단 금융사고에 은행권 신뢰 ‘추락’

거듭된 횡령사고로 추락한 신뢰, ‘미봉책’ 이어 온 은행권의 ‘원죄’ 우리은행 사고와 ‘닮은꼴’인 경남은행 사고, “바뀐 게 없다” 금감원 TF도 꾸렸지만, ‘한계’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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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BNK경남은행

BNK 경남은행에서 500억원이 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최근 은행권에서 ‘줄줄이’ 횡령사고가 발생하면서 고객 사이의 은행권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모양새다. 고객 불안이 높아지며 관리·감독이 미비한 지방은행에 돈을 맡기지 않겠단 이들도 적지 않다. 미봉책에 미봉책을 거듭해 온 은행권의 ‘원죄’다.

경남은행 직원 A씨, PF 대출 상환 유용 등으로 500억원 횡령

경남은행은 지난달 20일 투자금융부 직원 A씨에 대한 자체 감사에서 PF 대출 상환자금 77억9,000만원 횡령을 인지하고 금감원에 보고했다. 이후 금감원은 이튿날 긴급 현장검사에 착수했고, 그 결과 해당 직원의 횡령·유용사고 혐의 484억원을 추가로 확인했다. 경남은행의 고소장과 예금보험공사의 수사 의뢰를 접수한 검찰도 강제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는 2일 오전 피의자인 A씨의 주거지와 사무실, 서울 소재 경남은행 투자금융부 사무실 등 10여 곳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관련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지난 2007년부터 경남은행에서 15년간 부동산 PF 업무를 담당해 온 직원으로, 수차례에 걸쳐 회사의 PF 대출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16~2017년 A씨는 부실화된 PF 대출에서 수시 상환된 대출 원리금을 가족 명의 계좌에 이체하는 방식으로 77억9,000만원을 가로챘고,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는 PF 시행사의 자금인출 요청서를 위조해 경남은행이 취급하던 PF 대출 자금을 가족 법인 회사로 이체하는 방식을 통해 총 362억원을 횡령했다. 지난해 5월엔 경남은행이 취급한 PF 대출 상환자금 158억원을 상환 처리하지 않고 A씨가 담당하던 다른 PF 대출 상환에 유용했다.

은행권의 거듭된 횡령사고, ‘안일한 대처’가 원인

이번 경남은행 횡령 사건을 두고 과거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700억원 규모의 횡령사고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실제 두 사건은 모두 특정인이 한 부서에서 10년 넘게 근무하며 돈을 빼돌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은행에서 횡령사고를 일으킨 B씨는 약 10년간 기업개선부에서 근무했고, A씨는 15년 넘게 경남은행에서 일했다. 가족 명의가 동원되고 문서를 위조한 부분도 닮은꼴이다. A씨는 가족 명의 계좌로 대출 자금을 이체하거나 대출서류를 위조했고, B씨도 동생 명의 법인으로 이체하는 방식을 사용하거나 허위공문 등을 통해 횡령사고를 일으켰다.

경남은행과 우리은행 모두 특정부서 장기 근무자가 순환인사 원칙에서 배제되고 고위험업무에 대한 직무 분리가 진행되는 않은 데서 문제가 발생했다. 또 거액의 입출금 시 중요사항 점검이 진행되지 않는 등 기본적이 내부통제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초적인 안전 대책 괄시가 은행을 넘어 고객들에까지 피해를 끼친 셈이다.

은행권 횡령 사고는 올해 상반기에만 총 9건 발생했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양정숙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발생한 국내 은행 횡령 사고는 총 9건, 액수는 16억1,000만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금융감독원의 ‘업권별, 유형별 금전 사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 8개 은행(신한, KB국민, 하나, 우리, 기업, NH농협, 산업, SC제일)에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6년 동안 연평균 18.6건의 횡령유용 사고가 발생했다. 은행권의 안일한 대처가 횡령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다.

이준수 금융감독원 은행·중소금융 담당 부원장이 2022년 7월 26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에서 우리은행 횡령사고 감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사진=금융감독원

경남은행 횡령사고, 이번이 처음 아냐

경남은행의 횡령사고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경남은행은 지난 2010년 무려 4,000억원이 넘는 금융비리 사상 최대 규모의 횡령사고를 겪은 바 있다. 특히 당시 사건에 부장 등 은행 내부 직원뿐만 아니라 전문 브로커들과 인수·합병 전문 변호사, 사학연금관리공단 및 건설근로자공제회 관계자들까지 줄줄이 동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건 관계자들은 은행의 보증 증명서와 인감도장, 인감증명서 등을 모두 위조했으나 경남은행 측은 이조차도 눈치채지 못했다. 허술한 관리·감독이 화를 부른 것이다.

지난 2014년에도 경남은행은 부실한 관리로 한 차례 물의를 빚었다. 당시 경남은행 창원 시내 모 지점에 근무하던 여직원 C씨는 은행에 보관돼 있던 시재금(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 가운데 16억원을 횡령했다 발각됐다. C씨가 입사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액을 횡령했다는 점에서 다양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으나, 결국 경남은행 측은 구체적인 자체감사 내용을 밝히지 않아 고객 불안만 증대시켰다.

‘실수’도 한두 번에서 그치지 않고 수차례 이어지면 ‘미필적 고의’가 된다. 경남은행의 거듭된 관리·감독 부실에 은행권 자체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이어지는 횡령사고에도 미봉책을 내놓는 데 그친 결과다. 지난해 6월 금융감독원은 은행권 신뢰 회복을 위해 저축은행 업계와 함께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내부통제 강화 방안을 모색했으나, 은행권 전반에 걸친 통제 강화는 어렵다는 측면에서 한계가 명확했다. 잇단 횡령사고에 대한 실질적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