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전면 폐지하겠다”
서울 영등포구서 21번째 민생토론회 개최 무리한 현실화율로 각종 세금 부담 늘어나 하반기부터 10년간 10조 투입하는 뉴빌 사업 추진도
부동산 공시가격을 2030년까지 시세의 90%까지 올리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이 내년부터 전면폐지된다. 정부는 무리한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 인상으로 보유세 등 각종 부동산 세금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이를 낮추는 방향으로 공시제도 개편을 추진할 계획이다.
무모한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폐지 예고
윤석열 대통령은 19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공장에서 ‘도시혁신으로 만드는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주제로 민생토론회를 개최하고 “정부는 원도심 재생, 거주비용 절감, 품격있는 문화 융성을 통해 수도 서울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켜 명실상부한 글로벌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원도심을 대개조하는 ‘뉴:빌리지(뉴:빌) 사업’을 새롭게 추진하겠다”며 “기존 예산을 효율적으로 재편해 추가 재정부담 없이 향후 10년간 1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전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전면 폐지도 선언했다 뉴:빌 사업은 아파트와 달리 재개발이 어려운 노후 단독주택과 빌라촌을 타운하우스와 현대적 빌라로 재정비하는 사업이다. 하반기 시범사업 공모를 시작해 2025년부터 본격 추진한다.
이어 윤 대통령은 “소규모 재건축은 중앙정부가 서울시나 다른 지방정부와 협력해 주민들이 마음먹으면 빨리 (정비 사업을)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며 “소규모 재생을 하면 특성을 살려 다양한 형태로 할 수 있도록 규제도 좀 많이 풀어달라”고 관계 당국에 주문했다. 아울러 “징벌적 과세부터 더 확실하게 잡겠다”면서 “정부는 더 이상 국민들께서 마음 졸이는 일이 없도록 무모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전면 폐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도입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은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을 매년 단계적으로 높여 최장 2035년까지 90%로 끌어올리는 것이 골자다. 부동산 시장 왜곡을 막겠다는 취지지만, 국민의 재산세와 거주비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와 함께 윤 대통령은 “건설경기 침체로 민간 역할이 부진한 만큼 공공 부문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며 △신축 중소형 주택 10만호를 정부가 매입해 저렴한 전‧월세 공급 △장기임대주택 활성화를 위한 임대료 규제 완화 및 세제 지원 확대 △청년‧서민층 주거비 지원 강화 △문화예술 인프라 재정비 등을 언급했다.
땜질식 처방 아닌 구조적 문제 개선해야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두고 그간 일각에서는 땜질식 처방이 아닌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기존의 현실화 계획은 매년 세율조정 등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구조적으로 세부담이 가중되는 구조인 만큼, 현실화 계획의 문제 및 추진 여건상 한계 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송경호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재정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은 90% 시세반영률 목표의 문제점으로 가파른 시세반영률 인상 속도로 주택가격 하락기에 공시가격과 시세·실거래가 역전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점을 짚었다. 예를 들어 2021년 60%이었던 현실화율이 이듬해인 2022년 63%으로 오른 상황에서 주택가격이 0~4.76% 하락하는 경우 시세는 하락하지만 공시가격은 상승한다.
부동산 공시가격 급등에 따라 세부담이 급격하게 커진 부작용도 발생했다.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계획 시행 전인 2011~2020년 연평균 공시가격 변동률은 공동주택 3.02%, 단독주택 4.39% 토지 4.66%였다. 그러나 현실화계획이 시행된 2021~2022년 연평균 변동률은 공동주택 18.12%, 단독주택 7.07%, 토지 10.26%로 크게 차이났다. 특히 공동주택의 현변동률은 3.02%에서 18.12%까지 뛰어 올랐다.
이에 따라 주택분 종부세는 2018년 4천억원, 2019년 1조원, 2020년 1조5천억원에서 2021년 4조4천억원으로 크게 늘었으며, 2022년 4조1천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주택분 재산세도 2018년 4조5천억원에서 2019년 5조1천억원, 2020년 5조8천억원, 2021년 6조3천억원, 지난해 6조7천억원으로 매년 증가했다.
이에 대해 송 부연구위원은 기존의 현실화 계획은 매년 세율조정 등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구조적으로 세부담이 가중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존 현실화 계획을 따를 경우, 세제개편 없이는 현실화 계획만으로 주택분 재산세 부담이 약 34%가량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송 부연구위원은 현행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체계 내에서 목표 현실화율 하향조정, 목표 달성 기간 연장, 가격대별 차등 계획 폐지 등 부분적 개선만으로는 현실화 계획의 구조적 문제 및 추진여건상 한계 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공시제도는 60여 개 행정목적으로 활용돼 사회적 영향이 광범위한 만큼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국민의 수용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공시가격 현실화 필요성 및 타당성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거래가와 공시가격
시세는 실거래가를 토대로 추정하지만, 일반적으로 시세의 변동성은 실거래가의 경우보다 작다. 시세는 부동산 시장 전체의 흐름을 전반적으로 보여주지만, 실거래가처럼 특정 시점의 집값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공시가격은 시세를 기준으로 추정되나, 사람들은 대체로 시세가 아닌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현재 집값을 인식한다. 따라서 시세와 실거래가의 차이가 크고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높을수록 사람들은 공시가격 평가에 대한 형평성 문제를 더 심각하게 느끼게 된다.
이런 현상은 주택가격 하락 시기에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실제로 공시가격 현실화율 90% 목표 달성 시 주택가격 하락 시기에 공시가의 실거래가 역전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공시가격 현실화율 조정 및 정확한 시세 추정은 주택가격 평가에 대한 근본적인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더욱이 공시가격은 주택 보유세와 건강보험료를 산정하는 기준이 되는 만큼, 이 가격이 집값을 웃돌게 되면 조세 행정에 대한 불신과 조세 저항도 커지게 된다.
공시가격이 집값과 역전되는 현상을 막으려면 집값 등락률이 커질수록 공시가격과 집값 차이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고가주택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높이겠다는 목표 아래 공시가격을 끌어올리는 데에만 주력해 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주택에 대해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일정하게 적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주택가격에 상관없이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일정하도록 평가하고, 유사한 주택가격에 대해서는 공시가격 현실화율 표준편차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공시가격 현실화율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