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해외 송금’, 5대 시중은행 등 무더기 중징계 처분
우리은행 영업정지 6개월·과징금 3억원 부과 해외로 빠져나간 자금 규모 16조원에 육박 대부분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와 관련돼 있어
16조원 규모의 ‘이상 외화송금’ 사태가 일어난 은행과 선물사가 영업정지와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5대 은행에 부과된 과징금 총액만 8억7,000만원 수준이다. 이들 대부분은 국내와 해외 가상자산 시세 차익을 노린 ‘김치 프리미엄’ 범죄를 방치하거나 이에 연루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상 외화송금’ 관련 금융사, 영업정지 등 ‘철퇴’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정례회의를 열고 5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을 포함한 금융권의 제재를 결정했다. 은행들은 대부분 3개월 이하 영업정지와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가장 높은 수준의 제재를 받은 우리은행은 3개 지점에 대해 일부 영업정지 6개월과 과징금 3억1,000만원을 부과받았다. 신한은행은 1개 지점의 일부 영업정지 2.6개월과 과징금 1억8,000만원, 하나은행은 1개 지점의 일부 영업정지 2.6개월과 과징금 3,000만원이 결정됐다.
NH농협은행은 1개 지점의 일부 영업정지 2.6개월과 과징금 2,000만원, KB국민은행은 3억3,000만원의 과징금이 내려졌다. 이 밖에도 SC제일은행은 과징금 2억3,000만원을, 기업은행과 광주은행에는 각각 5,000만원과 100만원의 과징금이 적용됐다. 위반 금액이 가장 컸던 NH선물의 경우 본점 외국환업무에 대해 5.2개월의 영업정지가 내려졌다. NH선물에서 발생한 이상 해외송금 규모는 50억4,000만 달러(약 6조6,024억원)로 가장 많았다.
은행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자(CEO)들은 이번 징계 심의 대상에서 일단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외국환거래법 위반에 대한 제재 이외에 자금세탁 관련 법 위반이나 개선 사항이 있는지 추가로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김치 프리미엄’ 노린 이상 해외송금 적발액 16조원
이번 사태가 처음 불거진 건 지난해 6월 우리은행이 자체 검사를 통해 이상 외화송금 거래를 발견하면서부터다. 이에 금감원은 전 은행권에 대한 현장 검사를 착수했다. 이어 자체 점검으로 의심사례가 나온 10개 은행 등 12곳을 대상으로 검사를 확대했고 지난해 9월과 10월에는 NH선물도 들여다봤다. 그 결과 122억6,000만 달러(83개 업체·약 16조원) 규모의 이상 외화송금 거래와 금융회사의 외국환거래법 등 법규 위반 혐의를 확인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경우 영업점 18곳이 이상 외화 송금 거래에 연루됐다. 이들 지점은 수입거래대금 지급을 요청받아 처리하는 과정에서 증빙 서류를 제출받지 않거나 보관이 부실했다. 또 제3자로의 송금 요청에 대해 한국은행 총재 신고 대상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은행 일부 지점의 경우 금감원 검사자료 제출 요구에 사후 수령 또는 보완된 서류를 제출하면서 서류의 출력일자, 워터마크 등을 삭제하는 등 허위 자료를 제출해 적발되기도 했다. 신한은행도 본점 등 21개 지점이 이상 외화 송금에 연루됐고 △증빙서류 확인 △제3자 송금 시 신고 대상 확인 의무를 위반했다. 하나은행 역시 증빙서류 확인의무를 위반해 송금 업무를 취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대부분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은행을 거쳐 송금됐는데 연루된 업체들은 정상적인 3자 무역거래인 것처럼 꾸며, 신용장 없이 해외 계좌로 사전송금하는 방식을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노린 것은 국내외 가상자산 시세 차이,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이었다. 이에 금감원은 지난 6월 이상 외화송금 재발 방지를 위한 은행권 ‘3선 방어’ 내부통제 방안을 마련했다. 기업들의 외환거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추가 절차를 신설하기보다 은행권 내부통제 체계 마련을 중심으로 추진했다는 게 금감원 설명이다. 외화송금 시 사전확인 항목을 표준화하고 거래 후엔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사후점검 체계까지 마련돼 지난 7월부터 은행에서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 금융사가 받은 처분은 과징금과 일부 지점에 대한 외국환업무 영업정지에 불과하다. 분류상으로는 중징계에 해당하지만 앞서 고위 임원에 대한 처분까지 거론됐던 것을 고려하면 솜방망이 수준이다. 사태가 불거졌을 당시 금융사들은 “규정된 절차대로 외화송금을 한 것으로, 불법에 대한 인지나 개입은 없었다”는 입장이었다. 전문가들은 금감원의 제재심 과정에서 기획재정부가 은행에 일부 유리한 유권해석을 내놓은 것이 이번 징계 수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