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건설사 ‘미청구 공사액’ 급증, 미분양·원자재가 상승에 유동성 위기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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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전년 대비 1.6조 늘고, 삼성물산도 0.7조 증가
10년 전에는 중동 덤핑 수주 경쟁 후유증 "지금은 달라"
미청구액 대다수 국내에서 발생, 준공 단계에서 메꿔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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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내 주요 건설사의 미청구 공사액이 조 단위로 늘어났다. 이에 일각에서는 10년 전 중동발 어닝쇼크가 재현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지만, 건설업계는 2020~2022년 급증한 국내 수주 물량이 반영돼 매출이 증가해 과거와는 다르다는 분석이다. 다만 최근 들어 미분양 사태, 원자재 가격 상승이 이어지면서 향후 국내 건설사들의 유동성 위기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발주처에 미청구 공사액 받지 못하면 건설사 ‘손실’로 전환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건설의 지난해 미청구 공사액은 5조3,352억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 3조7,347억원과 비교해 42.9% 증가한 수치다. 삼성물산은 같은 기간 1조1,201억원에서 1조8,443억원, 대우건설은 1조2,053억원에서 1조2,953억원으로 늘었다. 해당 수치는 해외와 국내 건설사업의 미청구금을 모두 합친 규모다.

미청구 공사액이란 건설사가 공사를 하고도 발주처에 청구하지 못한 미수채권으로 업계에서는 ‘잠재 부실’로 본다. 일반적으로 건설사들은 공정 기간이 오래 걸리는 건설업의 특성상 진행 중인 공사의 대금을 공사 진행률을 감안해 회계상 자산이나 수익으로 처리한다. 그런데 발주처가 공사비용으로 인정하지 않아 추산한 액수만큼 대금을 받지 못하거나 지연될 경우 미청구 공사액은 손실로 전환된다.

미청구 공사액은 회수 시점과 액수가 불안정하다는 점에서 규모가 확대될 경우 유동성 악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 후 2010년대 대형 건설사들이 일제히 어닝쇼크를 낸 것도 미청구 공사액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국내 건설사들은 국내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자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에서 해외 플랜트 공사 수주에 올인했는데 이 과정에서 국내 건설사들은 입찰 자격을 수억원씩 낮춘 덤핑 수주로 출혈 경쟁을 벌였다.

결국 해당 건설사업의 준공이 도래한 2013년부터 건설사들은 대규모 적자가 내기 시작했다. 실제 오일머니의 최대 피해자가 된 GS건설은 아랍에미리트 정유공장 확장 공사 등에서 영업손실 5,355억원을 기록했고, 당시 중동 플랜트 사업에서 가장 많은 수주고를 올린 삼성엔지니어링도 사우디 마덴 알루미늄 공장 건설 공사 등에서 2,197억원대 손실을 냈다.

주택 경기 활황기에 매출 증가하면서 미청구 공사액도 늘어

히지만 건설업계에서는 최근의 미청구 공사액의 증가의 성격이 10년 전과는 다르다고 보고 있다. 과거 건설사 어닝쇼크 사태에서는 미청구 공사액 대부분이 중동의 플랜트 공사에서 발생한 데다 입찰 과정에서 건설사 스스로 가격을 낮추다 보니 발주처에 청구할 수 있는 금액도 제한됐지만 지금은 미청구 공사액 상당수가 국내 시장에서 일어나 준공이 되면 메꿔질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준공 후 입주 단계에서 분양자들이 잔금을 치르면 미청구 공사액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1년 새 1조원 넘게 미청구액이 늘어난 현대건설의 경우 하반기 준공 시기가 집중돼 있어 올해를 넘기면 미청구액이 상당 규모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재개발사업 등 공공 공사는 선수금을 받아 공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미청구액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설사 발생하더라도 대부분 원가 인상분을 인정해 준다. 민간 주택사업도 중도금 대출 단계로 넘어가면 도급 사업의 미청구액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여기에 2020~2022년 주택 경기 활황기의 수주 물량이 매출에 반영된 것도 미청구액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수치상으로는 미수금이 대폭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 매출 증가세를 감안하면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다. 미청구 공사액이 가장 큰 현대건설의 매출액 대비 미청구액 비중은 2년 연속 18%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미청구액 비율이 크게 늘었지만 애초에 비중 자체가 10% 미만으로 매우 낮다. 전체적으로도 국내 주요 건설사 대부분이 미청구 공사액의 5%를 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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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경기 침체에 부동산 PF 등 ‘유동성 위기’ 촉발 가능성

일각에서는 건설업계의 유동성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매출액 대비 미청구액 비중이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늘어난 매출만큼 못 받는 돈도 많아지는 구조라 건설사의 현금 여력이 떨어지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최근 주택 경기 악화와 건설업계의 부실채권 확산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주택 경기가 악화하면 발주처가 자금난, 부도 위기에 빠지면서 공사비 회수가 어려워진다. 책임 준공 등의 약정을 맺고 진행된 건설사업의 경우 시공사가 자체 사업으로 떠안는 경우도 있다.

실제 주택 경기 악화에 미분양 주택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14일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7월 미분양 물량 전망 지수는 110.3으로 지난 5월 100에 비해 두 달 새 10.3이나 급상승했다. 5월 전국 미분양 가구는 7만2,129호로 6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정부가 ‘위험치’로 판단한 전국 미분양 주택 수는 6만2,000가구로 이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도 전월 대비 2% 증가한 1만3,230가구로 10개월 연속 증가했다. 지난해 1월과 비교하면 증가율은 70%를 넘어선다. 

원자잿값 상승으로 발주처와 공사비 마찰 빚는 사업장도 적지 않다. 현대건설은 강북 지역 재개발 최대어로 꼽히는 은평구 대조1구역(힐스테이트 메디알레)의 재개발 현장에서 1,800억원 규모의 공사비를 받지 못하면서 올해 1월 1일부로 작업을 중단했다. 대보건설은 세종 공동캠퍼스 공사에서 발주처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공사비 증액을 요청했지만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대보건설은 300억원대 손실을 주장하며 공사 중단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건설사들은 이미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태다. 일례로 대구 지역 중견건설업체 HS화성은 공사대금 회수에 차질을 빚은 데다 부동산 PF(Projet financing) 우발 채무 등이 겹치면서 유동성 유출을 겪었다. 신세계건설은 공사원가 상승, 저조한 분양 실적, PF 우발 채무 리스크 확대 등으로 손실이 발생하면서 신용등급이 A2에서 A2-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외에 단기간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을 보유한 대형 건설사들도 급증한 재무 부담에 자산을 매각하는 등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