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배임·횡령 등 연이은 대형 악재에 ‘내부통제’ 강화
국민銀, 대출심사 과정에서 소득자료 부풀려 과다대출
지난해 경남銀에서 사상 최대 3,000억 횡령 사건 발생
금융위 등, 'ELS 사태 자율조정' 앞두고 내부통제 강조
KB국민은행에서 대출 심사 과정에서 임대업이자상환비율(RTI)과 개인 소득을 실제보다 높게 산정해 적정 한도보다 과다한 대출을 내준 ‘업무상 배임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 지난해부터 은행권에서 대규모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올해는 은행권 최대 현안인 ‘홍콩 ELS 손실’과 관련한 자율조정을 앞두고 있어 금융당국와 은행권은 내부통제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국민銀, 지난 3월에 이어 100억원대 금융사고 2건 적발
9일 KB국민은행은 홈페이지를 통해 “자체 조사를 통해 두 건의 업무상 배임 금융사고 발생 사실을 확인했다”고 공시했다. 한 건은 대구의 A지점에서 발생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2020년 8월 말부터 지난 3월 8일까지 취급된 주택담보대출 등 총 111억3,800만원의 가계대출에서 대출신청인의 소득이 과다 산정되는 등의 문제가 발견됐다. 채무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담보가 있더라도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대출 한도가 늘어나는데 특정 직원이 자의적으로 소득을 적용해 과다 대출과 배임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또 다른 건은 경기 용인시 B지점에서 발생했다. 국민은행 조사 결과 화성 동탄신도시의 상가 분양자들에게 272억원의 담보대출을 내줄 때 ‘임대업 이자상환비율(RTI)’을 실제보다 높게 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RTI는 부동산임대 목적의 개인사업자에 대해 신규 대출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주거용 물건의 경우 RTI가 1.25배 이상, 비주거용 물건은 1.5배 이상이어야 한다. 즉 임대 소득이 임대업 관련 대출 이자의 1.25배~1.5배에 이르지 않으면 대출이 어렵다는 의미다. 하지만 B지점은 관련 증빙서류의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데 소홀하거나 차이를 묵인해 과다 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은 이달 초 이러한 사실을 금융감독원에 보고했고 현재 금감원은 현장 검사를 진행 중이다. 국민은행은 “대출을 취급한 직원들은 업무에서 배제된 상태”라며 “다만 이번 사고와 관련된 대출에서 지금까지 연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국민은행은 앞서 지난달 13일에도 안양의 C지점이 지식산업센터 내 상가 분양자들을 대상으로 담보가치를 부풀려 총 104억원의 대출을 내준 배임 금융사고를 공시한 바 있다.
하나·신한銀 이어 국민銀 ‘ELS 사태’ 자율조정 본격 돌입
지난해부터 은행권에서는 대형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에서는 700억원 규모의 대규모 횡령사건이 발생했고, 이후 BNK경남은행에서는 간부급 직원이 15년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상환 자금 3,000억원을 횡령·유용한 사실이 적발됐다. 역대 최대 규모의 금융사고다. 지난해 9월에는 국민은행에서 증권대행 부서 직원이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127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가 발견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징계를 받기도 했다.
지방은행에서도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DGB대구은행에서 직원들이 고객 동의 없이 증권계좌 1,662개를 몰래 개설한 정황이 드러난 데 이어 올해 경남은행에서 지점장이 불법 차명거래로 주식 매매 거래를 하고, 사모펀드를 불완전 판매한 사실이 드러났다.
금융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는 상황에서 올해 은행권에서는 소비자보호, 내부통제 등과 관련해 홍콩 H지수 ELS 사태가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민은행은 오는 15일 홍콩 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배상 고객 전원에게 자율조정 절차를 안내하면서 본격적인 절차에 돌입한다. 안내 대상은 홍콩 H지수 ELS 녹인(Knock-In) 발생 계좌로 △만기상환 계좌 △만기 미도래 계좌 △녹인 발생 전·후로 중도해지 된 계좌를 보유한 고객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손실이 확정된 고객부터 신속히 배상 절차를 진행하겠다”며 “고객 불편 최소화와 투자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실천해 신뢰 회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의 ELS 판매액은 금융권에서 가장 많은 8조1,972억원으로 9,000억원 규모의 배상금을 지급할 것으로 예측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계좌별 만기가 도래해 배상비율이 확정된 고객부터 순차적으로 자율조정을 진행할 예정이다. 배상비율 확정 고객은 계좌 만기 도래 순서에 따라 매주 선정된다. 해당 고객에게는 본부 차원에서 자율조정 절차와 방법을 담은 문자 메시지가 발송되고, 이후 영업점 직원이 개별적으로 유선을 통해 다시 한번 안내할 계획이다.
