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살 아파트’ 우려 속에 ‘후분양’ 관심↑, 건설사들도 ‘울며 겨자 먹기’
아파트 ‘후분양’ 늘었지만, 건설사 입장에선 ‘시한폭탄’ 주거 부족 해소에 도움 준 선분양, 최근엔 ‘각종 폐해’↑ 규제 아래 대세 된 후분양, “규제 개선되면 선분양으로 전환될 수도”
후분양 단지가 전국에서 잇따라 공급되고 있다. 아파트를 60% 넘게 지은 시점에서 분양을 진행하는 식이다. 후분양 단지는 선분양에 비해 공사비 인상에 따른 입주 우려가 거의 없고, 실물 확인 뒤 구매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 위험 부담이 줄어든다. 인천 검단신도시 지하 주차장 붕괴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아파트의 ‘철근 누락’ 사태에 따른 부실시공 리스크도 적다는 평가다.
‘후분양’ 흐름 시작됐다, 후분양 단지 ‘우후죽순’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주택 수요자는 구축 아파트보단 신축 아파트 분양을 선호하지만, 신축 아파트 분양의 벽은 높다. 이미 주택을 보유한 수요자들은 청약 당첨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고, 신축 아파트는 보통 선분양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당첨 후에도 대개 26개월에서 30개월가량의 공사 기간을 거쳐야만 한다. 이에 최근엔 새 아파트지만 즉시 입주가 가능한 ‘후분양’ 아파트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후분양은 주택공정률이 60% 이상 진행된 후 분양을 받는 방식으로 선분양 대비 안정성이 높다. 공사 중단 등 문제 발생 시 상대적으로 실수요자의 피해가 적기 때문이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후분양 단지는 손에 꼽을 만큼이나 드물었지만, 최근엔 우후죽순 쏟아지는 모양새다. 업계에 따르면 오는 18일부터 현대건설이 광주 북구에 조성하는 ‘힐스테이트 신용 더 리버’가 후분양 방식으로 분양되고, 내달 이후에도 대우건설이 동작구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771가구)가 후분양 방식으로 분양된다. 이외 서초구 신반포15차를 재건축해 조성되는 ‘래미안 원펜타스’(641가구), 내년 준공 예정인 광명 ‘베르몬트로 광명’(3,344가구), 화성 ‘동탄 레이크파크 자연&e편한세상’(1,227가구) 등도 후분양으로 공급된다.
시대적 배경 아래 정착한 선분양, 이전부터 논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선분양제가 주요 흐름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건 시대적인 영향이 컸다. 지난 70~80년대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질 좋은 주택을 대량 공급하기 위해 당시 정부는 선분양 제도를 도입했다. 선분양 제도는 강남 개발 붐과 더불어 우리나라 주거 부족을 해소하는 건 물론이고 아파트가 질 좋은 주거 형태라는 인식을 주는 데 한몫했다. 강남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빠르게 건설될 수 있었던 것도 선분양 제도 덕분이다.
그러나 당시에도 완성된 주택이 아닌 모델하우스를 보고 사전 계약을 하다 보니 실제 완공된 주택과의 괴리가 다수 발생했다. 특히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을 땐 주택 사업자가 부도나거나 계획보다 공정률이 뒤떨어져 공사가 중단되는 등 계약자의 피해가 발생했다. IMF 당시엔 건설사가 줄도산하면서 계약자들이 큰 피해를 본 경우도 있었다. 최근엔 부실시공 및 아파트 하자 문제 등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후분양 제도에 대한 논의가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건설회사를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일면서 후분양제도는 표류에 표류를 거듭했다. 건설회사는 일반적으로 선분양 제도를 선호한다. 수분양자로부터 받은 계약금과 중도금을 사업비로 활용할 수 있어 초기 자금 조달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은 “후분양제가 퍼질 경우 중소 건설사는 물론 대형 건설사들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자금력 부족은 중소 건설사의 연쇄 붕괴로 발전할 우려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건설사 입장에선 후분양 제도가 ‘폭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 1월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후분양 단지인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마포더클래시’는 일반분양 53가구 가운데 절반이 넘는 27가구(51%)가 계약에 실패해 무순위 청약에 나섰다. 마포더클래시는 청약 경쟁률 두 자릿수를 기록했지만, 물량 절반 이상이 미계약된 것이다. 또 다른 후분양 단지인 경기 안양의 ‘평촌센텀퍼스트’ 역시 대거 미달이 발생했다. 부산 수영구 남천동 ‘남천자이’ 아파트도 실제 일반분양 계약률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고금리 환경에서 자금 마련이 어려워진 데다 내년 금리가 지금보다 낮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면서 수요자들이 의사 결정을 미룬 탓으로 풀이된다.
후분양 카드 직접 꺼내 든 건설사들
그런데 최근엔 건설사의 거센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후분양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집값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갖가지 부동산 정책을 내놓으면서 재건축·재개발에 가혹할 정도의 규제를 했던 것이 건설사들의 후분양 참여를 불러왔다. 특히 분양가 규제의 영향력이 지대했다. 분양가 상한제의 여파를 조금이라도 피해 갈 수 있는 후분양 카드가 재건축단지 조합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에 건설사들은 부담을 지고서라도 ‘표심’을 잡기 위해 후분양제 카드를 알아서 빼 들었다.
현행 법제도가 지속되는 한 후분양이라 하더라도 분양가 상한제는 계속 적용된다. 다만 매년 공시지가가 오르고 정부의 현실화율 제고 움직임을 고려하면 분양 시기를 늦출수록 분양가를 높게 받을 수 있다. 실제 반포3주구에서 삼성물산은 내년 착공을 기준으로 선분양 시 분양가는 3.3㎡당 평균 4,000만원 초반에 그치는 반면 2024년 준공 후 분양 시 3.3㎡당 최고 5,100만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 조합원의 분양수익 총액이 선분양보다 약 2,500억원 늘어나고, 결국 조합원들의 부담금은 크게 낮아진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후분양 대세론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는 의견이 나온다. 후분양은 각종 규제 아래 일시적으로 급부상한 형태이기 때문에 건설사가 후분양 카드를 계속 가져갈지엔 의문이 남는다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후분양 제도에 대한 단계적 추진을 예고하고 나섰지만, 추후 규제가 개선되고 건설사 입장에서 후분양 카드를 꺼낼 이유가 없어지면 다시금 선분양 주류 흐름으로 돌아설 수 있다. 특히 건설사는 청약 미달 ‘폭탄’을 떠안으면서까지 후분양 제도를 고집할 이유가 없는 만큼, 후분양 대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로 남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