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투자 말라” 골드만삭스의 경고장, 탈중국 가속화에 일본·인도·베트남 반사이익
골드만삭스 “중국에 투자해선 안 된다” 바이든 정부도 중국 내 첨단산업 투자 제한 중국 빈자리 채우는 일본·인도·베트남 펀드
중국 주식 시장이 저렴해 보인다고 해서 중국에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골드만삭스의 경고가 나왔다. 샤민 모사바-라흐마니 골드만삭스 자산관리부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5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고객들이 우리에게 비슷한 질문을 하고 있지만 우리의 견해는 중국에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성장률 정보 ‘불확실’ , 외국인 투자 감소폭도 점차 확대
근거로는 향후 10년간 지속적인 경제 둔화가 예상된다는 점을 들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이 현재까지의 성장의 주요 축들인 부동산 시장, 사회 기반 시설, 그리고 수출 부문에서 약화돼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정책 결정에 대한 명확성 부족, 부실한 경제 데이터 등이 중국 투자에 대한 우려를 더한다고 덧붙였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지난 1년 동안 정보 보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통계국에서는 일부 실업 수치 공시를 중단했다. 이번 월요일 베이징에서는 중국 총리가 수십년 동안 해온 연례 언론 브리핑을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라흐마니 CIO는 “전반적인 정책 방향이 장기적으로 어떻게 될지 확실치 않다”며 “이러한 정책 불확실성은 일반적으로 주식 시장에 상한선을 그린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이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2023년 성장률 5% 정보 또한 실제 성장률보다 높여 발표한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고객들이 중국으로 자금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실제 최근 들어 외국인투자자들의 ‘탈중국’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국가와의 공급망 갈등을 비롯한 4대 악재가 더해지며 대(對)중국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가 코로나19 확산 초반 이후 최저 수준으로 급락했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누적 기준 대중국 FDI 규모는 1조403억 위안(약 189조 418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 줄었다. 전월인 10월까지 감소폭(-9.4%)보다도 악화됐다.
하반기 들어서도 경제 회복이 더디게 진행되자 중국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리창 국무원 총리 등 지도부가 나서 대외 개방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시 주석이 지난해 말 3년 만에 상하이를 방문해 “외자 기업의 권익을 보호하겠다”고중국 성장동력 약화 및 강달러 맞물린 영향 강조했지만 오히려 외국인 투자 감소 폭은 커지는 추세다.
중국 성장동력 약화 및 강달러 맞물린 영향
원인으로는 △미국 등 서방국가의 디리스킹 등 공급망 갈등 △중국의 성장 동력 약화 △시진핑 장기 집권에 따른 불안 증폭 △달러 가치 상승 등이 꼽힌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중국 내 첨단산업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미 월가의 대형 사모펀드가 매년 1,000억 달러를 투자하던 데서 올해는 11월까지 43억5,000만 달러로 쪼그라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렇다 보니 일본식 저성장을 우려할 정도로 중국의 성장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간첩법 개정안 등으로 투자는커녕 짐을 싸는 외국 기업도 늘고 있다.
외국인 투자 위축으로 가뜩이나 경기 부양이 지연되고 있는 중국은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는 분위기다. 중국 제일재경은 24일 “주요 국영은행이 지난주 예금금리를 인하함에 따라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인하 여력이 생겼다”며 내년 1분기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낮출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만 세 차례의 금리 인하를 시사하는 등 글로벌 중앙은행의 내년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며 중국도 금리 인하에 따른 위험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중국 인민은행이 내년 1월과 4월 각각 15bp(1bp=0.01%포인트)의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 공급을 위해 지급준비율도 25bp 인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 대신 日·印·越로 쏠리는 뭉칫돈
중국 펀드가 줄어든 자리는 일본·인도·베트남 펀드가 채우고 있다. 이들 세 나라는 미·중 갈등으로 인한 공급망 재편의 수혜국으로, 연합인포맥스 신규설정 펀드에 따르면 중국에 투자하는 국내 주식형 신규설정 펀드 개수는 2020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반면 일본·인도·베트남에 투자하는 신규설정 펀드 개수는 지난해 급증했다. 비슷한 수준이던 2020년(12개)·2021년(10개)을 거쳐 2022년(0개)에는 신규설정 펀드가 없었는데, 2023년에 20개로 훌쩍 늘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네 나라 중 인도 펀드만 5개 신규 설정되며 자산운용업계의 탈중국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중국 경제가 암울한 이유 중 하나는 자유 진영의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이다. 미·중 갈등 속 중국 내 사업의 불확실성이 증대하자 해외 기업이 중국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외환관리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가 330억 달러(약 44조원)로 전년(1천802억 달러·약 240조원) 대비 82% 감소했다. 이같은 추세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 상무부에 의하면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외국인 직접투자 감소세는 올해 1월까지 8개월째 이어졌다.
반면 미국이 공급망 동맹국으로 낙점한 일본에는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이어오던 대만 반도체 기업이자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TSMC가 일본 구마모토현에 86억 달러(약 11조5천억원)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신설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 마이크론은 일본 히로시마 공장에 5천억 엔(약 4조4천300억원)을 투자해 인공지능(AI)용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다.
서방의 견제를 받는 중국 대신 ‘넥스트 차이나’로 떠오른 인도와 베트남으로도 외국인 자금이 쏟아지고 있다. 인도로 향한 FDI 규모는 2015년 556억 달러에서 2022년 710억 달러로 빠르게 늘어났다. 인구구조가 피라미드형인 인도의 저렴하고 역동적인 노동력은 중국을 대체할 ‘세계의 공장’으로 꼽히는 이유다. 애플·마이크론 등 글로벌 기업은 이미 조 단위 인도 투자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현대자동차도 인도법인을 현지 증시에 상장해 투자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로 했다.
베트남도 글로벌 기업의 러브콜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베트남에 거점을 마련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베트남을 탈중국 공급망 국가 중 하나로 육성하려는 미국 정부와 손발을 맞추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이 무기 삼는 희토류를 베트남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서방 입장에선 중요한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