금융위, ELS 사태 언급하며 ‘책무구조도’ 조기 도입 촉구
앞서 지난 1일 김주헌 금융위원장은 5대 시중은행장과 만난 자리에서 홍콩 H지수 ELS 사태를 언급하며 오는 7월 시행을 앞둔 은행 이사회 ‘책무구조도’의 조기 도입을 촉구한 바 있다. 책무구조도는 은행 등 금융사가 각 이사의 내부통제 관련 책임을 명시하고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업과 해당 임원에게 책임을 묻는 제도로 지난해 12월 금융사의 내부통제 구조 강화를 골자로 하는 ‘금융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금융사의 주요 업무에 대해 최종 책임자를 정해 내부통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수 없도록 하고 개정안 시행 이후부터 금융사 임원들은 본인 소관 업무에 대해 내부통제 관리 의무를 부여받게 된다.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은행권 내부통제가 보다 효과적으로 구동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날 시중은행장들과 만난 김 위원장은 “ELS 사태 당시에 은행별 책무구조도가 제대로 마련됐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지 생각해 봐야한다”며 “책무구조도가 내부통제 문제의 실질적 해결책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해 달라”고 촉구했다.
연말 조직개편·인적쇄신 통해 고객자산 리스크 관리 강화
은행권에서도 대규모 횡령, 불법 차명거래, 증권계좌 부당 개설, 사모펀드 불완전 판매 등 각종 일련의 금융사고들로 인해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내부통제에 주력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내부통제 규제 강화와는 별개로 자체적으로 준법감시인 교체, 조직개편, 시스템 고도화 등을 추진하고 피해자 보상 등 금융사고 발생으로 인한 조치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한 운영체계 마련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은행권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연말 조직개편과 인적 쇄신을 통해 고객자산 리스크 관리 기능 강화에 나선 상태다. 특히 ELS 사태에 이어 지난해 100억원대 금융사고가 발생해 금융당국으로부터 강한 질책을 받은 국민은행은 그 어느 때보다 내부통제 강화에 힘쓰고 있다. 국민은행은 영업점의 준법·내부통제 관리와 디지털 영역의 감사 기능을 강화하고 소비자보호그룹의 역할을 확대해 보이스피싱 등 비대면 금융사고로 인한 고객 피해 발생에도 신속한 관리와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내부통제 자율개선 요구에 따라 지난해 12월 KPMG·김앤장과 함께 상시감사시스템의 내부통제와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의 고도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아울러 임직원의 금융윤리와 자금세탁방지 교육체계를 구축하고 관련 자격증 취득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KB금융도 자회사 리스크 관리 부서 등에 ‘고객자산 위험 관리’ 업무를 명확히 부여하고 내부통제를 담당하는 준법지원부에 ‘소비자보호팀’을 신설해 소비자보호 기능을 강화했다.
신한금융은 리스크 관리 관련한 내규를 개정해 준법감시인의 자격요건을 강화하고 각 영업그룹에도 자체적인 내부통제 기능을 부여해 현장에서부터 더욱 촘촘한 내부통제가 이뤄지도록 했다. BNK금융은 지난달 지주와 은행 직원 정기 인사에서 본부 부서 근무 5년, 동일 영업점 근무 3년 이상 된 장기근무 직원을 거의 예외 없이 전보 조처했다. DGB금융도 지난 연말 임원 인사에서 6년 만에 부사장직을 임명해 위기대응위험 관리 역량을 강화했으며 지난해부터 이사회 산하에 황병우 은행장과 이사들로 구성된 ‘내부통제혁신위원회’를 설치·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