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 ‘철강·알루미늄’ 관세 협정 타결 불발, 국내 철강 업계는 ‘한숨’
바이든 대통령, 유럽산 철강 관세유예 2년 연장키로 내년 美 대선이 최대 변수, ‘트럼프’ 재집권 시 협정 타결 불발 가능성↑ 국내 철강 업계 타격 불가피, 가격 경쟁력 뒤처지고 수출 물량도 지속 줄어들 듯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올해 철강관세 협정 타결이 불발되면서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미국이 EU의 관세할당제도의 완전 철폐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데다 제3국에 대한 관세 적용 방식을 두고도 의견이 엇갈린 영향이다. 양측은 올해 연말 종료 예정이던 한시적 무관세 조처를 2025년 초까지 상호 연장하기로 합의했지만, 내년 미국과 EU 모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내년에도 협상이 수월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美·EU, 2025년까지 ‘관세 부과 유예 연장’ 발표
28일(현지 시간)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유럽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지정된 쿼터에 대해 관세 유예 기한을 2025년 12월 31일까지 2년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현재 진행 중인 논의와 공동 조치를 고려할 때 EU에서 수입되는 철강 및 알루미늄 물량이 미국 안보를 저해할 위험이 없다”고 전했다. 앞서 EU 집행위원회도 지난 19일 EU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산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관세 재적용 시점을 2025년 3월 31일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과 유럽의 철강관세 충돌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시작됐다. 그해 3월 트럼프 전 대통령은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각각 25%, 1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EU는 강력히 반발하며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와 버번 위스키, 오렌지 주스 등 미국산 수입품에 보복 관세로 맞대응했다.
이후 2021년 들어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양측의 관계가 다시 호전되기 시작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은 유지하되 관세할당제도를 통해 제한된 유럽산 철강·알루미늄 물량에 대해서는 무관세 수입을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고, EU도 보복관세 적용을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아울러 양측은 중국 등 제3국산 철강에 관세를 부과해 철강산업의 탈탄소화를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글로벌 철강 및 알루미늄 협정(GSA)’ 체결 논의도 시작했다.
그러나 양측은 그간 이러한 협의 과정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EU의 관세할당제도 완전 철폐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제3국에 대한 관세 적용 방식을 두고도 의견이 엇갈렸다. 결국 지난 10월 미-EU 정상회담에서도 합의가 무산되자 일단 응급조처 격으로 무관세를 연장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 양측은 협상 진전에 주력할 예정이지만, 내년 6월 유럽의회 선거와 11월 미국 대선이 예정된 만큼 교착 장기화가 예상된다. 무엇보다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라는 점에서 미 대선 결과가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수출 경쟁력 지속 약화’ 등 국내 철강 업계에 미치는 영향
EU산 철강과 알루미늄의 무관세가 연장됨에 따라 국내 철강 업계의 대미 수출도 지속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시장에 무관세로 들어가는 EU산 철강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크게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관세 혜택을 받기 위해선 미국 현지 생산량을 늘리면 되지만 포스코와 세아제강을 제외하면 미국에 생산공장을 둔 업체가 극히 드물다.
게다가 국내 철강 업계는 이미 2018년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에 따른 쿼터가 지정된 상태다. 국내 철강 기업들은 2015~2017년 평균 대미 철강 수출량 383만 톤의 80%인 263만 톤의 쿼터를 받았고, 2018년 이후 매년 배정된 물량만큼만 수출 중이다. EU와 일본 등이 추가 협상을 통해 쿼터량 초과 물량에 대해서만 25% 관세를 무는 조건으로 수출량을 늘려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업계는 내년 미국 대선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성공이야말로 국내 철강 업계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현재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10% 일괄 관세를 부과하는 고강도 무역정책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보편적 관세’로 알려진 이 무역정책은 미국으로 수입되는 대부분의 외국 생산품에 관세 10%를 추가한다. 예컨대 현재 5%의 관세가 붙는 수입산 제품에 보편적 기본 관세 정책이 시행될 경우 관세율이 15%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철강 업계 관계자는 “쿼터를 기존 70%에서 확대하거나 EU와 같은 방식의 합의를 통해 미국 수출 물량을 늘리는 게 유일한 대안”이라며 “이러한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선 우선 무역확장법 적용에 상대적으로 완화적인 바이든 행정부가 지속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