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준 ‘매파 의사록’에 한은 11회 연속 금리 동결, 고금리 장기화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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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FOMC 의사록 공개, '금리 인하 지연' 강력 시사
다수 연준 위원들 '금리 인상 가능성' 주장하기도
美 금리 인하 기대감 후퇴에 한국은행도 금리 동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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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위원들이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하에 예상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최근 몇 달 사이 인플레이션이 물가 안정 목표치에 근접하고 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고 고금리 장기화를 시사한 것이다. 이에 한국은행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고려해 다시 기준금리를 3.50%로 묶고 통화 긴축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미 연준 위원들 “물가 억제 확신 못 해”, 매파 발언

22일(현지시간) 공개된 5월 FOMC(4월 30일~5월 1일) 의사록에 따르면 연준 위원들은 올해 1분기 인플레이션이 강세를 나타내자 통화정책 완화 시점과 관련해 상당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록은 위원들이 인플레이션의 지속성에 관한 불확실성에 주목하며 “최근 지표가 인플레이션이 목표 수준인 2%로 지속적으로 향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했다는 데 동의했다”고 전했다. 위원들은 특히 1분기 실망스러운 물가 지표와 미 경제의 강한 모멘텀을 가리키는 지표에 집중하며 “인플레이션이 2%로 지속적으로 향한다는 더 큰 확신을 얻기까지의 시간이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오래 걸릴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연준 위원들의 우려는 FOMC가 통화정책의 준거로 삼는 개인소비지출(PCE) 상승률이 올해 들어 반등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까지 상승세가 주춤했던 근원 PCE 상승률이 올해 1월 전월 대비 0.5%로 깜짝 반등한 데 이어 2∼3월 들어서도 2개월 연속 0.3% 상승률을 나타내며 고물가 고착화 우려를 키우고 있어서다. 연간 물가 상승률 2% 달성을 위해선 전월 대비 상승률이 평균적으로 0.2%를 넘지 않아야 한다.

이에 다양한(various) 참석 위원이 “최근 몇 달간 인플레이션에 진전이 없었다”며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향해 낮아지지 않을 경우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눈에 띄는 부분은 ‘various’라는 수식어다. various는 연준이 FOMC 의사록에서 참가자의 수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통상적인 양적(quantitative) 표현들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각 사안에 대해 의견이 다른 참가자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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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목표치 2%, 꼭 기다려야 하나

연준은 지금까지 물가가 2%를 향해 지속적으로 떨어진다는 확신이 있어야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이는 물가안정목표제(인플레이션 타기팅·inflation targeting)의 영향이다. 미국 물가는 2022년 전년 동기 대비 9.1%까지 치솟았고 연준은 물가를 2%로 끌어내리기 위해 지난해 7월까지 금리를 11회 인상했다. 그 결과 지난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3.4%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미국 CPI는 지난해 6월 단 한 차례 3%를 기록했을뿐 계속 그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물가안정목표제가 시작된 건 1990년이다. 당시 뉴질랜드 중앙은행이 세계최초로 물가목표제를 실시했고 연준도 이를 모방해 1990년대 중반대 공식적인 선언 없이 도입했다. 한국은행, 유럽중앙은행, 영란은행, 일본은행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치도 2%다. 각국의 물가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2%보다 높으면 통화 긴축을 통해 물가를 끌어내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이후 경제 회복 및 물가의 급격한 상승에 사실상 이마저도 무의미해진 상태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마치 신성불가침과 같은 2%까지 반드시 기다려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 산하 경제분석업체 무디스애널리틱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크 잰디는 “2%는 적절한 수치가 아니다”라며 “2% 목표를 위해 미국 경제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경제 성장 잠재력이 1990년보다 낮은 상황에서 연준이 금리 3%도 묵인하도록 해 침체 발생 시 끌어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가 목표치가 2%일 때 물가 안정이 극대화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IMF(국제통화기금)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올리비에 블랑샤르 MIT(매사추세츠공대) 교수는 물가 안정을 위한 연준의 적정 물가 목표를 2%에서 3%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그룹 수석 경제고문도 블랑샤르 교수와 같은 입장이다.

이들은 2% 목표 도달이 쉽지 않은 현 물가여건을 고려하고 통화정책 운용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선 물가 목표를 상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여전히 물가가 잘 떨어지지 않는 ‘끈적한 인플레이션(sticky inflation)’ 상황에서 2%라는 통화 정책에만 초점을 맞추면 과도한 긴축으로 경제가 짓눌릴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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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도 금리 동결, 관망세 유지

한편 연준의 연내 금리 인하가 불투명해지자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관망세도 유지되고 있다. 23일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 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월 금리를 연 3.25%에서 0.25%p 올린 이후 11차례 연속 동결하며 통화 긴축 기조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이미 한국은 미국보다 기준금리가 2.0%p나 낮은 만큼,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환율의 급상승 우려나 외국인 자금 유출까지 감내해 가며 금리를 내리긴 사실상 어렵다.

또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아직 목표치인 2%까지 충분히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금리를 내리면 인플레이션뿐 아니라 가계부채의 불씨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판단도 이번 결정에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2월(3.1%)과 3월(3.1%) 3%대를 유지하다가 4월(2.9%) 석 달 만에 2%대로 내려왔다. 하지만 과일을 비롯한 농축수산물이 10.6%나 치솟는 등 2%대 안착을 확신할 수 없는 상태다.

최근 환율 흐름 역시 한은이 금리를 섣불리 낮추지 못하는 이유로 지목된다. 시장의 기대와 달리 미국의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이 점차 사라지고 이란·이스라엘 무력 충돌까지 발생하면서 지난달 16일 원·달러 환율은 역사상 네 번째로 1,400원대를 넘으며 강세를 나타냈다. 이후 당국의 구두 개입으로 다소 진정되긴 했으나, 여전히 1,360원대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원화 가치가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할수록 수입 제품의 원화 환산 가격이 높아지는 만큼, 인플레이션 관리가 제1 목표인 한은 입장에서 환율은 통화정책의 주요 고려 사항이다.

시장의 예상을 웃돈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1.3%)도 조기 금리 인하 기대에 악재로 작용했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서라도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1분기 성장률의 경우 수출과 내수가 모두 호조를 보였다. 내수의 성장 기여도는 0.7%포인트, 순수출은 0.6%포인트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한국이 4분기에나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바클레이즈는 지난달 우리나라 금리 인하 예상 시점을 8월에서 10월로 조정했고, JP모건 역시 비슷한 견해를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