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전산업생산지수 상승했지만, “경기 회복 조짐으로 보긴 아직 이르다”
국내 산업, 전반적으로 생산량 증가 특히 제조업 반도체 부문 생산량 크게 올라 다만 자력 아닌 국제 유가 영향이라는 분석 지배적
올 하반기 우리 경기 회복세가 기대에 못 미치면서 일각에선 ‘상저하저’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속속 나오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월 기준으로 국내 산업 전반적으로 생산 지표가 크게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우리 경제가 당초 정부가 예상했던 것처럼 ‘상저하고’할 것이란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고 있는 분위기다.
다만 전문가들은 아직 기뻐하기엔 이르다고 지적한다. 국내 산업 전반의 생산량이 증가한 건 국제 유가 상승이라는 외부적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지, 자력으로 경기 회복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국내 업종 전반적으로 전월 대비 생산 늘어
4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8월 전산업생산지수는 112.1(2020년=100)로 전월 대비 2.2% 증가했다. 전산업생산지수는 2020년 2월(2.3%) 이후 30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오른 수치다.
광공업 생산은 광업(6.2%), 제조업(5.6%), 전기·가스업(1.8%) 부문 모두 늘었다. 광공업 생산 증가율은 2020년 6월(6.4%) 이후 38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다만 제조업 재고율은 124.6%로 전월보다 0.3%포인트 상승한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반도체 부문은 생산이 13.4% 증가했고, 출하는 3.5% 증가했다”며 “생산 증가 폭보다 출하 증가 폭이 작았기 때문에 재고가 증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건설기성 생산은 토목 및 건축 부문에서 공사 실적이 각각 13.8%, 1.8%씩 늘면서 전월 대비 4.4% 증가했다. 반면 건설수주는 주택 등 건축(-59.9%), 기계설치 등 토목(-55%)에서 모두 크게 떨어지면서 전년 동기 대비 59% 감소했다.
한편 현재 국내 경기를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8월 기준 99.4로 전월 대비 0.2 포인트 하락했다. 아울러 향후 경기를 예측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9.3으로 전월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반도체 부문이 전산업생산지수 증가폭 대부분 견인
이런 가운데 소비지표만큼은 주춤한 모습이다. 소매판매는 승용차를 비롯한 내구재와 의류 등 준내구재 소비 감소 영향으로 전달 대비 0.3% 줄면서 두 달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소비가 두 달 연속 감소한 건 작년 4~7월 이후 1년여만이다.
한편 전산업생산지수 증가 폭의 대부분은 반도체 생산이 견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도체 생산은 전월보다 13.4%, 전년 동월 대비 8.3% 올랐다. 반도체 생산이 전년 동월 대비 증가한 것은 13개월 만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발표된 8월 산업활동동향 지표에 대해 “광공업 중심으로 산업생산이 상당폭 개선됨에 따라 9월 수출실적과 3분기 제조업·순수출도 회복되고 있는 모습”이라며 “전산업 생산을 구성하는 모든 부문에서 17개월 만에 생산이 동반 증가한 것도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국제 유가 상승이 산업의 생산 증가 이끌었다
이처럼 8월 전산업생산지수가 전월 대비 양호한 흐름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도 국제 유가 영향이 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원유 가격이 오름에 따라 가격을 뒤따라 올릴 수 있게 되면서 생산자 입장에서 생산량 제고 유인이 커진 것이지, 자력으로 경기 부양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보긴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 수입 원유 가격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의 6월 평균 가격은 70달러대 중반이었으나, 7월부터 오름세를 보이면서 8월에는 80달러대 중반을 유지했다. 이같은 유가 상승에 힘입어 8월 생산자물가지수 또한 전월 대비 7.3% 상승해 2018년 8월(8%) 이후 최고치를 달성했다.
문제는 국제유가의 상승 흐름이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는 점이다. 크리스티얀 말렉 JP모건 분석가는 “미 연준(Fed)이 고금리 정책을 기존 시장 컨센서스보다 길게 유지하면서 국제유가는 더욱 상승 압력을 받을 것”이라며 “2024년엔 배럴 당 90~110달러, 2025년엔 100~120달러, 2026년엔 15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한국전력은 국제유가 상승에 유난히 더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원가는 국제 유가 상승에 가장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 때문이다. 통상 국제유가는 3개월 내지 6개월의 시차를 두고 국내 전력도매가격(SMP) 흐름에 영향을 준다. 그런데 전력을 판매하는 가격이자 서민 경제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는 전기요금을 한전이 빠르게 조정하긴 어려운 만큼, 난방을 위한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겨울철에 한전의 영업손실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해 전력도매가격이 전기요금보다 오른 ‘역마진’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년 4월 총선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만큼 현 정부가 전기요금을 인상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도 힘이 크게 실리고 있는 실정이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해 전력도매가격 예측치를 상향했고, 반면 전기요금의 추가적인 인상은 현실적으로 내년 총선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에 따라 한전은 올해 4분기 2조원대의 영업손실을 볼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