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원 미만’ 가격 변수 뚫고 동양·ABL생명 품은 우리금융, 최종 가격은 1조5,000억원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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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보험은 2조 원했지만, 동양·ABL생명 매각가 1.5조 결정
가격 변수 뚫어낸 우리금융, 협상서 유리한 고지 점한 영향인 듯
안방보험 구조조정 시급했던 다자보험, 결국 몸값 낮춰 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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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금융지주의 동양·ABL 생명보험 인수가 마무리 수순을 밟게 됐다. 매각가는 1조5,000억원 규모로, 다자보험 측이 언급해 온 2조원보다 다소 낮은 수준이다. 인수 희망자가 우리금융밖에 없었던 점, 다자보험 측이 두 보험사 매각에 절실했던 점 등 배경이 겹쳐 우리금융에 유리한 협상이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금융, 동양·ABL생명 동시 인수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은 동양·ABL생명 동시 인수 안건을 두고 중국 다자보험과 협상을 진행한 끝에 양사에 대한 최종 주식매매계약(SPA) 내용을 승인했다. 가격은 동양생명 지분 75%와 ABL생명 지분 100%를 합쳐 1조5,000억원~1조6,000억원 수준으로 확정됐다.

당초 업계에선 이번 거래가 원활히 진행되기 어려울 수 있단 의견이 적지 않았다. 가장 큰 변수로 꼽힌 건 가격이었다. 두 회사 모두 보험사 매각 및 인수에 대한 의지가 강하지만 자금 여력과 엑시트(투자금 회수) 등을 고려하면 양측 모두 한 발도 양보하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ABL생명만 놓고 보면 과거 알리안츠에서 다자보험으로 주인이 바뀔 때와 비슷한 상황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했다. ABL생명이 사실상 ‘헐값’에 매각된 바 있는 만큼 이번에도 크게 비싼 가격에 팔리진 않을 수 있단 것이다.

이런 평가가 나온 건 동양생명과 ABL생명의 여건 자체가 달라서다. 동양생명의 경우 줄곧 ‘우량 매물’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업계 6위 수준의 자산 규모와 안정적인 이익 체력을 가진 덕이다. 반면 ABL생명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인수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의견이 많았다. 인수 뒤에 추가 자금을 들여야 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ABL생명의 포트폴리오는 대부분 저축성 보험 중심이다. 때문에 새 회계제도(IFRS170)에서 재무건전성 악화가 우려된다. 당장 올해 1분기 말 지급여력비율(K-ICS)만 봐도 경과 조치 전 기준 114.3%로 금융당국 권고 수준(150%)에 크게 못 미쳤다. 이번에도 헐값에 매각될 가능성은 충분했단 의미다.

ABL생명 몸값 높이기, 체질 개선 이루기도

다만 일각에선 과거 거래를 헐값 매각으로 보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수 이후 자본 확충 부담이 커졌음을 고려하면 제값을 받은 셈이란 설명이다. 실제 2016년 안방보험은 ABL생명을 300만 달러(약 40억원)에 인수했으나 자산부채이전방식(P&A)으로 거래된 탓에 1조원 이상의 자본을 확충해야만 했다. 이전 17년 동안 알리안츠그룹 차원에서 8,000억원 이상의 증자, 1조원 이상의 거금이 투자된 바도 있다. 이를 고려하면 이번 거래에서 ABL생명이 헐값에 매각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선이었다.

ABL생명 차원에서 몸값을 높이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기도 했다. 보험 업계에 따르면 ABL생명은 이달 초 내놓은 ‘(무)ABL THE톡톡튀는여성건강보험’ 상품에 ▲무면책 ▲무감액 ▲무갱신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보험 계약 시 추가로 특약을 가입하면 당일부터 보험금 전액을 보장하고 80세 고령 유병력자도 간단한 심사만 거치면 가입이 가능하도록 했다. 통상 보험사는 암 보험 가입 개시 후 90일간은 보장하지 않는 면책 기간을 둔다. 향후 보험사 손해율을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이처럼 ABL생명이 업계의 공식에 어긋나는 상품을 전격 출시한 건 IFRS17 회계상 실적 개선에 유리한 보장성보험 상품을 확대하기 위함이다. 실제 ABL생명의 상품 포트폴리오 비중은 최근 들어 급격히 바뀌고 있다. 지난해 일반계정 수입보험료 한정 보장성보험의 비중이 저축성보험을 최초로 넘어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총 수입보험료 기준으로 포트폴리오 비중을 살펴보면 저축성 보험 비중은 57% 수준이다. 저축성보험 비중이 80%를 상회하던 2017년과 비교해 큰 폭으로 체질 개선을 이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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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각 절실한 건 다자보험 측, “불리할 수밖에”

문제는 가격 책정에서 다자보험 측이 여전히 불리했단 점이다. 우선 인수를 타진한 곳이 우리금융 한 곳밖에 없었다. 국내 5대 금융지주 중 여타 지주들은 이미 보험사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었던 만큼 무리하게 인수를 감행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때 하나금융이 동양생명을 인수할 수 있다는 의견이 쏟아지기도 했으나, 결국 해프닝으로 마무리되면서 우리금융이 다자보험과의 거래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됐다.

또 다자보험이 두 보험사를 빨리 팔아야 하는 입장이기도 했다. 애초 다자보험 자체가 중국 정부 차원에서 안방보험그룹의 구조조정을 진행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여서다. 동양생명과 ABL생명이 다자보험으로 넘어간 건 2018년의 일이다. 앞서 지난 2018년 5월 10일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의 외손녀사위인 우샤오후이(吳小暉) 전 안방보험그룹 회장은 652억4,800만 위안(약 12조2,200억원)을 빼돌리는 등 금융사기, 배임, 횡령 혐의로 징역 18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로 인해 보험사의 경영권은 중국 보험감독관리위원회로 넘어갔고, 중국 정부는 다자보험을 설립해 구조조정을 본격화했다. 때문에 다자보험은 안방보험 파산 이후 곧바로 청산 절차에 들어갈 계획이다. 중국 당국 차원에서 다자보험을 청산하면서 보유 자산을 빠르게 매각하겠단 방침을 밝힌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매각 협상에서 다자보험이 굽히고 들어가는 입장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 매각 가격이 다자보험 입장에서 다소 아쉬운 1조5,000억원 수준으로 결정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초 다자보험 측은 ABL생명의 기업가치를 3,000억~4,000억원으로 추산, 두 보험사를 합해 총 2조원은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동양·ABL생명에 투입한 자금을 회수하고 ‘본전’이라도 건지기 위해선 이 정도 가격은 받아야 한단 시선에서다. 실제 그간 다자보험이 두 보험사에 투입한 자금은 인수, 유상증자 등을 더해 2조원 정도다. 다자보험은 2015년 동양생명을 1조1,600억원에 인수한 뒤 2017년 3월 5,280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고, ABL생명은 35억원에 인수한 뒤 2017년 두 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3,080억원의 자금을 투입했다.

그러나 우리금융은 보험사 인수에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도 가격 측면에서 무리하지 않겠다는 뜻을 여러 번 내비쳤다. 지난 7월 열린 ‘2024년 상반기 컨퍼런스콜’에서도 우리금융은 “자본에 부담이 되는 ‘오버 페이’는 없을 것”이라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바 있다. 결국 우리금융 측이 ‘갑’의 입장을 유지할 만한 환경이 조성되면서 동양·ABL생명의 몸값을 다소 낮추는 방향으로 협상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