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금리·高물가·高환율에 꼼짝 못하는 우리 경제,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호황’ 조짐 보여
대내외적 불확실성으로 휘청거리는 韓 경제 반면 日 경제는 최근 들어 반등 조짐 韓이 ‘잃어버린 10년’ 수순 밟을 것이란 우려도
한국 경제가 3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 역풍을 맞아 휘청거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실 이는 지난 하반기부터 이어져 왔던 흐름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25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에 경제 성장률을 역전당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놨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으로 1990년대부터 경제 침체가 지속된 바 있으나, 최근 대내외적 여건이 개선되면서 경제 회복의 불씨가 지펴진 모습이다.
3고 악재로 인해 ‘상저하고’가 아닌 ‘상저하저’ 예상
2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올해 5월부터 다시 상승세로 접어들었다. 특히 지난 3월 연 3.2%이었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달 연 3.8%를 돌파했고, 이날 연 4% 선까지 파죽지세로 기세를 이어간 모습이다. 이는 통화 긴축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미 연준(Fed)이 올 초 연 4.25~4.5%였던 기준금리를 5.25~5.5%까지 인상한 데다, 이번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고금리 기조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한국 채권시장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올 들어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다시 가파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처럼 금리가 오르게 되면 가계 소비 위축으로 내수 경기 마저 둔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올해 1분기에 전 분기 대비 0.5% 증가했던 민간소비는 가계부채 오름세와 함께 올 2분기 0.1%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와 관련해 한은은 15일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가계부채가 거시경제와 금융안정을 저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최근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치솟고 있는 것도 올 하반기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 요인으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20일 한은이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8월 소비자물가는 유가 상승의 여파로 전년 동기 대비 3.4% 오른 120.16을 기록하며 전월(2.3%)보다 상승 폭을 키웠다. 여기에 에너지 수입액 증가로 무역수지도 악화될 전망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석 달 연속 흑자였던 무역수지는 이달 1~20일까지 4억8,900만 달러(약 6,637억원) 적자를 나타냈다.
여기에 올 하반기에는 환율마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400원 선을 넘나들었던 원·달러 환율은 현재 1,300원대 초반을 맴돌고 있으나, 중국 부동산 위기와 미국의 고강도 통화긴축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원화 약세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한·미 기준금리 차이는 2%포인트다. 그런데 만약 미 연준이 연내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올려 한·미 금리차가 사상 최대인 2.25%포인트까지 오른다면 고환율은 물론 외국인 자금 이탈 현상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3고 악재가 지속될 경우 올해 한국 경제가 ‘상저하고’가 아닌 ‘상저하저’가 될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일 보고서에서 “하반기 경기 회복 가능성이 약해지면 L자형 장기 침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해외 투자은행(IB)들도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1%대 초반으로 낮게 예상하는 분위기다. JP모건은 올해 한국 성장률을 1.1%, 내년 1.8%로, UBS는 올해 1.1%, 내년 1.7%로 예측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조짐 보였던 ‘L자형 장기 침체’
우리 경제의 ‘L자형 장기 침체’ 우려는 사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져 왔던 흐름이다. 이는 당시 미국이 연이어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자 금리차를 좁히기 위해 우리 금융당국도 금리 인상을 이어간 데 따른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도 가계·기업의 이자 부담이 증폭됐고, 달러 강세가 나타나면서 수출에 타격을 받아 경제 성장에 본격적으로 제동이 걸렸다는 설명이다.
실제 지난해 말 국내 상장기업 17곳, 즉 전체의 약 1%에 해당하는 기업들의 재무 건전성이 1년 사이에 크게 나빠진 점에 주목, 금융 업계에선 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는 경고를 보낸 바 있다. 해당 기업들은 수익구조가 불안정했을 뿐만 아니라 매출액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운전자산의 비중이 높아졌고, EBITDA(감가상각전영업이익)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부실 기업으로는 코스피 상장사 가운데에선 자동차·오토바이 부품 업체인 핸즈 코퍼레이션, 철강업체인 동양철관, 대상홀딩스 등 세 곳이었다. 이어 코스닥 상장사 중에선 베셀과 제닉, 다원시스, 씨앤지하이테크, 에스엠코어, 그리티, 티로보틱스, 보성파워텍, 그리티, 엠플러스, 비츠로셀, 한국팩키지, 코이즈, 세종메디칼, 포스코ICT 등으로 총 17개 기업이 꼽혔다.
이에 당시 양기태 숭실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교수는 “미 연준이 통화 긴축을 강하게 이어 나가면서 미국의 M2 통화량 지표의 증가율이 가파르게 하락하고, 주요 장단기 금리차 역전 폭도 높아졌다”며 “이에 국내 달러 유동성도 급격히 감소하면서 우리나라의 수출 기반 기업 일부도 수익지표가 악화된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과 대조적으로 경제 역동성 되살아나는 일본
이같은 한국의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은 다시금 경제 역동성이 되살아나는 조짐이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1.5%로 예측한 반면, 일본은 직전 전망보다 0.5%포인트 상승한 1.8%로 예상했다. 예측이 현실화되면 25년 만에 일본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역전하는 셈이다.
특히 지난 30년간 제자리에 멈춰있던 임금이 다시 반등 조짐을 보이면서,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일본이 디플레이션을 탈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지난 7월 일본의 평균 임금 인상률은 3.58%로 지난해 동기 대비 1.51%포인트 상승했다. 평균 인상률이 3%를 넘은 건 1994년 이후 약 30년 만에 처음이다. 여기에 인재 확보를 위해 스톡옵션·종업원지주제를 통해 업무 성과를 주식으로 나눠주는 기업도 최근 5년 사이 10배로 크게 늘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일본 정부의 급진적인 노동 정책이 거론된다. 그간 일본은 저출산·고령화로 인력 부족이 극심했던 만큼 임금이 30년째 같은 수준으로 머무르는 등 상황 반전이 어렵다는 평가가 전문가들 사이에선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 정부가 여성들이 아이를 편하게 키울 수 있고 일하기 좋은 환경으로 제도를 개선한 데 이어 해외 인재 유치에도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고용률과 임금 상승률을 크게 끌어올려 경제 침체의 돌파구를 찾았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미국이 일본의 반도체 산업 부활을 밀어주고 있는 것도 일본 경제 반등론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1980년대 미국은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저가 덤핑 전략으로 자국 반도체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며 보복관세를 부과했고, 일본 반도체 수출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플라자 합의까지 맺는 등 사실상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촉발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기술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동맹국인 일본과 첨단기술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일본의 반도체 부흥을 이끌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이와 관련해 한 경제 전문가는 “중국과의 갈등 속에서 승기를 거머쥐고자 미국은 동맹국 지지가 필요해졌고, 이같은 상황을 활용해 자국 반도체 산업 부활을 노리는 일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며 “이같은 지정학적 흐름 속에서 한국 반도체 기업의 입지가 타격받을 우려도 높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