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벤처 불황에 봄바람 불어넣는 세컨더리 시장, ‘돈맥경화’ 해소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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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더리 투자, 기존 VC가 보유한 자산 사들여 기업 지분 확보하는 방식
초기 투자자에겐 엑시트 기회 주고 스타트업엔 막힌 돈줄 뚫어주는 역할
세컨더리 시장 규모 커지며 기관 투자자들 관심도 집중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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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tchBook


벤처캐피탈(VC) 업계 불황이 이어지면서 벤처기업 지분에 대한 세컨더리(secondary, 2차거래) 시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세컨더리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대규모 펀드가 속속 조성되는가 하면 사모주식 시장 분위기도 달라지는 모양새다.

세쿼이아 등 대형 VC도 ‘세컨더리 펀드’ 본격 참전

세컨더리 투자펀드는 기존 VC 등이 보유한 기업 지분을 인수하는 펀드다. 기존 투자자는 자신의 지분을 다른 투자자에게 넘겨 수익을 내고, 신규 투자자는 기존 투자자의 지분을 넘겨받아 기업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VC나 엔젤투자자가 펀드를 조성해 직접 기업에 투자하는 프라이머리(primary) 펀드와 달리 세컨더리는 남이 이미 상당 부분 가꿔놓은 나무를 사서 키우는 셈이라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더 빠른 경향이 있다.

세컨더리는 유동성이 급격히 줄어든 벤처투자 시장에서 그나마 자금 흐름에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로 주목받았다. 한국 국회미래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벤처·창업 활성화를 위한 입법 및 정책 방향’ 보고서에서 세컨더리 펀드에 대해 “초기 투자자들에게 투자 회수 옵션을 제공함으로써 스타트업에 안정적으로 자본을 제공할 수 있고, 벤처투자 생태계의 선순환에 기여하는 측면이 크다”며 활성화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VC 중 하나인 세쿼이아캐피탈(Sequoia Capital, 이하 세쿼이아)이 핀테크 기업 스트라이프(Stripe) 주식 8억6,100만 달러(약 1조2,000억원) 규모를 매입하기로 결정한 것도 일종의 세컨더리 투자다. 세쿼이아는 기존의 VC 펀드 구조에서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세쿼이아는 이번 투자를 진행하며 스트라이프의 기업 가치를 기존 평가액 500억 달러(약 69조원)를 훌쩍 웃도는 700억 달러(약 96조원)로 매겼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만큼 이번 세컨더리 투자에서 큰 가능성을 봤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해당 사례를 비롯해 전체적으로 세컨더리 시장에선 ‘가격 후려치기’ 역시 자제하는 분위기다.

글로벌 투자 전문 연구기관 피치북(PitchBook)과 미국벤처투자협회(NVCA)가 세컨더리 시장 전용 플랫폼 잔바토(Zanbato)를 인용해 공동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분기 대비 스타트업 기업가치평가 할인율 중간값은 46% 수준이었지만, 올해 2분기엔 이 수치가 31%로 떨어졌다. VC 업계 침체가 가속화한 지난 2022년엔 벤처 기업 지분을 팔려는 투자자가 몰리면서 주가가 폭락했고 같은 해 연말엔 기존 평가액에서 80% 깎인 값에 거래된 경우도 있었다. 이는 그나마 약간의 투자금이라도 회수한 사례다. 대부분의 경우엔 거래가 거의 성사되지 않았다. 매각(셀러) 측은 기업가치가 높았던 시절의 가치 평가액에 매달렸고, 잠재적 원매자(바이어)들은 넘쳐나는 매물 속에서 더 매력적인 옵션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세컨더리 거래들이 얼어붙었던 경기에 봄바람을 일으키면서 창업자들과 직원들, 초기 투자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매도 호가와 매수 호가 사이 간극이 줄면서 실제 거래량도 늘고 있다. 아크라티 요하리(Akrati Johari) 잔바토 최고성장책임자(CGO)는 “지난 3~4개월 새 거래량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LP 소유 VC 지분 직접 매입하는 사례도 증가

