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에 생활물가까지 3개월 연속 2%대 상승률, 금리 인하 재촉할까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11개월 만에 가장 낮아 '전반적 둔화 추세'
국제유가 두 달 만에 최고치, 물가 목표 수렴하는지 계속 지켜봐야
금리 인하 마지막 퍼즐 환율도 '지속 불안', 강달러 기조 굳어지나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4%로, 석 달 연속 2%대를 기록했다. 작년 7월(2.4%) 이후 11개월 만에 최저치로, 올해 들어 지난 3월(3.1% 상승) 정점을 찍은 후 2% 중반까지 하락하면서 안정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다만 사과와 배를 중심으로 과일값의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는 데다, 석유류와 외식 등 일부 품목의 물가도 불안한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유가 추이 및 공공요금 인상 여부가 2%대 물가 조기 안착을 결정짓는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 석 달 연속 2%대 기록
2일 통계청이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84(2020년=100)로 작년 같은 달보다 2.4%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 2.8%에서 2∼3월 3%대(3.1%)로 높아진 뒤 지난 4월(2.9%)부터 다시 2%대로 둔화했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 지수들은 일제히 상승 폭이 둔화했다. 우리나라 고유의 근원물가인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0% 오르면서 전월과 동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방식의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2.2% 올랐다. 지난달과 상승 폭이 동일하다.
구입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은 144개 품목을 중심으로 체감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8% 상승했다. 생활물가지수가 2%대까지 하락한 건 지난해 7월(2.0%) 이후 11개월 만이다. ‘밥상 물가’와 직결되는 신선식품지수는 작년 동월 대비 11.7% 오르며, 상승 폭은 9개월째 두 자릿수를 이어갔다. 다만 전월과 비교하면 5.4% 하락했다.
다만 사과(63.1%)와 배(139.6%)를 중심으로 신선과실이 31.3% 상승하면서 5월(39.5%)에 이어 30%대의 급등세를 이어갔다. 작년 작황 부진에 따른 공급부족 현상이 이어진 데 따른 것이다. 특히 배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39.6%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75년 1월 이후로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최근 1년 새 배 값이 두 배 이상 올랐다는 뜻이다. 농산물은 지난달 전체 물가를 0.49%포인트 끌어올렸다.
석유류 물가상승률은 4.3%로, 전월(3.1%)보다 오름세가 확대됐다. 2022년 12월 6.3% 증가한 이후 18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이다. 공미숙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작년에 국제유가가 낮았던 기저효과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달부터 휘발유와 경유 등 유류세 인하율이 축소되면서 석유류 상승 폭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458개 품목 중 휘발유는 전세, 월세, 휴대전화료에 이어 네 번째로 가중치가 크다. 경유는 일곱 번째, 유가에 연동되는 도시가스는 열두 번째다.
물가 상방 리스크 커진 만큼, 금리 인하는 시기상조
소비자물가가 석 달 연속 2%대 상승세를 유지하면서 일각에서는 이르면 오는 8월 기준금리 인하설이 탄력을 받고 있지만, 불확실성이 여전한 만큼 물가가 예상대로 목표로 수렴할지 데이터를 더 지켜볼 것이란 신중론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한국은행도 지난 5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물가 전망의 상방(상승) 리스크가 커진 상황인 만큼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앞서 금통위는 금리 인하 시기에 대해 지난 2월에는 “상반기 인하는 어렵다”, 4월에는 “하반기도 인하를 예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는데, 이번에는 “하반기 인하의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의견을 모은 것이다. 이는 곧 매파적(통화 긴축적) 태도가 더 강화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금통위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하반기 중 금리 인하 기대가 있는데, 물가 상방 압력을 받고 있어서 시점이 불확실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이 총재가 지난 4월 ‘금리 인하 원점 재검토’를 시사한 것에 견줘 보면 비둘기적(통화 완화적) 태도로 변화한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채권애널리스트는 “현재 금리 수준이 제약적(긴축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향후 물가가 한은의 목표 수준에 근접할 경우 금리 정상화(인하) 작업이 필수적이라고 한 이 총재의 발언을 시장이 ‘완화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봤다.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금리 인하가 지연되는 점도 섣불리 긴축 완화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다. 최근 주요국 통화정책이 차별화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지만, 한은이 원-달러 환율 상승과 자본 유출 위험을 감수하고 미국보다 앞서 선제적인 금리 인하에 나서기는 사실상 어렵다. 가장 최근 열린 5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 위원들은 “디스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 둔화)이 종전 예상보다 오래 걸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고금리 장기화를 시사했다.
환율 불안도 금리 인하 기대감 낮춰
최근의 환율 움직임도 금리 인하 시점을 늦추는 요소로 꼽힌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에 육박한 상황에서 금리를 인하할 경우 원화 가치가 불안해지면서 수입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은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탓에 원화 가치가 내려가면 수입 물가가 뛰면서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겨우 2%대까지 끌어내린 물가 상승률을 잡기 더 어려워진다. 수입 물가 상승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한국경제를 더 어렵게 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동안 원화 가치가 1,400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정도다. 그런데 2022년 연준이 금리 인상을 시작한 직후 지금까지도 강달러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연준의 금리 인상 이전 달러당 1,200원대였던 원화 가치는 연준이 금리를 올릴 때마다 떨어지더니 지금까지도 1,300원 후반대에 머물고 있다.
2022년 11월에는 원화 가치가 1,400원까지 내리기도 했고, 올해 4월에는 장중 1,400원이 깨지면서 금융당국이 구두 개입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가 지금보다 더 벌어질 경우 원화 가치는 또다시 1,400원대까지 추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