대규모 투자펀드들 역시 세컨더리 시작에 주목하고 있다. VC가 보유한 기업자산을 사들이는 것 외에도 출자자(LP)가 소유한 VC 지분 자체를 매입하는 펀드들이 특히 눈에 띈다. 일례로 미국의 벤처투자회사 인더스트리벤처스(Industry Ventures)는 지난해 9월 10번째 세컨더리 펀드 모금을 마감했는데, 이 펀드엔 14억5,000만 달러(약 2조73억원)가 몰렸다. 지난 7월 진행한 하이브리드 펀드엔 9억 달러(약 1조2,500억원)가 모였다. 인더스트리벤처스는 이들 금액의 20%를 벤처 펀드의 LP 지분을 사는 데 쓰기로 했다. 이와 더불어 인더스트리벤처스는 세컨더리 시장에서의 투자를 전년 대비 두 배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글로벌 투자전문 그룹 스텝스톤그룹(StepStone Group) 역시 지난 6월 33억 달러(약 4조6,000억원) 규모의 VC 세컨더리 펀드를 마감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셀러들 역시 눈을 낮추기 시작하면서 그간 얼어붙었던 벤처투자 시장엔 본격적으로 온기가 돌고 있다. 요하리 CGO는 지난 2021~2022년 자금 조달에 성공했던 기업들이 최근 시장에 복귀해 새로운 돈줄을 찾기 시작하면서 세컨더리 시장에서의 매매가격들이 속속 결정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런 시장에서 투자자들의 눈길을 끄는 건 비단 스트라이프처럼 상장 직전인 기업들만이 아니다. 세컨더리 시장의 셀러 상당수는 만기일이 지난 펀드를 끌어안고 있는 VC들이다. 조 스코르지(Joe Schorge) 아이소머캐피탈(Isomer Capital) 매니징파트너 역시 지난 6월 만기 펀드에 대한 세컨더리 거래를 마친 이들 중 하나다. 그는 “성과가 좋은 상품이지만 13년이나 묵은 상태로, 원래는 10년 만기 펀드였다”고 매수 상품에 대해 설명했다. 실제로 피치북-NVCA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VC 업계에서 창출된 엑시트 가치는 490억 달러(약 68조원) 수준으로, 2022년과 비슷하지만 2019~2021년 사이 기업공개(IPO)와 인수를 통해 형성된 유동성을 감안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다. 스타트업들의 엑시트 통로가 막히면서 벤처 펀드들 역시 상당수 자금이 말라붙은 채 고전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아이소머캐피탈은 새로운 전략을 통해 공략에 나섰다. 앞서 아이소머캐피탈은 1억2,800만 달러(약 1,780억원) 규모의 세컨더리 펀드 상품을 내놨는데, VC펀드 지분 매입과 동시에 사모신용공여 시장 등 다른 마켓에 집중하고픈 자산가들의 벤처 지분을 직접 매입하는 전략도 활발히 구사했다. 자산가들 입장에선 애물단지를 처분할 기회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스코르지 매니징파트너는 “자산가들은 ‘투자금을 돌려받기까지 오래 기다렸고 다른 기업에 투자하고 싶다’는 등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고 말했다. 

VC 세컨더리 시장이 한층 성숙해지면서 LP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한스 스윌든스(Hans Swildens) 인더스트리벤처스 공동창업자는 “3년 전에 비하면 헤지펀드, 뮤추얼 펀드, 국부 펀드 등 더 많은 LP들과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호황 분위기 속에서도 LP가 포트폴리오를 통째로 넘기는 사례는 많지 않다. LP들을 만족시킬 만한 입찰가를 제시하기 쉽지 않은 데다 상당수 상품이 과대평가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탓이다. 다만 이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세컨더리 시장은 당분간 계속해서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 전망이다.

영어 원문 기사는 Old VC funds breathe new life into secondhand stakes trading | Pitchbook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